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끄러운 나를 내뱉는다는 것 - 지나친 고백 [도서]

글 입력 2023.03.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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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


 

사람의 기억력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면 언제일까. 마음 속으로는 몇 번이고 잊으려 애썼으나, 몸이 기억하는 때가 아닐까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슷한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이전 기억이 슬그머니 되살아나는 경험을 할 때, 그때 가장 괴롭다. 쳇바퀴를 도는 햄스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 다시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도 이유를 알 지 못한 채로 괴로움에 휩싸인다. 이 절망의 굴레에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마치 도돌이표를 만난 음표와 닮아있다.

 

물론 보통의 삶에도 고저는 있다. 삶에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삶은 어두컴컴하고 깊은 구멍에 빠져, 혼자의 힘으로는 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빠진 사람은 누군가 평생 겪지 않을 것들을 떠안고 산다. 심장엔 생채기가 가득하다. 그리고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아픔이 찾아온다.

 

흔히들 말하는 주요 우울장애를 포함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중독, 왜곡, 성적인(sexual) 문제, 친밀감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등 이처럼 다양한 심리적 문제는 살면서 한 번 쯤은 맞닥뜨릴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진단을 받으면, 누군가에겐 당연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이 반복되고 또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많은 인식의 변화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털어놓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겪지 않은 사람들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있고, 속내를 완전히 말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혹여나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은 아닐지, 나의 문제를 노출함으로써 더 큰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아닐지와 같은 고민을 낳기 때문이다.

 

여기, 사회적으로 봤을 때 성공한 위치에 있는 한 여성의 아프고도 처절한 치유 과정을 솔직하게 담은 이야기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녀 역시 고민으로 오랜 시간 입을 닫고 지내왔다. 그런 그녀가 한 심리치료사를 만나고, 진정한 고백을 결심한다. 아주 지나치게 솔직한, 그녀 자신의 문제들을.

 

 

 

남들이 듣기에는 지나친 고백일지라도

어쨌든 비밀은 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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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고백'이라.

 

책 제목을 보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고백이길래 '지나치다'는 수식어를 붙여야 했을까. 몇 페이지 읽자마자,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책 속에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은 문장들, 그러니까 '지나치게 솔직한 고백'들이 잔뜩 쓰여있었다. 이를테면 섹스와 같은 예민한 이슈 말이다.


앞서 나열한 다양한 증상은 <지나친 고백>의 주인공 크리스티의 상황이다. 크리스티는 변호사로,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멀리서 봤을 땐 성공한 사람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하나, 그녀 자신은 늘 괴로웠다. 자살 사고, 깊은 외로움, 섭식 장애, 성적 트라우마 등등 삶 전반이 많이 무너져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항문에 기생충이 생겨 수치심을 느끼고, 중학생 무렵 해변가에서 있었던 그날의 일로 자책을 시작하고, 외로움에 몸부림 치다 프로젝트에서 중도 하차하고, 음식을 공유하지 않는 남자친구와 다투다 접시를 깨버린 일은 언제나 비밀이었다. 결국 그 비밀은 그녀를 좀먹었고, 치료를 받지 않고서는 낫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 사람들과 다름 없었으나, 그녀는 꾸준히 다양한 방식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아픔을 겪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들이 봤을 때 아주 괜찮은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녀다. 그러나 자신의 직업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필자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느낀 지점이었다.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 자는 겉으로 봤을 때와는 달리,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문제와 인지적 오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듣기에도 지나친 고백들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아픔이었을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해도 괜찮다. 본래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당장 내 삶도 힘든데 누군가의 건강하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그 생각을 하면 자신마저도 피곤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런 본성을 생각하면, 자연히 아픈 이야기들이 설 자리는 좁아진다. 결국 타인과 겉도는 대화만 하게 된다. 내면의 상처, 그러니까 본질이 담겨 있지 않은 문장만이 오고 간 결과로 상처는 천천히 깊어진다.

 

상한 식재료에서는 상한 냄새가 나고, 주변의 음식들까지도 하나 둘 상하게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지닌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 필자는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이 가득 쌓인 냉장고가 떠올랐다. 마음 속 어느 것을 꺼내어 보여도 상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결국 솔직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그런 냉장고.

 

책은 첫 페이지부터 처음으로 죽고 싶었을 때를 회고하며 강렬한 인상으로 시작한다. 뭐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 만큼 힘들었을까. 로스쿨까지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슬픔 등 부정적 자아 이미지를 가득 안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왜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런 아픔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말이다.

 

"비밀은 유독하다."라는 철학을 가진 심리 치료사 로젠 박사와의 만남은 그녀 삶의 변곡점이 되었다. 박사가 주도하는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녀의 삶에 차츰 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게도 하지 못했던, 아주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크리스티는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경험을 한다.

