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스물여섯, 신입사원이 되었습니다 (2)

글 입력 2023.02.2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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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는 것을


 

5월 말 입사 후, 약 한 달간은 자유를 누렸다.

 

4박 5일간의 신입사원 합숙 연수를 마치고, 약 3주간 실습을 위한 기초 교육을 수료했다. 교육의 특성상 매일 6~7시간씩 서 있어야 했으며, 아침마다 치르는 쪽지 시험과 마지막 날 최종 시험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도, 동기들도 모르지 않았던 것 같다. 본격적인 현업에 뛰어들기 전, 비록 경쟁이지만 동기들끼리만 복작대는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는 것을.

   

 
“일을 시작하면 쉽지 않을 거예요. 힘들 때는 언제든 연락해 주시면 좋겠어요.”
 

 

합숙 연수의 마지막 날, 연수를 총감독하셨던 HR팀 담당자분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다. 솔직히 그때는 와닿지 않았다. 인턴을 제외하면 첫 직장이었던 데다 인턴 때는 ‘일’이 힘들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때는 일보다는 ‘사람’이 힘들었다.

 

인턴을 거치면서, 나는 사람을 많이 타는 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차피 직장 또는 직업에 있어 거창한 꿈이나 목표는 없었으니, 생계를 위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면 사람이 좋은 곳을 가고 싶었다. 더불어 굳이 두 번째 조건을 말하자면, 워라밸이 좋은 곳이었다.

 

그런 나에게 사람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주려고 노력하는 HR팀 담당자분과 교육 기간 동안 칼퇴 및 휴가를 보장하는 시스템, 유쾌하고 믿음직한 동기들의 존재는 안정감과 즐거움을 선사했다. 최종 합격 발표 후 줄줄이 잡혀 있던 대기업의 시험과 면접 취소를 후회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IF라는 아쉬움은 있어도, 합격이 되었대도 당시의 깡(?)으로는 오래 버티진 못했을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이루어지는 교육과 시험에 긴장하고 부담을 느껴도, 마음은 편했던 한 달을 보냈다. 반복되는 시험과 면접에 지쳐 있던 나에게는 선물과도 같았다(기억 미화라면 어쩔 수 없지만!).

 

하지만 언제나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없다는 것, 회사는 결국 회사라는 것은 불과 다음 달에 뼈저리게 깨달아야만 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고작 3주였는데, 돌이키기도 싫은 3주였다.

 

약 3주간의 기초 교육을 마치고 짧은 휴가를 보낸 후, 다음 3주는 현장 실습이었다. 회사에서 운영하는 직영점에 3~4인씩 배치를 받아 주문 접수, 제조, 고객 응대 등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었는데, 가맹 회사인 만큼 신입사원이라면 필수로 거치는 교육이었다.

 

출근 전, 배치받은 직영점의 점장님으로부터 사전 연락을 받았다. 현장인 만큼 스케줄 근무가 필요하니 불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미리 알려달라고 하셨다. 사실 조금 감동했다. 몇 달 전부터 고대하던 일정이 출근과 겹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개개인을 배려해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장과 기대를 동시에 품은 출근 첫날,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먼저 근무 중이던 동기들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으며, 카톡에서 그토록 상냥하던 점장님은 현실에서는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하필 점심시간이어서 매장은 어찌나 바쁜지, 현장을 익힐 시간도 없이 바로 투입되었다.

 

기초 교육을 수료했으니 현장 근무도 일사천리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론과 실전은 다른 건데. 그래도 가르치려고 그러시는 거라고,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단 며칠 만에 점장님, 아니 그 사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는 결코 할 수 없게 되었다.

 

실습을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바 뒤편 창고, 나를 포함한 동기들에게는 공포의 공간이었던 곳에서 나눈 대화가 시작이었다.

   

 
-OO님은 기초 교육은 받고 오신 거 맞아요? -어, 네... (눈치) 제가 많이 부족한가요? -네, 완전. -제가 어떤 점이 그렇게 부족한가요? -그걸 본인이 정말 몰라요? 전부요, 전부 다.
 

 

차라리 어떤 점이 부족하니 개선 바란다고 말씀하셨으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노력했을 텐데, 일을 넘어 나라는 ‘사람’을 공격하는 언사에 괜찮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애석하게도 나는 아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한 것을 겨우 참고 노력하겠다는 말만 반복할 뿐. 그때 그 사람의 눈빛, 목소리, 표정은 아마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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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주는 ‘존버’하는 기간이 되었다. 하루의 목표가 ‘잘하자’가 아닌 ‘혼나지 말자’가 되어버리고, 그 사람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3주 만에 5kg가 빠지고, 생애 처음으로 건강에 위협을 느껴 수액도 맞아보았다. 어떤 사건 후에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집에서 펑펑 울어버리기도 했다.

 

지옥 같은 3주를 보낸 후, 다시 본사로 돌아와 팀 발령을 받았다. 나는 남자 동기 K와 같은 팀이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K와 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K가 배치받았던 직영점 또한 못지않게 부정적인 쪽으로 유명한 곳이었던 것이다. 그 탓일까, 나와 K를 교육해주신 팀 선배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두 분 다 왜 그렇게 깍듯해요? 선배들이 기강 잡아요?ㅋㅋ”
 

 

겉으로는 아니라고 웃어넘겼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단순한 예의를 넘어 지나친 정중함으로 비친 까닭은, 나와 K 둘 다 직영점에서 극심하게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최근은 K가 이런 말을 했다. 돌이켜보면 다시 돌아갈 곳도 아닌데, 그때 왜 그렇게 눈치를 보며 힘들어했는지 모르겠다고. 나도 동감했다. 현장에는 텃세가 존재하고, 신입을 교육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들어선 안 될 말을 너무 들었다고. 요즘은 늦게나마 진지하게 묻고 싶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 라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앞으로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실습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그 사람의 퇴사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게 되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앞으로 다양한 회사를 거칠 것이고, 다양한 사람-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을 만날 테지만, 아마 그 사람은 나의 기억 속에 평생 나쁜 기억과 물음표를 동시에 남기게 되리라는 점이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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