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날 절에서 빈 소원은 [여행]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에서
글 입력 2023.02.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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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교적인 목적은 분명 아니었다. 종교를 갖는 것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스스로 무교이기를 자처하는 나이고, 무언가 의지할 대상이 필요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절’이라는 공간이 환기하는 성스러운 기운 자체보다 ‘그 절’이라는 실체적 의미가 더 중요했다.

 

나는 가끔 특정 장소에서 느끼는 평안이 신기하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과 동네는 당연하고, 특별한 추억이 담긴 것도 아닌데 눈에 익었다는 이유만으로 안도가 되는 흔한 골목, 단 한 번 스쳐 지났을 뿐이더라도 낯선 것들 속에서 의지가 되어주는 그런 장소들까지. 

 

그런 곳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내 삶의 꽤나 큰 축복인지도 모르겠다. 심술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작은 내 존재에 비해 이 세상은 한없이 넓고 커서, 아무리 노력한들 내 생에 주어진 시간 동안 전부를 담아 갈 수는 없다는 게 애석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누구보다 모험을 갈망하면서도 새로움이 겁이 나서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에 곧잘 숨어 버리기도 한다.

 

이런 심술쟁이에게는 이러니 저리니 해도 무조건적으로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있는 편이 좋은 듯하다. 언제나 나에게 열려 있는, 대가 없이 항상 나의 편이 되어주는 존재. 

 

잊고 있었지만, 그런 장소가 또 하나 있었다. 나의 모난 구석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기에 비로소 온전한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는 곳. 

 

바로 ‘그 절’, 개심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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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소박한 절이었다. 하지만 화려함과 웅장함과는 다른 중후함이 있다. 심검당의 굽은 나무 기둥과 안양루의 빛바랜 단청. 보기 드문 재래식 화장실과 나무로 된 외나무다리.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아름다움이 되는 곳. 

 

편안하지만 결코 고귀함을 잃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항상 그 어떠한 근심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계절마다 색다르게 물드는 절이기도 했다. 봄철에는 분홍빛의 벚꽃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여름이면 초록빛 물결 속에 붉게 피어난 백일홍이 고고함을 견지했다. 가을이면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절을 감싼 단풍이 고즈넉한 기운을 품어냈고, 겨울이면 소복이 쌓인 눈이 모든 것을 비워낸 절의 풍경을 다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개심사의 이 모든 계절을 사랑했다.

 

마음이 열린다는 그 철학적인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한참이나 어렸지만, 성공이나 실패, 경쟁과 패배, 도전과 좌절 등을 몰랐던 그 시기에도 제 나름의 고뇌는 있었던 걸까.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개심사에서 나는 평온이란 무엇인가를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그곳은 한때 나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철없는 어린이에게도 부처님의 위엄은 느껴졌었나. 해탈문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얌전해지곤 했지만, 일단 차에서 내리면 계절이 바꾼 아름다운 풍경을 느낄 새도 없이 연못으로 돌진하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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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 모양의 연못에 놓인 외나무다리. 나는 그 다리를 정말 좋아했다. 마치 엄청난 도전에 임하는 듯 사뭇 진지한 얼굴로 다리를 건너곤 했다. 좁은 다리는 어린이에게 꽤나 그럴듯한 도전이 될 수도 있던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절에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건 길고 좁다는 이유로 나의 도전의 대상이 됐던 그 다리가 실은 다섯 걸음 만으로 충분히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짧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좁았던 폭 역시 나무를 덧대 넓게 바뀌어 있었다. 내 인생의 큰 세계관이 붕괴된 기분이었다. 빠지면 큰일이 날 것 같았던 연못의 깊이 역시 바닥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얕다는 것에도 괜한 배신감이 들었다.

 

그곳을 놀이터로 삼기엔 나의 몸도 마음도 너무 커버린 후였다. 성장의 증거는 뿌듯해야 하는데 왠지 씁쓸했다. 한때의 순수함이 전부 사라졌다는 허전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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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절로 향하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왓장에 소원을 적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순수하지도 결코 낭만적이지도 않은 나는 그 기왓장이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감성보다는 이성적 판단에 기울었던 과거에는 이런 기원 행위가 비합리적일 뿐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는 것에까지 쉽게 날 서곤 했던 것이다.

 

기왓장에 소원을 적던 그 순간에도 그 효력이 믿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었고, 조금은 이에 기대 보기로 했다. 

 

소원 성취 유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재하는 불안을 조금 내려놓고 싶었다. 그냥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 나를 좀 응원해 줬으면 해서.

 

대웅전에 들어가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드렸다. 본존불의 오른쪽에는 돌아가신 누군가의 위패와 사진이 놓여있었다.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우리 가족과 개심사의 연이 시작된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 곳에는 한때 오빠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날 절을 하고 나서는 길에 엄마는 오빠의 사진을 한참 동안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 애틋했던 손길이 어린 나에게도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엄마는 그곳에 오빠가 있다고 했다. 죽음의 의미를 몰랐던 내게는 오빠의 부재도 엄마의 말씀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 나는 정말로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어느 해 개천절 즈음, 엄마는 절에 등을 다셨다. 다른 기념일에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우리 가족은 종종 개천절이 다가오면 절을 방문하곤 했다. 이십 년 가까이 흐른 이번 방문에서야 비로소 그 당시 우리 가족이 개심사를 자주 방문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기댈 곳이 절실했던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으로 느껴질지라도. 그냥 그곳에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자라오면서 나는 믿음에 대해 꽤나 박하게 굴어왔다. 손해 볼 것도 없는데 괜히 지는 기분이 싫었다. 빈 기왓장에 한 자 한 자 소원을 적어 나갈 때 그 어느 때보다 절 이름의 뜻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그 많던 방문 중에 가장 마음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기왓장을 쓰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는 또 한 번 일년등을 다셨다. 가족들의 소원을 등에도 가득 채워 넣었다. 두 번을 빌었으니 올해는 좀 더 그 꿈들에 다가가기를. 작은 믿음이 정진하는 길목에 힘과 쉼이 되어 주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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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내려오는 차 안에서 또 다른 운치 있는 풍경을 감상했다. 생각해 보면 개심사는 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겨울이면 민둥산으로 남은 언덕이 조금 쓸쓸해 보일 때도 있지만, 이국적인 한우 목장의 풍경은 언제나 두 눈을 즐겁게 한다. 봄이 되면 벚꽃으로 둘러싸인 길목이 장관이 되기도 하는데 아직 오지도 않은 봄에 벌써 가슴이 설레었다.

 

차를 잠시 멈추고 저수지를 감상하며, 조만간 또다시 절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날은 나를 위한 소원 대신 오빠를 위한 기도를 올려야겠다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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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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