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서로의 이야기가 되어 줄 여성들 - '나를 키운 여자들' 홍현진 작가

글 입력 2023.02.19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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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래가 막막할 때면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뒤적이곤 한다. 특히 결혼과 출산에 따라 삶이 크게 달라지는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가 절실할 때가 있다. 이야기를 찾는 것은 정답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다. 다만 다른 여성이 삶의 분기점에서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 왔는지 살피다 보면 내 삶을 좀 더 잘 살아갈 작은 힌트를 하나쯤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나를 키운 여자들』홍현진 작가도 계속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닌 사람이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를 창업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려 했고, 엄마들의 목소리를 담은 웹진도 만들었다. 퇴사와 이직, 창업을 거치며 부지런히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던 그가 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버거워졌을 때 찾은 것 역시 영화와 드라마 속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세상과 불화하는 이 여자들의 삶에서 작가는 용기를 얻고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나를 키운 여자들』에서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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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자꾸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내리는 영화 속 여자들에게 끌렸어요.”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홍현진입니다. 2010년부터 9년간 기자로 일하다가 퇴사한 후 콘텐츠 에디터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 ‘창고살롱’을 창업하고, 사이드프로젝트로 엄마들을 위한 웹진 ‘마더티브’를 만들기도 했어요. 여덟 살 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해요. 재작년에 번아웃이 와서 2022년을 스스로 안식년으로 정하고 그동안 쓴 원고에 새로운 원고를 더해 『나를 키운 여자들』을 냈습니다.

 

 

출간을 축하드려요. 안식년에 책을 내시다니 꽤 바쁘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책을 만드는 게 작은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웃음) 그래도 예전에 연재할 때 썼던 원고를 다듬고 새로운 원고도 쓰면서 제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 번아웃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이기도 했고요.

 

 

4년간 쓰신 글이 모여 책이 되었는데요, 그동안 작가님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책에 실린 글이 작가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4년은 인생에 변곡점이 많았던 시기예요. 안정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던 제가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저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뭔가를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직을 하고, 창업을 하고, 사이드프로젝트로 웹진도 만들며 바쁘게 살았죠. 열심히, 즐겁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의문이 들 때도 많았어요. 


이 책에는 그런 순간마다 제가 찾아봤던 영화와 거기서 만난 여성 캐릭터의 이야기가 제 이야기와 함께 담겨 있습니다. 특히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조금씩 미쳐 있는 여자들, 좀처럼 사랑하기 힘든 뒤틀린 여자들에게 주목했어요. 그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죠. ‘되고 싶은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못나고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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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슬로운> 스틸컷

 

 

그토록 독특한 여성 캐릭터에게 주목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자꾸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내리는 영화 속 여자들에게 끌렸어요. 이들이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어떤 선택을 내림으로써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그 선택이 자기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주는 걸 알면서도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묘한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했죠. 알아채지 못했던 제 욕망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예를 들어, 영화 <미스 슬로운>에서는 로비스트로 일하며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자 ‘슬로운’이 등장해요.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 애쓰고, 어디서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저는 누구의 눈치도 안 보는 슬로운이 부럽기도 했어요. 


현실에서라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상한 여자’로 박제될 법도 한데, 영화에서는 이들이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맥락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의 ‘소영’은 그런 말을 하죠.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그냥 다들 거죽만 보고 대충 지껄이는 거지.” 저 역시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이 이상한 여자들에게도 사정이 있으니 한번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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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만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저를 키웠어요.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책에 실린 글 중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꼭지는 무엇인가요? 그 이유도 듣고 싶습니다. 


첫 꼭지인 ‘왕따였던 나를 오랫동안 미워했다’를 가장 좋아합니다. 영화 <우리들> 이야기와 함께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왕따당했던 경험을 썼어요. 언어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11살 때의 일을 글로 쓰기까지 30여 년이 걸렸어요. 그때의 상처를 언어화하며 그 시절의 저를 미워하는 대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다 쓰고 나서 비로소 내 안에서 그때 그 일이 정리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어요. 제게는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무척 큰 의미가 있는 글이에요.

 

 

책에 소개할 영화와 드라마를 선별하기까지 정말 많은 작품을 보셨을 것 같은데요, 그중에서 32편(영화 27편, 드라마 5편)의 작품을 어떻게 고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너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유명한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분들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으니까요. 또, 글의 종류가 비평이나 리뷰가 아니라 에세이였기에 제 이야기를 할 여지가 있는 작품이어야 했어요. 좋은 작품이라도 제 삶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적다면 고르지 않았습니다. 

