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를 살게 한 예술 작품들 -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

도서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를 읽고
글 입력 2023.02.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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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역의 문화예술지에서 전시 분야를 맡고 있는 취재기자다. 지역에서 국제사진제를 15년 동안 운영하고 계신 분의 인터뷰를 다녀왔다. 그 분은 사진과 전시문화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예술에는 치유의 힘이 있지요. 특히 전시의 경우에는 그래요. 공연은 일회성에다가 할 때마다 많은 인력과 재화가 들어요. 준비 과정도 마찬가지고요. 전시는 가져다 두면 오래오래 볼 수 있고 지키는 사람도 많지 않아도 돼요. 하다못해 완성된 작품을 친척들이라도 한 점씩 사주면 거기서 오는 테라피가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말을 들으며 전시의 맛을 알기 위해 굴렀던 지난 몇 달을 떠올렸다. 그래 나도 전시 작품들을 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나는 어떤 작품을 보며 감동과 치유를 얻었더라...

 

전시를 진지한 눈으로 보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원래는 음악에 관심이 많아 공연과 음악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전시를 담당하던 선배가 퇴사하고 연극인인 후배가 입사하며 업무분장에 변화가 있었다.


전시작품들은 도무지 말이없었다. 글을 못쓰니 썼다 하면 혼나고 혼나면 괜히 더 쓰기 싫고 쓰기 싫으니 더 안 쓰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한 번은 기사가 세 번이 반려되어 같은 전시장만 네 번 간 적도 있다. 그런 내 마음에 들어오게 것은 그 속에 담긴 '사람'과 '이야기'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다.

 

 

 

고보연 작가의 설치 작품들


 

그 시작은 고보연 작가의 작품들이다. 고보연 작가는 티백, 전단지, 종이컵, 우유팩과 같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폐품들을 활용하여 치유, 재생, 여성 등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헌 옷과 폐 천을 바느질하거나 엮어 유방이나, 탯줄, 머리카락 등 여성적인 것들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좋아한다. ‘땋기_그 연대의 힘’과 ‘관계_그 이어져 있음’, ‘엄마의 산에서 머물다’가 그러하다. 세 작품은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모두를 품어낼 수 있는 거대하다.

 

작품을 보고있으면 엄마의 품에 안긴 듯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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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작품은 ‘땋기_연대의 힘’이다. 폐천을 세 갈래로 길게 땋아 제작되었다. 그래서 작품의 길이는 끊임없이 늘어날 수 있고, 그럴수록 규모는 점점 커져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엮이고 엮이며 커다란 벽을 넘는 이미지는 어려운 시기에도 손과 손을 마주잡고 버티는 민중들의 단단함을 떠올리게 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식물의 무한한 생명력을 표현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인터뷰 자리에서 작가님을 뵈었을 때 물어보니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세 번째 사진은 현재 전북 도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엄마의 산에서 머물다’. 버려진 옷가지들을 중첩하여 젖무덤을 만든 작품이다.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솟은 모양이 산처럼 보인다. 예로부터 산은 어머니로 비유되곤 했다. 모든 것을 희생하고 감내하는 이미지가 닮았기 때문이다.

 

 

 

2022 그린르네상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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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보연 작가의 작품들이 예술작품에서 ‘치유’의 코드를 발견할 수 있게 했다면, 팔복예술공장에서 진행된 '그린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예술에 대한 시각을 넓혀주었다.

 

전시에서는 24개국 8팀 77인의 작가가 공존과 공생에 관한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양한 시각 언어로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김순임 작가의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김 작가는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식자재를 먹은 후 남은 씨앗을 화분에 발아시켰다. 식물을 생명이 아닌 단순히 상품 중 하나로 소비하는 대형마트가 죽어가는 생명을 품는 인큐베이터가 된 것이다.

 

함께 전시된 김유정 작가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가전제품 위를 살아있는 틸란드시아로 덮어 식물에 의해 잠식되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전시와 연계된 작가와의 만남에서 작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날 길을 걷다 서로 엉겨있는 식물의 잔해를 보았고 그로부터 잔인함을 느꼈다. 거실이나 침실에 인테리어용으로 매달려 있는 틸란드시아는 그에 걸맞는 식물이었다고.

 

두 설치 작품의 주제는 완전히 반대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다는 것. 예술이 품고 있는 다양성과 실험 정신은 조금은 달라도 괜찮다는 위로를 준다.

 

 

 

제15회 전주국제사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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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진행된 제 15회 전주국제사진제의 전경이다.

 

이번 행사는 한옥마을 인근의 서학예술마을에서 개최되었다. 마을은 예술인들과 공예작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들이 가득한 특별한 동네다. 많은 행사가 열리지만 국제사진제의 '길거리 전시'는 마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서학예술마을의 초입에는 새로운 도서관의 공사가 한창이었고, 안전을 위해 둘러진 슬레이트를 활용한 전시가 진행되었다.

 

취재를 위해 마을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마을에 거주하는 듯 보이는 한 할머니께서 발걸음을 멈추고 전시 사진을 한참 들여다 보셨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전시는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하던 때였다. 그래서 쓰기 어렵고 복잡한 게 맞다고 믿었지만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2 매일매일내일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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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부터 11월9일까지 팔복예술공장에서 열린 전시다. 전시는 '여성'과 '노동'에 주목하여 기획되었다.