 

비밀이 자기 자신을 저버리는 일임을 깨달은 자가 나열한 지나친 고백들을 하나 둘 마주하며, 우리는 어떤 카타르시스를 마주하게 된다. 마치 내 일이 해결되는 것 같은 그런 홀가분함에서 비롯된 카타르시스를 말이다. 힘겹게 한 계단씩 오르는 크리스티의 이야기는 지독하게 현실적이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무척 인상적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문장들을 만났는데,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챕터 별로 소개하고자 한다.

 

 

1부 * 지나치게 매끄러운 심장의 표면 

 

 

"거절을 하지 못하면, 친밀함이라는 건 존재할 수가 없다고요."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거절을 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들을 사랑했다.

 

- p. 117 <1부 * 지나치게 매끄러운 심장의 표면>

 

 

크리스티는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감정 표출에도 마찬가지였다. 모임, 그러니까 집단 치료에서 박사와 구성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써 표현하기를 권유받는다. 1부가 끝날 무렵,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담은 목소리를 조금씩 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못마땅한 상황을 만났을 때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뜨끔했다. 필자 또한 거절을 어려워하는 사람인데, 결국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정확히 하지 않으면 상대와 가까워지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말로 들렸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다르게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한 나의 모습으로 타인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관계는 쌍방향인 것이지, 한 쪽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만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1부의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매끄러운 심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어떤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담아두었을까. 매끄러운 심장에 대해 생각하니 유리로 만든 예쁘고 빨간 오브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반질반질하고 때깔이 곱지만, 너무 아름다운 탓에 까딱 잘못하여 손에서 미끄러지는 순간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 '지나치게'라는 부사를 쓴 것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뭐든 극단 값에 치우치면 좋지 않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어떤 것은 보기엔 좋을 수 있으나 딱 거기까지일 테니까. 인생은 부딪히고, 깨지고, 일어서는 일의 연속이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심장으로는 살아나갈 수 없는 것이다.

 

 

2부 * 그들은 가끔 뾰족한 포크를 들고 나타난다

 

뾰족한 포크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쓰임이 잘못될 때는 흉기로 둔갑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치료 모임은 솔직하고 정직한 대화가 오가는 곳이다. 그 대화는 당연히 비언어적인 표현도 포함된다. 다들 자기 자신이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것일텐데,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는 순간들을 만난다.

 

집단은 또 하나의 작은 사회다. 크리스티가 개별 면담이 아닌, 두 개의 모임에서 상담을 진행해야 했던 이유는 오랜 세월 혼자 묵혀둔 아픔을 함께 들어주고 또 반응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담에서 언제나 긍정적인 영향만을 얻고 갈 수는 없다. 길게 보았을 때, 모든 회기가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스트레스로부터 야기되는 또 다른 문제로 인해 당장은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삶은 우리에게 언제나 친절한 것은 아니다. 맛있는 케이크를 가져다주며 포크를 들고 오는가 하면, 스프를 내어주면서 포크를 들고 나타나거나 어쩔 땐 그 포크로 손등을 내리찍을 수도 있는 것이다.

 

로젠 박사의 권유로 크리스티는 자기 삶이 더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을 안고서 또 다른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만성적인 힘듦을 가지고 있는 자의 치료는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 것이다. 그러나 늘 시작이 어렵지, 꾸준히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점차 나아지는 것이 인생이 아니었던가. 자기 자신만의 문제를 털어놓고 피드백 받는 것 이외에도, 집단치료 과정을 통해 다른 어려움들을 함께 듣고 이야기하며 점차 더 나은 삶으로 변하는 자신을 깨닫는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크고 작은 잡음이 발생했다. 새로운 사랑을 찾은 듯했으나, 이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었고 트라우마를 다시 마주하였으며 연애 생활을 사사건건 간섭하는 박사에게 화도 냈다. 그렇지만 성과도 있었다. 크리스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고, 응원해주는 모임 덕분에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잊고 있던 사랑의 기쁨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자기한테 화를 낼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요. 알잖아요."

아니, 사실 그건 몰랐다. 전혀 몰랐다.

 

- p. 195 <2부 * 그들은 가끔 뾰족한 포크를 들고 나타난다>

 

 

화를 낼 때도 있지만,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만, 화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마니의 말은 많은 것을 일러준다. 한 사람이 타인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이 늘 같지 않다는 것, 화를 낸다고 해서 이 관계가 파괴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화는 단지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 이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고 또 여전할 것이라는 것.

