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너진 무성영화, 바빌론(Babylon) [영화]

글 입력 2023.02.1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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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볼 영화를 선택할 때, 제목이 선택에 큰 역할을 한다. 영화 제목은 영화의 내용, 주제, 목적 등을 함축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관객들의 영화 선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제목 선정은 영화 제작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바빌론>을 관람하고자 한 이유도 바로 제목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역사 속 바빌론 제국이나 바벨탑에 대해 다루는 것이 아닌, 1920년~30년 할리우드 무성영화를 주제로 다룬다. 따라서 영화 제목만 보면 바빌론과의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는 그런 특이점이 끌려 왜 감독이 이런 제목을 선정했을까?, 이 영화와 '바빌론'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란 의문을 가지고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내용과 바빌론 제국 이야기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이 의문의 답을 이 글에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크기변환]바빌론 포스터.jpg

 

 

 

바빌론 제국과 무성영화


  

화려했지만, 점차 난잡해지고 탐욕에 빠져 멸망한 고대 바빌론 제국. 성경에 따르면 탐욕과 오만에 빠진 바빌론 제국이 하늘에 닿을 바벨탑을 쌓았고, 이에 노한 신이 그들의 언어를 분열시켰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바벨탑 건설에 차질이 생겨 언어가 통하지 않자 바빌론인들은 탑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몰락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 <바빌론>도 이처럼 화려하고 찬란했던 할리우드 무성영화가 몰락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파티 장면을 보여준다. 파티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작자, 배우 등 무성영화 관계자였으며 모두 환락에 취해있다. 술과 담배는 기본이고 바로 옆에서 마약과 섹스를 한들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유흥으로 코끼리까지 등장시키니 그들이 얼마나 난잡하게 노는지 알 수 있었다.

 

 

[크기변환]바빌론-스틸컷.jpg

 

 

그들은 매일 해가 뜰 때 촬영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파티를 즐기는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무성영화 촬영장도 파티와 마찬가지로 난잡한 공간이었는데, 제대로 된 계획 없이 배우를 캐스팅하고 촬영 당일 무엇을 찍을지 정하는 쪽대본의 단순함에 황당함을 느끼게 했다. 촬영 중에는 엑스트라가 죽어도 무관심할 정도로 이상한 공간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을 그저 ‘난잡’하게만 보이게 하지 않는다. 겨우 구한 카메라로 다이내믹하게 찍어낸 엔딩 촬영부터 계획 없이 캐스팅된 배우가 눈물 연기 하나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과정을 보여주며 무성영화 촬영장은 난잡하지만 ‘마법’ 같은 세계라는 것을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하지만, 그 난잡함과 마법 같은 세계도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그저 표정 연기 하나면 충분한 무성영화와는 달리 목소리, 노래, 말투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진 유성영화는 배우들이 그동안 공들여 쌓은 영화 탑을 무너뜨릴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영화 제작자도 마찬가지였다. 촬영지는 야외에서 실내로 바뀌었고 감독보다 세트장 오디오 스텝의 의사가 더 반영되는 하극상도 일어났다. 심플하고 난잡한 무성영화는 유성영화 등장 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유성영화를 쉽게 생각하고 변화의 파도에 뛰어들었던 주인공들도 결국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크기변환]바빌론-사진.jpg

 


그렇게 이 변화는 바벨탑처럼 화려하고 난잡한 무성영화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업계 최고라 자신하던 무성영화 관계자들도 유성영화란 새 언어에 적응하지 못하면 곧바로 영화계에서 제외됐다. <바빌론>에서는 그 과도기를 보여주며 그들이 새 언어에 적응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빌론 제국의 언어가 분열되자 바벨탑도 무너졌듯, 기존에 없던 유성영화가 들어오자 무성영화도 무너졌다. 바빌론 제국과 무성영화, 그들은 마법처럼 화려하던 때도 있었지만 탐욕스러웠고 난잡하여 밀려오는 파도를 견디지 못해 자멸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영화가 왜 <바빌론>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됐는지, 그 질문의 답은 아마 이런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COMMENT


  

<바빌론>은 영화를 얘기하는 영화다. 영화의 역사 중,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시기를 조명하고 그 시대 사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벌써 100년이 지난 그 시절의 이야기라 그들이 견디지 못한 변화의 시대마저 우리에겐 고전이 됐을 정도다. 그리고 그 고전보다 오래된 영화는 누군가에게 꿈이었고 사랑이었고 목숨보다 소중했다는 사실을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다.


3D, CG로 발전된 현재 영화 시대에서 이런 옛 영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은 관객의 니즈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로 영화사의 중요 변환점을 알 수 있으니 영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관람하길 추천한다.

 

 

[양창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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