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래도 어쩌겠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사람]

글 입력 2023.02.12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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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쩌겠나,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어릴 적엔 이 말이 참 싫었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온점 찍힌 고인의 삶을 보며 한다는 말의 주어가 그가 아닌 나라는 점이 그랬다. 그를 그리워하는 것, 추억하는 것, 그를 위해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이야말로 산 자가 남은 생을 보내며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는 분명하다.

 

여덟 살 때 처음으로 죽음을 목격했다. 친할아버지의 임종이었다. 산소호흡기를 막 뗀 할아버지가 쥐어짜는 목소리로 나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는데, 알아듣지를 못해 옆에 서 있던 아빠가 다시 일러주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때를 직감하시고는 스스로 양치하고 옷을 갈아입고 본인 물건을 정리한 후 차분히 눈을 감으신 거라 했다. 죽음을 직감한 자의 기분은 어떨까 문득 생각했다.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부산 김씨 집안의 첫 손주였던 나는 어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얼굴에 붙은 젖살과 밥 먹다 흘리는 침 한 방울까지도 예뻐해 주시던 할아버지였다. 그 시절 아들 셋에게 바람직한 본보기가 되기 위해 가부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버릇 없이 굴던 내 행동을 따끔하게 짚어 주시기도 했고, 묵직하고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방에서 의외의 실력을 보여 주시기도 했다. 어느 명절에는 자식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갈 무렵 소파에 앉아 눈물을 훔치시기도 했다. 내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이처럼 오래되어, 불현듯 조각의 파편처럼 떠오르는 게 전부였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꿈에 나온 적이 있었다. 가족들이 책상 앞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간 자리가 비어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내가 어딘가를 다녀왔고, 돌아왔을 땐 그 빈 자리에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놀란 내가 할아버지를 불렀고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도 놀란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웃으면서도 울 듯한 표정이 꼭 언제 이렇게 컸느냐 묻는 듯했다. 나는 연신 애타게 부르며 다가갔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꿈에서 깼다. 가신 이후 처음이었으니 16년 만에 살아 움직이는 할아버지를 본 거다. 기분이 이상했고 그다음 주는 추석이었다. 명절 삼아 일찍 오셨나 보다 생각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신다고 늘 생각하곤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겪었던 그 죽음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할아버지는 없다. 하지만 다신 볼 수 없는 존재는 아니다. 우린 그때처럼 꿈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적어도 내겐 그렇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 이제는 무책임하고 입에 발린 말이 아닌, 그것만이 고인을 위한 나의 최선이리라 믿는다. 나의 성장만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눈물짓게 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생존 자체가 내게 주어진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의 생존은 보람차다’. 마주쳤던 할아버지의 눈과 이 문장을 곱씹다 보면 십 년도 이십 년도 삼십 년도 나는 거뜬히 살 수 있겠지.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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