 

타인의 말 한 마디에 지옥을 오가거나, 크리스티처럼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외부적 사건은 위험한 상황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가슴 아픈 포크같은 말과 행동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문제적 상황이 온다고 해도 당신과 내가 사랑과 신뢰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장은 연대를 잘 드러낼 뿐만 아니라, 지지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3부 * 계속 떠들 수 있게 놔두는 것

 

오래 갈 것 같았던 사랑과 이별하고, 세 번째 모임인 '심화' 그룹에 참석하기를 권유받은 후 크리스티는 거침 없이 "네"라고 대답한다. 일주일에 3번이나 치료 모임에 참석한다면, 1년 사이에 아주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임 첫 날 그녀는 6개월 내에 변화가 없으면, 모임을 그만 두겠다고 어름장을 늘어 놓는다.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주일에 세 번, 그것도 한 달에 800달러를 지불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 입장에서 눈에 띄는 결과가 없으면 그것은 분명한 시간 낭비임이 맞았다. 왜 그런 말을 던졌을까?

 

'심화' 그룹은 앞선 두 번의 모임과는 달랐다. 이전은 그녀와 같이 어떤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나아지기 위해 모였고, 그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그룹은 삼삼오오 모여 떠드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아쉬운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고, 지금으로서는 문제 삼을 만한 것도 없어 보였다. 현재 진행형인 자신과는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임에 몸담은 세월이 길어지면서, 그녀는 많은 변화를 마주하게 된다. 이제는 사랑하는 상대와의 스킨십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았으며, 자주 죽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폭식하지도 않았다. 다만 걱정하고, 분노하고, 자괴감에 휩싸이는 것은 여전했다. 그러나 이건 누구나 겪는 일상적인 일이기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중요한 점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과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을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내 평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나는 괜찮았다. 충분히 괜찮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 p. 427 <3부 * 계속 떠들 수 있게 놔두는 것>

 

 

이제까지 괜찮지 않아하던 그녀는 정말로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감각으로 느껴졌다. 바라던 바였다.  지금까지 몇 년의 시간 동안 로젠 박사와 함께한 다양한 치료 모임이 아주 효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 결과 타인들에게 원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기 시작한 그녀는 비로소 삶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우리 모두가 크리스티를 그렇게,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왔어요. 오랫동안."

 

- p. 428 <3부 * 계속 떠들 수 있게 놔두는 것>


 

지금의 그녀가 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박사의 말에 덩달아 감동을 받았다. 그녀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조언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주변 환경과 사람들의 응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큼직한 보석은 나와 존을 뜻했고, 여섯 개의 작은 보석들은 내 그룹 사람들을 뜻했다.

그 작은 보석들은 내 인생의 기반이었다. 

그들은 내가 나 자신에, 내 식욕에, 내 분노에, 내 두려움에, 내 쾌락에, 내 목소리에 처음으로 접촉하게 해주었다. 나를 진짜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들 없이 '존'과 나'는 없었다.

 

- p. 449 <3부 * 계속 떠들 수 있게 놔두는 것>

 

 

결국 크리스티는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인 애착 관계를 형성했고, 원활히 스킨십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솔직해졌다.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된 크리스티. 이 순간이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이제는 안다. 주고 받는 것의 즐거움을. 솔직한 말과 행동으로 친밀함을 견고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사랑과 힘이 되어주는 것을. 미래를 약속하고 함께 걸어 나가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변화는 점진적으로 계속되어왔으며 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편한 상태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진정한 자기 모습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었다. 아마도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을 것이다. 변하지 않은 두려움과 외로움의 속삭임. 그리고 나의 일부라고 평생을 생각했던 부분이 희미해지는 것은 곧 내 존재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진짜 나는 누구지?', '이게 진짜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 말이다.

 

불안한 모습도 그렇지 않은 모습도 모두 크리스티다. 다만, 이제는 친밀함이 무엇인지를 아는 그녀이기에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웠고, 꾸준한 상담을 통해 애착을 알려준 그들이 그녀 곁에 있었다.

 

시시콜콜한 대화의 중요성, 느슨하면서도 깊고 솔직한 연대. 계속 떠드는 것은 그녀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솔직하지 못해서, 아무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없어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괴로움과 싸워왔다. 로젠 박사는 그녀의 목마름을 알아보고 필요한 처방을 내려 주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에 변화를 선물했다.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마지막엔 인생의 기반이라고 말할 만큼 소중한 사람으로 거듭난 구성원들은 평생동안 그녀에게 힘이 되어줄 존재가 되었다. 박사와 함께 크리스티가 자기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과를 앉은 자리에서 연달아 열두 개 먹던, 섹스에 어려움을 겪던, 두려움에 휩싸이던 크리스티가 지금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고백함으로써 진짜 '나'에 가까워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감사의 말을 읽을 때가 되어서야 소설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작가 소개에 수필가라고 떡하니 쓰여있던 것을 눈여겨 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황 묘사가 지나치게 자세하다는 것에서 알아차려야 했을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실존하는 이야기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걸까.

