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 사랑했던 나의 것들 [영화]

글 입력 2023.02.1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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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전부 영원할 수 없을까, 왜 결국에는 떠나갈까. 오랫동안 끌어안고 잤던 미키마우스 인형도, 첫 손주라며 나를 금이야 옥이야 해 주시던 할아버지도, 평생을 곁에 있을 것만 같던 친구와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멀어지고 만다. 머리가 클수록 시간의 순리에 따라 변하는 환경을 받아들이며 물 흐르듯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내게 오래도록 남는 것이 바로 영화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어린 시절 비디오테이프가 닳도록 돌려 봤던 <슈렉>의 슈렉과 피오나가 내게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남아있고, 무용을 전공했던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더티 댄싱>은 카세트테이프 속 사운드트랙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마음 한편에 깊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 것, 분명 그것은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최근 내게 이런 생각을 일깨워준 건 근래 개봉한 영화 <바빌론>의 영향이 크다.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로 이름을 알린 영화감독 데미안 셔젤이 <바빌론>을 15년간 준비했다는 사실은 영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빌론>은 각종 대작 영화가 제작되던 1920년대 할리우드 전성기 시절을 보여 준다. 스타를 꿈꾸던 자유로운 영혼의 넬리는 파티에서 온몸을 던지며 신나게 춤을 추다 얼떨결에 영화에 캐스팅된다. 그 파티에 등장할 코끼리를 운반하던 매니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영화계를 동경한다. 그러다 운 좋게 할리우드 스타 잭 콘래드의 눈에 들어 현장에서 부리나케 뛰는 말단 스태프로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좋아하는 건 열심히 하게 되고, 열심히 하다 보면 잘하게 되기 마련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 배우와 시류를 정확히 꿰뚫는 프로 제작자, 또 이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감독. 이 세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좋아하는 일을 늘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들과 닮았다.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점, 한 번 꽂히면 그 끝을 볼 때까지 파고든다는 점이 그렇다. 이토록 고집스러운 성격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지를 보다 일찍이 알게끔 해 주었다. 열정이 부르는 기분 좋은 갈증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올라가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어 준다. 정점을 만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황홀경의 세계. 세상으로부터 좋아하는 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에, 어떤 것들은 저문다. 청춘은 시간이고, 고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난날의 찬란을 품고 살기 위해 애쓴다. <바빌론>에서 도박과 마약을 끊지 못하고 대중의 신뢰를 잃은 넬리와 할리우드의 기술적 문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저물어가는 잭 콘래드에게도 예외는 없다. 그런 잭에게 엘리노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 시대가 끝난 거야. 이유는 없어. 하지만 영화 속에서 당신은, 몇 번이고 살아날 거야. 천사나 영혼처럼 영원할 거야.“
 


언제나 한결같은 형태로 아름답게 남을 수 있다는 건 영화의 엄청난 장점이자 강점이다. 낡지 않는 장르, 늙지 않는 배우, 닳지 않는 필름.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에는 가장 찬란한 시절의 내가 담겨 있기에, 그것을 열렬히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시대가 응집된 영화 한 편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다. 이에 매료된 이들은 영화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세 단계를 이렇게 구분했다. 첫 번째는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 두 번째는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 <바빌론> 속 그들과 영화를 전공한 지금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수에 찬 매니의 눈빛을 공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건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행복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전부 영원할 수 없을까, 왜 결국에는 떠나갈까. 한때는 실체가 없는 것에 원망을 쏟아부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한 이제,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단지 사랑하기에 내 곁에 영원히 남는 것도 있다.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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