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베토벤의 세계를 디깅하다. - 클래식 디깅 클럽 베토벤

글 입력 2023.02.11 14:2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누구나 그렇듯 취향에 맞는 곡들을 담은 나만의 뮤직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플레이리스트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생활방식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내 플레이리스트는 용도나 기분, 상황에 따라 나뉘어 있는 게 특징이다. 듣기만 해도 텐션업 되는 곡도 있긴 하지만, 차분하거나 가볍게 리듬을 탈 수 있는 곡이 대부분이다. 보통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계속 업데이트하며 듣는다.


꽂힌 곡들은 무한 반복하기도 하지만, 쉽게 질리는 편이라 들어보지 않은 곡 위주로 듣는 편이다. 선곡이 좋은 매장에 가면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취향저격인 새로운 곡을 발견하면 바로 검색한다. 모바일 어플에서 제공하는 최신곡 리스트에서 끌리는 제목이나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으면 들어본 후, 마음에 들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 새로운 좋은 곡을 만나면, 네잎클로버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언젠가부터 최신곡 리스트를 참고하는 것도 지겨워져서 음악어플이나 OTT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만 재생한다. 요즘 많이 이용하는 것은 유튜브뮤직이다. 테마가 가장 다양하고, 색다르기 때문이다. 상황이나 기분뿐만 아니라 이야기처럼 주제가 있고, 창의적인 제목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이처럼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를 체험하는 것은 장점이 많다.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경험할 수 있고, 플레이리스트마다 이야기와 테마가 있다 보니 들어봤던 곡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타인의 플레이리스트에 관심이 많다. 때껄룩, essential, 네고막을책임져도될까, 민플리 등과 같이 인지도가 높은 유튜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 타인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 받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이런 트렌드를 잘 반영한 ‘클래식 디깅 클럽 베토벤’ 공연을 보고 왔다. 여기서 디깅이란 채굴, 발굴이라는 뜻으로 DJ들이 자신의 공연리스트를 짜기 위해 음악을 찾을 때 많이 썼던 단어이다. 지금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료조사 의미에서 쓰기도 하며, 특색 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때도 사용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고, 공유 받는 트렌드도 디깅의 또 다른 예다.


이번에 본 ‘클래식 디깅 클럽 베토벤’은 베토벤의 삶, 음악 세계를 깊이 파고들고, 곡에 담긴 그의 생각이나 심정을 발견했으며, 누군가가 짜놓은 베토벤 플레이리스트를 누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디깅의 의미를 100% 활용한 공연이었다.


평소 클래식 공연은 컨셉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색다른 컨셉과 구성이 돋보였던 이 공연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포스터]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jpg

 

 

연말에 봤던 클래식 공연과 이 공연을 보면서 알게 된 점은 해설자의 몫이 생각보다 크다는 거다. 곡 소개와 진행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그 공연의 색이 결정됐다. 


이번 공연의 해설은 쉽고, 유머러스함이 돋보였다. 편안하고, 친근한 분위기 덕에 클래식과 가깝지 않았던 일행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다.


해설가 김문경은 피아노 연주를 통해 베토벤 음악과 모차르트 음악의 차이점,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작곡한 곡에 드러난 심정에 대해 알려줬다. 이 방법은 관객이 연주를 들으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베토벤의 인생, 청력을 잃어갈 때의 심정, 작곡 당시 베토벤의 상황 등을 옛날 옛적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소개했다. 베토벤의 연대기를 재미있게 들은 후, 공연을 보니 음 하나하나가 더욱 소중히 느껴졌고, 가슴에 와닿았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구성됐으며, 각각 테마가 정해져 있었다. 1부는 악성 베토벤의 탄생 2부는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이었다. 1부에는 「피아노 소나타 8번 다단조, 작품번호 13 ‘비창’」과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사장조, 작품번호 30-3, 1악장」 연주가 있었다. 2부에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과 「피아노 4중주 제3번 다장조, 작품번호 36-3」 연주를 보여줬다. 테마에 맞춰 진행된 공연을 보니 베토벤의 일생을 두 편의 단편 드라마를 본 것 같았다.

 

 

[꾸미기]대표.jpg

 

 

 

피아노 소나타 8번 다단조, 작품번호 13 ‘비창’


  

피아노 소나타 8번 다단조보다 ‘비창’으로 많이 알고 있는 이 곡은 제목 그대로 비극적이고, 깊은 슬픔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pathétique은 불어로 비장함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실제로 들어보면 차분하고, 여유롭고, 부드러움이 느껴져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지만, 음을 떠올리며 환상적인 곡을 만들어낸 작곡가로 유명하다. 귀가 안 들리기 시작하고 이를 인정한 시기에 작곡한 곡이 바로 ‘비창’이다. 당시 베토벤은 소리가 점점 들리지 않아 불안했을 것이다. 더구나 작곡가로서 귀에 이상이 생긴 것을 인정하는 심정은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웠을 거다. 그 심정을 이해한 뒤 공연을 보니 편안하게만 들렸던 곡이 다르게 들렸다. 

 

여유롭고 밝은 분위기 뒤에 숨은 비극과 슬픔 그리고 초연함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잘 느껴졌던 것은 비장함이었다. 소리를 들을 수 없어도 끝까지 음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가 한 음, 한 음에 담겨 있었다. 