 

작가 당신 자신의 발자취가 담긴 <지나친 고백>. 고백을 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운 시간을 온몸으로 지나왔으며, 많은 고민을 했을까. 솔직한 것이 종종 발목을 잡았던 필자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이렇게도 솔직하고도 자세한 고백이라면 추앙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또한 그녀의 지나친 고백으로 덩달아 맑고 밝아지는 경험을 하였다. 물론 읽는 동안의 짧은 시간으로 인생 전부가 송두리째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녀와 같이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독자가 있다면 적어도 유의미한 변화를 만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로젠 박사의 철학인 "비밀은 유독하다."는 말이 어찌나 와닿았는지 모른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지나친 자기 노출로 인해 약점을 잡히거나,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렇기 때문에 사생활을 들키지 않고자, 일종의 두터운 방어기제로써 두꺼운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밀은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고, 병을 키운다. 결코 세상에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없다.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솔직한 자신의 목소리를 죽여서는 안된다.

 

비밀이 비밀이어야만 해서 비밀에 부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10명의 사람 중에 7명은 나에게 무관심하고, 2명은 나를 싫어하며, 1명은 나를 좋아한다고. 어차피 다수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그게 사실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나를 싫어할 사람은 싫어할 것이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며, 관심이 없는 사람은 계속 그럴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비밀을 꽁꽁 숨겨 두는 이유는 평판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까 두려운 마음과 수치심 때문인 경우가 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두려움은 나를 위한 두려움이 아니다. 타인에 초점이 맞춰진 두려움일 뿐이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솔직함을 기반으로 시작과 끝을 잘 맺을 수 있어야 하며, 아픈 상처마저도 드러내고 빠르게 아물 수 있도록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상태나 감정에 대해 고백하는 것이 우선시 될 수 있다. 만약 현재 자신의 사회적 지지체계가 무너져 있다 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꺼내야만 한다. 

 

결국 치유는 털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내 아픔과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변화의 시작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을 가만히 안고 있는 것보다,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학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제3자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남들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떤가. 사실 나조차도 이해 못하는 것들인데. 가지고 있는 아픔 그 자체를 인정하며, 상황에 대해 설명하면서 되려 얻는 것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후련함은 물론이고, 크리스티가 느낀 것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지를 통해 집단 지성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욕망 또한 마찬가지다. 노골적인 표현으로 말하기를 서슴지 않음으로써 정확하고 솔직한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준다.

 

크리스티는 치료 모임에 참석하여, 오랜 시간 꾸준하게 자신의 치부와 욕망을 드러내는 치유의 과정을 걸음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었다. 책은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끈끈하면서도 느슨한 연대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구성원의 진심어린 지지와 응원의 중요성과 함께 반복되는 과거를 청산하고 싶다면, 거기 머물러서 될 것이 아니라 조금씩 힘겹지만 변화해야 함을 일러준다. 

 

부끄러운 나도 나고, 멋있는 나도 나일 뿐이다. 사람이 어떻게 괜찮은 모습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건 신화에서나 있을 법한 인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아픔을 겪고, 화를 내고, 상처를 주고 받으며 별로인 모습도 가지고 있다. 나 자신조차 그런 모습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한 사람의 아픔이 나아질 수 있을까? 어떤 순간에서도 자신을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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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 되었을 무렵, 독자로부터 비윤리적인 내용이 담긴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스티의 마음이 어땠을지 필자로서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늘 그렇듯 비난은 쉽고 이해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어렵지만 내가 나를 이해하고, 타인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 꾸며내지 않은 각자의 생각을 전달하고, 또 그렇게 사랑과 연대로 이어진 세상에서 자유로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타인과 내가 우리 자신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첫 시작이 아닐까.

 

'비울수록 충만해진다'는 표지의 말처럼, 과거의 상처가 머무를 곳을 조금씩 줄여나가 공백을 만든다면 그 자리에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미래의 것이 자리할 공간이 생기는 법이다. 우리 마음의 평수는 정해져 있고, 끊임없는 정돈만이 앞으로의 삶을 가능케 한다. 또한 생각보다 크게 느껴지는 사건들이 사실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사건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런 모습까지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와 같은 괜한 걱정 가득한 문장으로 안 그래도 아픈 마음을 헤집지 말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당신의 그런 면까지도 안아줄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영원히 그 문제를 안고가리라는 법도 없다. 그런 근심 걱정을 조금씩 나누고, 마음에서 지워나가다 보면 충만함을 느끼는 순간이 올 것이다.

 

어떤 모습이더라도 나는 나임을, 아픔을 직시하고 조금씩 해결하는 이야기로써 전진할 수 있다는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는 책, <지나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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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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