[칼럼] 마사 로슬러(1), 아름다움은 고통을 모른다.

글 입력 2023.02.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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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ha Ros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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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로슬러(1943-)는 포토 몽타주, 사진,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형적 방식을 활용해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동시대 작가이다. 특히 그녀가 작업을 시작했던 1960년대부터 직접 참여하고 겪은 미국 내의 반전 운동과 여성해방운동, 신좌파운동 등의 사회운동은 그녀의 작품 활동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영향은 로슬러의 작품이 표방하는 다양한 주제의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다. 전쟁에 관련된 반전의식과 도시 개발에 따른 빈부격차 등의 정치적 문제부터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현실, 가사노동과 성차별, 대중문화 속 이미지로서의 여성 문제까지, 로슬러의 작품들은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넘나들며 동시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메시지를 던진다.

 

현재는 포토몽타주, 사진,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등 포스트모더니즘적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로슬러이지만, 놀랍게도 그녀가 처음 미술을 시작했던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중반까지 그녀의 관심사는 초현실주의와 추상표현주의였다. 1965년 브루클린 칼리지 졸업 후에는 막스 에른스트의 아들이자 추상표현주의 화가인 지미 에른스트와 에드 라인하르트 등의 작가들에게 미술을 배웠고, 미래주의와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어 자코모 발라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이후에 이어지는 자신의 포토몽타주 작업 조형 방식 자체는 막스 에른스트의 초현실주의 콜라주에서 영향을 받았다 회고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 인종갈등 등의 내부적 혼란 상황,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 파병 결정과 이에 따른 무고한 젊은이들의 희생, 전쟁 패배 등은 미국 내의 반전 운동과 학생운동, 사회 개혁 운동에 불을 불였으며, 잭슨 폴록으로 대변되는 추상표현주의와 남성적인 액션페인팅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네오 다다, 팝아트, 플럭서스의 등장은 로슬러가 반전 운동에 참여하고 추상표현주의에서 벗어나 일생의 작업 방향을 결정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특히 자신이 “기질적으로도 신념적으로도 여성주의자”라고 밝혔던 로슬러는 1960년대 후반부터 자신이 진학했던 USCD(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이 지역의 페미니스트 예술가들과 함께 정치적 활동을 본격화한다. 로슬러에게 이 당시의 여성해방운동은 사회적 책임과 정치적 시야를 넓혀주는 도구였을 뿐만 아니라 이를 실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했던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로슬러가 가진 페미니즘 의식은 이 당시 페미니즘 운동의 선도적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1960년대 후반 2시기 페미니즘의 주된 요점은 남성과 구별되는 근본적 차이에 기반한 본질주의(Essentialism) 혹은 여성주의라 볼 수 있는데, 이 시기 로슬러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의제에 이의를 표하며 모든 개인적인 경험이 정치적으로 치환될 수 없음을 반문했다. 1977년 아트포럼에 기재한 에세이 “The Private and Public: Feminist Art in California”에서는 여성의 예술과 여성주의 예술은 구별되어야 하며, 페미니즘 미술가는 경제적, 사회적 권력 관계에 대한 비판적 견해와 집단 행동에 대한 헌신이 필요하다 강조하기도 했다. 로슬러가 가진 여성적, 젠더적 측면의 사회의식이 단순히 여성의 권익 쟁취나 여성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사회 공동체의 유대와 더불어 사회 문제의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었음을 파악할 수 있는 지점이다.

 

 

 

대중문화 속 시선의 대상으로서 여성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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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dy Beautiful, or Beauty Knows No Pain》 series 1966~1972.

 

 

이러한 로슬러의 젠더적 입장은 로슬러의 대표적 시리즈인 《아름다운 몸, 또는 아름다움은 고통을 모른다(Body Beautiful, or Beauty Knows No Pain)》(1966-1972)에서 잘 드러난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진행된 해당 시리즈는 미디어의 인쇄 광고, 잡지에서 추출한 여성 이미지 등을 이용한 포토몽타주 작업으로, 사회 혹은 남성에게 선호되어 인정받는 여성상을 꼬집고 이미지의 본래 의도를 뒤집어 사회적 편견을 비판 및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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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parent Box, or Vanity Fair〉, 《 Body Beautiful, or Beauty Knows No Pain》 series 1966~1972.