특히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연주는 베토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고,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경의를 표하는 듯했다. 곡에 몰입한 그의 표정을 보며 연주를 듣고 있으니 그의 얼굴에서 베토벤이 겹쳐 보였다. 연주를 넘어서 온몸으로 베토벤을 잘 표현한 피아니스트였다.


평소 애정하는 곡인 데다 온 마음을 담은 연주를 듣고, 새로운 면을 발견해서 기억에 남은 공연이었다.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사장조, 작품번호 30-3, 1악장」


  

이 곡은 들을 때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특징이 돋보이는데 한쪽만 튀지 않고 조화로워서 신기했다. 베토벤의 특징인 길게 이어지는 음과 무거운 분위기보다는 톡톡 튀며 천진난만하고 밝은 분위기의 곡이었다. 특히 귀에 꽂히는 바이올린의 소리가 라이브로 들으면 어떨지 궁금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유진과 피아니스트 정한빈의 호흡은 서로를 신뢰하는 연인 같았다. 바이올린의 얇으면서 단단한 소리는 귓속을 파고들었고, 상쾌하고 시원한 기분까지 들었다. 빠른 리듬과 스타카토처럼 짧게 끊어지는 음은 당차고 용감하게 걷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대화하듯이 소리를 주고받고, 두 악기의 소리가 합쳐지고, 서로 눈을 맞추고, 미소 짓는 모습을 볼 때는 뮤지컬이 생각났다. 사랑의 대사를 주고받고,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


  

이 곡은 처음 들어본 것 같은데 아주 낯설지 않았다. 아마 어딘가에서 조금씩 들어봐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클래식은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으니 말이다. 


제목처럼 마술피리를 부는 사람이 떠오르는데, 첼로만의 소리를 매우 잘 표현한 곡이었다. 특히 첼리스트 이경준의 연주는 진한 여운을 줬다. 정한빈의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까지 더해지니 두 가지 매력이 느껴졌다. 피아노의 부드러운 소리를 첼로의 웅장하고 깊은 소리가 감싸 안아주는 것 같았다. 


깊고 진한 베토벤의 매력과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모차르트의 매력의 융합이 돋보였던 곡이었는데 그 색을 잘 살렸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피아노의 소리가 바이올린보다는 첼로의 소리와 만나는 걸 더 좋아한다. 두 악기의 소리는 정반대의 색을 갖고 있는데, 합쳐지면 아름다운 하모니가 탄생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정반대인 두 사람이 만나 맞춰가고 서로의 색에 물들어가는 과정과 닮았다. 두 악기의 만남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어서 감격이었다.

 

 

 

「피아노 4중주 제3번 다장조, 작품번호 36-3」


 

‘피아노 4중주 제3번 다장조’는 ‘비창’보다 더 기억에 남은 연주였다. 앞서 나온 연주자들 그리고 비올리스트 이신규까지 함께했는데, 온 마음을 다해 연주하는 네 사람을 보니 좋아했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주인공들이 실제로 나와서 연주하는 것 같았다.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호흡을 맞추고,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예뻤다. 지휘자 없이 서로의 손과 눈을 바라보며 호흡을 맞추고, 선율을 느끼고, 함께 연주하는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듯 보였다. 

 

네 사람의 무대를 보면서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으로 모인 사람들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 곡은 베토벤이 어렸을 때 썼다는데, 아이 같은 순수함과 맑음이 네 사람의 연주하는 모습과 닮았다. 네 사람이 괜스레 부러워져서 코끝이 찡해졌다.


여러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보다는 웅장함이 덜했지만, 섬세한 따스함이 가슴을 울렸고 소리 하나하나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첫 곳부터 마지막 곡까지 서로 다른 매력과 색을 갖고 있었지만, 공통점은 베토벤의 삶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디깅 컨셉에 맞게 베토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공연 곡들이었다.



[꾸미기]2.jpg

 

 

어릴 적 내 방의 책꽂이에는 위인전 만화책이 여러 권 있었다. 부모님께서 만화책을 못 읽게 헤서 만화책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 만화책을 읽었다. 이렇게라도 그림 투성이의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아서였는지, 한 인간의 스토리가 재밌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만화책을 읽는 데에 흥미를 느꼈다. 

 

지금은 이야기도 위인들의 이름조차 잊어버렸지만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이름이 몇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베토벤이다. 청력을 잃었지만 음악을 포기하지 않는 베토벤이란 인물이 당시 나에게 충격적이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베토벤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조금 더 알게 되면서 나한테 베토벤은 노력형 천재, 고난의 순간들이 많았던 인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최근 베토벤을 다시 만났다. 그동안 그를 수박 겉핥기로 알았다면, 이번 공연을 통해 알맹이까지 알게 됐다.


그만큼 곡 리스트부터 해설, 연주까지 베토벤을 세밀하게 그린 클래식공연이었다. 


25일에 쇼팽도 디깅 컨셉으로 공연을 연다고 하는데, 앞으로도 작곡가별로 디깅한 공연이 계속 열리길 바란다. 

 

 

 

강득라.jpg

 

 

[강득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