 

여성 작가에게 집안일과 예술행위는 완전히 다른 일이 아니다. 둘은 모두 작업과정이 매우 고되지만 현대 사회에서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외받기 때문이다. 전시에서는 전주와 제주도에서 주로 활동하는 여성 작가들이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서 다채롭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풀어냈다.

 

전시는 두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도래할 풍경'과 '이어질 풍경'이 그것. '도래할 풍경'에서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사진 속 작품은 박진희 작가의 것이다. 전주에서 활동하다가 10년 전 제주도에 정착한 박 작가는 자신을 구성하는 많은 레이어들을 만들어 쌓았다. 작품을 보며 나의 현주소를 돌아볼 수 있었다.

 

 

 

 

'이어질 풍경'에서는 한국 여성 미술 1세대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준비되었다. 80년대 한국에 페미니즘 담론을 불러온 김종례, 방정아, 임정희, 윤석남, 정정엽, 홍이현숙 작가의 아카이브 영상을 상영했다.

 

전시의 오프닝에서는 김종례 작가가 깜짝 등장하여 청중들을 놀라게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주의 미술가 집단인 '시월모임' 등을 운영했던 김 작가는 노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잊고 있던 노동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감동적인 말이었다.

 

"저는 여성이 왜 필요한지 증명해야만하는 시대에 살았어요. 그 시대에서 세 딸이 있는 엄마로서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싸워야만 했지요. 80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저에게 노동은 아직도 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그것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어요."

 

관련기사

: [Opinion] 잊어버린 이름들을 찾아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미술/전시]

: [Opinion] 한국여성으로서 '나'에 대해 외친 윤석남 [미술]

 

 

 

김혜원 개인전, 32개의 야외주차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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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부터 20일까지 아트갤러리 전주에서 진행되었다. 전시의 주인공은 '용담댐 시리즈'로 화제를 모으며 데뷔한 김혜원 작가다.

 

김 작가는 자본주의에 의해 소모품으로 전락된 자연을 주목한다. 사람들은 산이나 바다가 있어 경치가 좋은 곳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유원지를 만들어 소비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가장 많이 반영되는 곳은 다름 아닌 '야외주차장'. 문명과 부를 상징하는 자동차가 드나들며, 그것이 용이하기 위해 자연을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고 인공물로 범벅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야외주차장에 다큐멘터리적 시선을 첨가했다. 성수기가 지나면 텅 비어버리는 주차장을 훼손되어 쓸모를 잃은 땅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4X5 인치 대형 카메라를 도입하고 가급적 비슷한 촬영조건을 유지하며 이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사진들이 모두 미니멀한 파스텔 톤인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김 작가는 최근 사진 에세이집인 '사진·문학·인문학의 카르텔'을 출간했다. 책의 2장은 이미지에 관한 내용이다. 사진이 어떻게 의미화 되는지 하이데거와 롤랑바르트, 수전손택 등의 이론에 빗대어 설명한다. 특히 가장 첫번째 글인 '사진,나비, 바니타스 혹은 메멘토모리'에서는 바니타스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바나타스 알레고리를 바탕으로 박제된 나비를 찍은 구본창의 사진 '굿바이 파라다이스'와 유하의 시 '사진 속엔 그녀가 살지 않는다'를 검토했는데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괜히 롤랑바르트나 존 버거 같은 위대한 평론가들이 사진에 주목한 것이 아니겠단 생각이 들었으며, 언젠가 꼭 사진을 배워보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

 

 

 

한봉림, 영원한 운동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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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봉림 작가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도자를 예술의 영역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순환하는 달의 이미지들이 재미있었다.

 

첫 번째 전시실은 천원지방의 원리에 입각하여 그의 정원을 관념적으로 재구성하였다.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검은 천은 밤하늘처럼 보이며, 그 속에 나열된 나무와 도자의 표면은 달의 궤적을 그린 위상도를 닮았다. 두 번째 전시실은 천모양으로 빚어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로 만든 오브제들을 무한의 기호를 본따 만든 전시대 위에 늘어놓는다. 마치 파도같아 보였다. 파도는 공기의 '순환'과 '달'의 중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달과 여성 그리고 물로 구성되는 풍요의 삼각형을 떠올렸다. 셋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달이 차고 지는 모습은 여성의 생리주기에 따라 변화하는 자궁의 모습을 닮았으며, 여성과 물은 양수라는 키워드로 통한다. 앞서 말했듯이 조수간만의 차는 달에 의해 만들어진다.

 

한편 전시에는 '사운드 스케이프' 기술도 도입되었다. 사운드 스케이프란 '소리로 장소를 기억하는' 기술이다. 현재 유행하는 엠비언트 음악이나 컨셉츄얼 asmr과도 관계가 있다. 현장의 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소리를 채집한 후 재배열하여 예술 작품에 생동감을 더하여 두 배의 감동을 주었다.

 

관련기사

: [Opinion] 글 쓰는 당신을 위한 컨셉츄얼 ASMR [문화 전반]

[오피니언]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애프터 양’ 속 음악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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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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