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음악의 악성, 베토벤 : 클래식 디깅 클럽

글 입력 2023.02.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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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클래식 디깅 클럽 - 베토벤.jpg

 

 

'디깅(Digging)'은 파기, 발굴 등을 의미하며, 문화 전반에 걸쳐서 개인의 취향을 표현하고 이를 소비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음악 분야에서는 공연 리스트를 채우기 위해서 음악을 찾는 행위를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공연의 목록을 뜻하는 'setlist (셋리스트)'는 공연의 주제와 더불어서 기획·연출의 묘미를 전반적인 느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은 이 셋리스트의 공개 여부에 대해서 상반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공연 후기를 찾아보며, 공연 리스트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는 사람과 일명 스포일러 방지를 외치며, 공연 당일까지 어떻게든 비밀을 간직하고 싶은 사람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어진 디깅 문화는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짜는 행위로 확대되었다. 누군가의 디깅으로 선택된 음악은 자주 가는 카페의 분위기를 단번에 사로잡으며, 그곳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된다. 때로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듣고 싶어지는 음악을 찾다가, 이를 하나로 묶어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차곡차곡 쌓이기도 한다.

 

 

【 프로그램 】

 

Theme 1. 악성 베토벤의 탄생

피아노 소나타 8번 다단조, 작품번호 13 '비창 

Piano Sonata No.8 in c minorm Op.13 'Pathétique'

바이올린 소나타 8번 사장조, 작품번호 30-3, 1악장

Sonata for Piano Violin No.8 G Major, Op.30 No.3, I Allegro assai

 

Theme 2.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

7 Variations from Mozart's Magic Flute

피아노 4중주 제 3번 다장조, 작품번호 36-3

Piano Quartet in C Major Wo0 36 No.3

 

 

이처럼 많은 이들의 니즈로 형성된 문화의 향연은 지난 2월 4일에 열린 <클래식 디깅 클럽: 베토벤>에서 실현되었다. 청중들에게도 익숙한 멜로디를 연상시키는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연주에 이어서 피아노 정한빈, 바이올린 이유진, 비올라 이신규, 첼로 이경준의 아름다운 앙상블로 마무리되는 프로그램은 단숨에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또한, 폭넓은 연령대를 아우르는 친숙한 주제인 가족 이야기와 베토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모차르트와의 인연을 풀어낸 음악 칼럼니스트 김문경의 해설은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피어났던 작은 긴장감마저도 유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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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을 떠올려보면 요제프 칼 슈틸러가 그린 초상화가 단번에 머릿속에 떠오른다. 음악의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의 강렬한 눈빛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과히 압도적이다고 할만하다. 이는 청력 악화라는 상황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나간 거장의 면모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베토벤 사후에 발견된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쓰인 유서 속, 꺾이지 않은 그의 결심이 오늘날까지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을 디깅한 4곡은 우리가 알고 있던 베토벤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Pathétique)'은 원어에서도 느껴지듯이 1악장부터 3악장까지 모두 다른 분위기의 비장한, 감동적인, 감격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곡을 작곡하고 출판할 당시인 1798년 무렵에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에 영감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고전파와 낭만파를 잇는 음악가로 평가된다.

 

바이올린 소나타 8번 1악장은 청력이 악화되고 있던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머무르면서 작곡한 곡으로, 밝고 경쾌한 리듬을 주고 받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 곡을 들으면서 문득 베토벤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의 하일리겐슈타트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마주선 그는 어떤 심정으로 다시 불굴의 신념을 일깨웠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쯤,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어딘가 비장하고 격정적인 음악으로 기억된 '베토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만큼이나, 이번 공연을 보고 난후에는 바이올린 소타나 8번 1악장이 반가운 곡으로 기억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30211_153926448_01.jpg

 

 

2부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테마에 의한 7가지 변주곡으로 이어졌다. 넓은 음역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 알려진 첼로의 깊고 웅장한 소리와 피아노 특유의 맑고 따뜻한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었다.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피아노 4중주 3번 다장조이다. '모차르트를 디깅한 베토벤'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되는 이 곡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바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에 영향을 받아 작곡했다는 것이다. 1785년에 완성되었다고 알려진 이 곡을 작곡했던 당시에 피아노 4중주가 널리 사용되는 앙상블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점은 더욱 흥미롭다. 이처럼 동시대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된 음악적 교류는 후세에 이르러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양상으로 발견되고 있다.

 

한편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의 4중주의 화음은 청중들의 눈과 귀를 함께 사로잡았다. 자신의 연주뿐만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마음이 느껴져서일까, 서로 눈을 마주하고 호흡하는 장면에서 어느새 미소가 지어졌다. 음악은 청각과 시각을 넘어선 마음의 소리를 전달하는 힘이 존재한다. 이 마법과도 같은 일은 베토벤이 작곡한 음악에서부터, 그에게서 무한한 영감을 받은 음악가의 연주를 통해서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

 

공연이 끝나고 나온 뒤, 주변을 둘러보니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많은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의 문을 경계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 여행이 오늘따라 특별하게 느껴졌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탑을 바라봤을 때, 약 2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 속에서 몇 세기를 거쳐 온 걸까? 

 

<클래식 디깅 클럽: 베토벤>으로 한동안은 클래식에 깊게 매료될 거라는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공연의 여운을 최대한 길게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문을 들어왔을 때와 달리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은 현저하게 느려졌다.

 

 

 

안지영(컬쳐리스트).jpg

 

 

[안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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