 

 

그중 〈투명한 박스 또는 베니티 페어(Transparent Box, or Vanity Fair)〉를 보자. 화면 속 속옷만 입은 두 여성은 눈을 가린 채 포즈를 취하고, 한 여성의 신체는 가슴과 배 부분이 드러나도록 몽타주되었다. 작품의 제목이자 작품 속 텍스트이기도 한 Vanity Fair라는 단어는 어떨까. Vanity Fair는 직역하면 ‘허영의 시장’이기도 하고 유명 패션 잡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는 작품이 남성 중심적 시각에 맞춰진 시선이 제거된 대상으로서의 여성 광고 이미지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시각에 세뇌되어 스스로의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패션 잡지와 모델까지 그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상에 대한 비판을 표하는 또 다른 작업으로는 〈쉽게 획득한, 시민의 바이탈 통계치(Vital Statistics of a Citizen, Simply Obtained)〉(1977)가 있다. 해당 작업은 1974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퍼포먼스의 형식으로 제시된 것을 1977년 비디오 작품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3막의 오페라 형식으로 제시되는 비디오는 남성과 이를 대변하는 대중문화 미디어가 만들어낸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준과 기대치를 건조하게 나열하듯 보여준다.

 

비디오의 전반적인 내용은 신체를 측정하고 측정 당하는 것인데, 목소리만 나오는 나레이션 형식의 1막에 이어 2막부터는 로슬러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목소리 역시 로슬러의 녹음이다). 진료실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흰 가운을 입은 남성과 이를 보조하는 3-4명의 여성들 사이에서 로슬러는 성별, 나이, 출신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신체를 샅샅이 측정 당한다. 남성은 로슬러에게 옷을 벗으라 명령하고, 세 명의 여성의 도움을 받아 옷을 벗고 나체가 된 로슬러는 서서, 누워서, 또는 팔을 뻗은 채로 신체를 측정 당한다. 심지어는 손가락과 발까락까지 말이다. 남성을 돕는 여성들은 남성이 측정한 신체 수치를 큰 소리로 읽으며 기록하고, 측정을 마친 후에는 딸랑이는 소리에 맞춰 남성을 따라 동행한다. 로슬러는 화장을 하고 검은 드레스와 웨딩드레스를 번갈아 입고는 현장을 떠난다.

 

로슬러는 1막을 비롯한 비디오 전반의 나레이션을 통해 해당 작업은 사회가 어떻게 한 사람의 생각과 생활, 사적인 영역을 지배하고 재단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힌다. 더불어 신체 측정이 되는 장면과 함께 흘러나오는 나레이션은 여성 범죄와 침략에 대한 것으로, 이전의 제국주의적 인종차별을 정당화했던 인체측정의 과학적 제도화가 여전히 학교, 감옥, 미인대회의 맥락에서 성적 차별과 인종차별의 도구로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해당 작업이 신체(body)와 정신(think)에 대한 강압(coercion)을 다루고 있다는 작품 설명과 작품 속 나레이션은 작품이 제도 안에서 표준화되는 여성상과 남성들의 기준을 스스로 내면화하는 여성들의 모습과 이러한 양상을 관전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사회 구조까지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확실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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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s With No Titles〉, 1973/2018.

 

 

로슬러는 60-70년대 광고 이미지가 생산해내는 여성에 대한 엄격한 미의 기준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자신을 끊임없이 열등하다 생각하는 일종의 내면화된 마조히즘’을 기르고 있다 말하기도 했는데, 설치-조각 오브제인 〈Objects With No Titles〉(1973/2018)는 로슬러의 이러한 의견을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이다.

 

1973년 첫 선을 보였던 설치 조각-오브제인 해당 작품은 팔다리가 없는 여성 마네킹과 바디수트, 브래지어, 코르셋 등의 여성 속옷을 벽과 바닥에 날아다니듯 설치한 것으로 2018년 뉴욕 맨해튼의 유대인 박물관에서 열린 마사 로슬러 개인전에서 다시금 전시되었다. 여성용 란제리에 우스꽝스럽게 우겨 넣어진 솜과 팔다리가 없는 마네킹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광고, TV 등의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되는 이상적인 여성상과 이를 자신의 결점과 비교하며 끼워 맞추려 노력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들을 떠올릴 수 있다.

 

 

[김윤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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