 

 

『나를 키운 여자들』이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작가님을 키운 여자들의 이야기라면 현실에서 작가님을 키운 여자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책을 쓰며 떠오르는 여자들이 정말 많았어요. 특정한 한두 사람이 아니라 살면서 만난 모든 여자가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어깨를 내어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을 때, 회사에 계시던 다른 워킹맘 선배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당직도 대신 서주시곤 했는데, 같은 상황에서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돼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는 저보다 앞서 그런 고민을 했던 분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기도 했어요. 제가 여성 커뮤니티를 창업했던 것도 여성들이 서로에게 ‘레퍼런스’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혼자 끌어안고 있던 고민을 공유하면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되거든요. 힘들 때 만난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들이 저를 키웠어요.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번아웃을 겪었다고 하셨는데, 이 시기를 지나며 작가님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 같은 여자들이 많을 것 같은데, 저는 인정욕구가 큰 편이고 자기효능감도 중요한 사람이라 계속 뭔가를 하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러다 번아웃을 만나서 처음으로 자체 안식년을 보내며 SNS도 안 하고 사람도 별로 안 만나고, 돈도 안 벌었는데, 별일 없더라고요. (웃음) 그때 남들은 나한테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는 것, 내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나를 멋지게 포장하려는 마음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안식년을 보내며 일과 나를 좀 분리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예전에는 나한테 일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건강하지도 못했고 지속하기도 어려웠어요. 이제는 나한테서 일을 뺐을 때도 남는 게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럼 작가님과 비슷한 나이대에 번아웃을 겪는 여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꼭 작품 추천이 아니더라도 작가님이 도움받았던 무언가가 있다면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라는 책을 선물 받아 읽었어요. 책을 좋아해서 서점을 시작했지만, 좋아하는 게 일이 되자 힘들어져서 되려 좋아하는 마음을 원망하게 된 정지혜 작가님의 이야기가 나와요. 저 역시 그랬어요. 좋아하는 일로 창업까지 해서 행복할 줄로만 알았는데, 일과 나 사이의 거리 유지를 잘 못 하니까 힘들어지더라고요. 책을 읽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만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 방식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어요. 좋아하는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을 어떤 식으로 풀어서 일할 것인가가 더 중요했던 거예요. 당시에 이 책을 읽으며 저의 '좋아하는 마음'을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비슷한 고민으로 힘든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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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분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그게 글쓰기로까지 연결된다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자리에서 수많은 종류의 글을 써오셨는데요, 작가님에게 글쓰기는 무엇인가요? 어떤 마음으로 글쓰기를 계속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저한테 글쓰기는 ‘안 할 수가 없는 무언가’인 것 같아요. 어쨌든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그렇게 꾸준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글쓰기밖에 없어요. 글을 쓸 때면 나에게 떨어진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고민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이 책 원고를 쓰면서도 들여다보기 싫은 것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나를 밀어붙여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보는 일이 괴로우면서도 즐거웠습니다.


또 저는 무언가의 맥락이나 본질을 글로 정리해서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걸 좋아하기에 이 일을 계속해왔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 그들에게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있는데 글쓰기가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거죠. 『나를 키운 여자들』 후기를 읽으면서도 다들 책을 읽은 다음 각자 삶의 맥락에 따라 자신만의 새로운 글을 쓴다는 게 좋았어요.

 

 

작가님의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시거나 다음 책을 쓴다면 어떤 소재를 다루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단편소설과 관련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이를 낳고 길게 독서할 시간이 부족해 e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이야기를 하다 마는 것 같고 난해하다며 단편소설을 잘 읽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저는 오히려 단편이라서 생기는 여백에 채우고 싶은 게 많아지더라고요. 읽고 나면 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해요. 『나를 키운 여자들』에서 영화 속 여자들을 다뤘다면 다음번에는 단편소설을 다루는 에세이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콘텐츠 기획자,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엄마로서 작가님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확실한 건 없지만 글은 계속 쓸 것 같아요. 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그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재능과 경험을 잘 살려서 저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또 예전에는 육아와 일이 한쪽에 정성을 쏟으면 다른 쪽에는 그만큼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제로섬게임처럼 느껴졌는데, 아이가 좀 자란 지금은 양립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예전만큼 불안하지 않아서 두 가지를 함께 잘해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펼친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신도 당신이 뒤틀림에 대해 고백하고 싶어질 것이다’라는 박초롱 작가님의 추천사가 반갑고 고마웠어요.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영화 속 여자들을 통해 제 이야기를 끄집어냈듯, 이 책을 읽는 분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그게 글쓰기로까지 연결된다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가 이 책을 쓰며 가장 바랐던 거예요.

 

***

 

우리는 이야기 속에서 성장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곤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홍현진 작가의 삶 역시 한 편의 이야기가 되어 다른 여성에게 새로운 ‘레퍼런스’가 되어주지 않을까. 『나를 키운 여자들』 속 ‘미친’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위에 겹쳐진 홍현진 작가의 이야기 역시 어떻게 전개될지 쭉 지켜보고 싶어진다. 분명 읽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일 거라는 예감이 든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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