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보잘것없는 인생일지라도 너와 함께할 수만 있다면 [영화]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나는 너를 구할 거야”
글 입력 2023.02.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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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아카데미 기획전을 통해 벌써 세 번째 관람을 마치고 왔다. 작년 10월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가게 만든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역시나 필자의 취향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길고 복잡해서 한 번에 외우기 힘든 영화 제목 때문에 일명 ‘양자경의 멀티버스’라고도 불리는 그 영화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무려 총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이룬 이 영화는 멀티버스를 소재로 하는 만큼 화려하고, 정신없고, 때로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포스터에 박힌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나는 너를 구할 거야’라는 문구로 귀결되는 영화의 다정함과 위로는 끝내 우리를 감응시킨다. 

 

오는 3월 1일에 확장판이 재개봉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이번 재개봉을 기회로 꼭 관람해 보는 것을 추천하고자 이 글을 써 내려간다. ‘에에올’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필자 나름대로 파헤쳐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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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삶의 무한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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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선택’과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는 항상 선택하지 않았던 길과 그 길의 가능성에 대한 후회를 한다. 극 중 주인공인 ‘에블린’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 ‘웨이먼드’의 청혼을 받아들여 미국으로 이민을 오지만 않았더라도 자신에게 더 행복한 삶이 펼쳐졌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에블린이 현실에서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길을 만일 택했을 때 그녀가 될 수 있었던 모습들이 그녀 앞에 다중우주로 펼쳐진다. 쿵후 수련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 많은 관중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 유명한 식당의 요리사 등 어떤 삶이 됐든 세금 문제로 골치 아파하며 부랴부랴 살아가는 지금의 삶보다는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그 수많은 삶에도 모두 좌절이 존재한다. 배우로서 성공해 화려한 삶을 누리는 듯 보이지만 정작 진정한 사랑을 찾는 데는 실패할 수 있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삶은 무대를 완전히 망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실패로 점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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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모든 삶에 다시 일어날 기회는 있다. 솔직함으로 맞서서 사랑을 되찾을 기회와, 실수한 무대를 만회할 기회가 존재한다. 영화는 모든 사람의 손이 핫도그인 세계에서조차 발로 연인의 눈물을 닦아주며 갈등한 연인과 화해하고 서로를 다시 포용할 기회가 있음을 보여준다.

 

‘에에올’은 다중우주의 삶이 그렇듯, 현실의 에블린과 현실의 우리가 사는 삶에도 좌절을 다시 이겨낼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어떤 삶이든, 어떤 실패든 나름의 배움과 성취가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경험한 모든 거절과 모든 실망이 우리를 지금 이 순간으로 이끌었음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선택과 삶의 기회를 찾아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법이다.

 

우리 모두의 삶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멀티버스다. 삶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실패를 무한히 경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의 소중한 이들과 화해하거나, 사랑을 쟁취하거나,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거나, 심지어는 에블린처럼 세상을 구하는 일까지. 모든 좌절과 후회를 받아들인 채, 또 다른 선택을 통해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말하는 영화의 메시지는 깊은 울림을 준다.

 

 

 

인생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다정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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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등장하는 베이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에블린의 딸인 ‘조이’가 만든 일명 ’에브리씽 베이글(Everything Bagel)‘은 인생의 허무함을 나타낸다. 에브리씽 베이글은 갖은 토핑을 올려놓은 베이글 빵처럼 조이가 수많은 인생에서 경험한 실패와 좌절의 경험을 한 데 모아 올려서, 모든 것이 ‘무(無)’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도록 만든 허무주의의 블랙홀이다.


블랙홀은 다중우주의 수많은 사람들을 허무주의에 현혹시킬 정도로 가진 힘이 강력하다. 거듭된 실패와 거절에서 경험한 좌절로 인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이 소용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허무주의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자신의 모든 행동, 생각, 관계는 가치 없는 것이며 본인이 모두에게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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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의 주변 곳곳에서 발견되는 검은 동그라미들의 존재는 조이뿐만 아니라 우리들 역시 일상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기 쉽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허무주의의 위험은 어디에나 있다. 작중 산처럼 쌓인 영수증 더미에서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세탁기에서도 검은 베이글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가치 없다고 느끼는 허무주의를 경험하게 되면 우울과 좌절, 그리고 무기력에 빠지며 인생을 헤쳐 나가고 이겨나갈 힘을 잃게 된다. 이는 자연스레 주변과의 마찰로 이어지고,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애쓰는 대신 관계와 갈등에서 도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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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영화는 너무나도 평범하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인생의 수많은 싸움과 갈등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바로 ‘다정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정함을 상징하는 웨이먼드의 ‘눈알들(Googly Eyes)’은 베이글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다. 바깥이 검고 가운데의 구멍이 흰 에브리씽 베이글을 뒤집으면, 바깥이 하얗고 가운데의 동그라미가 검은 눈알이 된다.

 

세탁기, 택배 상자 등 웨이먼드가 일상 속의 물건 곳곳에 붙여놓은 눈알들은 그가 세상을 이겨내는 무기다. 남들을 바라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를 상징하는 눈알은 경청이자 다정함이다. 나를, 남들을,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친절과 다정으로 맞선다면 비로소 모든 일, 관계, 존재가 소용없다는 허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위로를 전한다.

 

 

 

언제 어디서든 오직 당신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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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화려하고 복잡한 다중우주의 세계와, 베이글에 맞서는 눈알의 다정한 싸움을 지나 종국에는 ‘가족의 소중함’에 다다른다. 에블린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거대한 우주에서 수천만분의 일 확률로 만난 가족들 그리고 주변 이들과 함께 보내는 순간이야말로 그 어떤 시간보다도 소중하고 행복한 것임을 말한다.


영화 후반부의 한 장면을 보면 베이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조이를 붙잡는 에블린의 뒤를 이어서, 마치 줄다리기하듯 웨이먼드가 에블린을 붙잡고 있고 조이의 할아버지는 웨이먼드를 붙잡는다. 살기에 급급해 서로를 꾸짖고 비난할 때도 있고, 생각의 차이로 수도 없이 삐걱대기도 하지만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손을 꽉 잡은 채 놓지 않는 그들은 틀림없는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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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가 그 어디 가족뿐인가. 친구, 연인 등 그들이 곁에 있기에 우리는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누린다. 조이의 가족들과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조이가 그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모두에게 항상 사랑스럽고 다정히 웃어주는 그녀의 동성 연인 ‘베키’처럼,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위해주는 든든한 존재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서 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모든 것(Everything)이 모든 곳에서(Everywhere) 모두 한꺼번에(All At Once)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에블린은 오로지 조이와 함께 있기 위해, 그리고 조이를 구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택한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너와 지금처럼 머무르고 싶다는 에블린의 다정한 진심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이 무엇보다 가치 있음을 인정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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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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