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음악의 불협화음이 화음을 이루는 공간

용산. PPS. 스매시드 버거 세트.
글 입력 2023.02.07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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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함께 식사를 했던 사람과 식당을 평가하는 기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식당은 가능하면 음식의 맛으로만 판단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식당의 인테리어나 음악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인테리어까지는 신경 쓸 수 있지만 음악까지 신경 쓰는 것은 좀 과하게 평가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음식은 보통 미각만이 아니라 시각과 후각을 함께 사용해야 판단할 수 있다. 음식의 외관과 향기가 맛과 함께 음식의 정보를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음식에 따라 향이 강하지 않을 수 있기에 후각은 시각과 미각과 비교해 제한적인 감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음식은 시각과 미각을 중심으로 후각이 뒷받침되는 형태로 파악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청각도 음식을 먹을 때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각, 미각, 후각과 비교해 청각은 음식과 연결하기가 쉽지 않다.


음식의 맛, 외관, 향기를 그에 맞는 박자, 리듬, 멜로디 등에 연결하는 작업은 서로 다른 영역에 대한 조예가 모두 깊어야 가능하다. 단순히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다고 맛, 외관, 향기를 박자, 리듬, 멜로디 등과 연결하는 것이 쉽지도 않다. 감각과 감각을 연결해 새로운 감각을 형성하는 것으로 감성에 이성을 즉, 논리를 형성해 타인에게 자신의 감성을 논증해 공감시키는 작업이다. 문제는 이성에 감성을 부여할 때보다 감성에 이성을 부여할 때는 유아적(唯我的)인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음식과 음악에 대한 개인의 관점을 손님에게 강요할 수 있다. 어차피 음악을 잘 모르기도 할 뿐더러 괜히 자기 색깔을 강조하다가 손님을 잃을 수도 있으니 대중 식당에서 멜론 top100을 주구장창 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 본인도 음악을 잘 모른다는 이유까지 더해져 식당을 평가할 때 음식의 맛 이외에 다른 요소는 최대한 배제하고 특히 음악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 이유이다.


이렇게 음악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기에 용산의 PPS는 재밌는 식당이다. 굳이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통용되기는 용산의 경리단길 즉, 용리단길이라 불리는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PPS는 수제버거 식당이지만 외관만 보면 바(Bar) 같다. 심지어 간판도 없다. 아는 사람만 오든 아는 사람 따라 오든 일단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려는 식당은 아니다. 통유리창에 붙은, Post Pleasure Sound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리는 포스터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일단 발견하면 눈이 가는 내관이다.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식당 내부는 깔끔한 스테인리스 오픈형 주방에 한쪽 벽에는 LP와 위스키가 진열되어 있다. 스테인리스 주방에 맞춰 가구들도 대리석판이 놓힌 철제 식탁인데 의자는 접이식 목제 의자이다. 일단 보이기로는 모던한 바 같은데 일반적인 바가 내부를 잘 보여주지 않는 것과 비교해, 게다가 모던한 가구와 인테리어 속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접이식 목제 의자는 뭐하는 곳인가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내부로 들어가면 턴테이블에서 멜로디와 박자는 리드미컬하지만 음의 변화는 크지 않은 재즈가 흘러나온다. 수제버거 식당이라는 걸 알고 가서 망정이지 몰랐으면 들어가는 와중에 "제가 올 곳이 아닌가벼. 죄송합니다."하며 뒷걸음질 쳤을 분위기이다. 그나마 뒷걸음질 치지 않을 수 있던 것은 모던한 분위기 속 "니가 왜 여기 있어?"하는 접이식 목제 의자 때문일 것이다. 차가운 도시 남자의 귀여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가구이다. 버거 메뉴가 딱 3개이고 사진도 없이 깔끔하게 글로만 정리된 하얀 메뉴판마저도 절제와 깔끔함이 차갑게 느껴지는데 그 와중에 접이식 목제 의자만은 기댈 수 있는 편안함이 있다. 깔끔한 하얀 메뉴판에서 치즈버거인 스매시드 버거를 선택해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면 여전히 뭐하는 가게인지 궁금하다. 생각해보니 수제버거 식당 메뉴판인데 위스키가 상당히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버거에 위스키 한 잔이라... 음악은 또 재즈라... 생각도 못한 조합이다.


스매시드 버거. 다른 수제버거 식당으로 따지면 더블치즈버거이다. 패티 2장과 치즈 2장. 거기에 생양파가 들어간 간단한 조합. 여기에 PPS만의 훈연한 케찹 소스가 들어가 있다. 향을 맡는 순간 훈연향이 훅 들어와 식욕을 자극한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케찹의 신맛과 훈연향이 함께 입을 채우며 다음 한 입을 유도한다. 패티는 간이 강한 편이 아니며 육즙이 살아있는 촉촉한 패티도 아니다. 오히려 부스러지면서 텁텁할 수도 있는 패티에 가까운데 오히려 스매시드 버거에서는 부스러지면서 텁텁한 것이 좋다. 입 안에서 패티가 부스러지는 순간 케찹 소스와 치즈가 흘러들어와 패티를 적시고 섞이면서 패티가 촉촉해진다. 전체적인 버거의 맛은 훈연한 케찹 소스의 맛 하나가 좌지우지 하는 간단하고 직선적인 버거이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음식의 맛 이외에 다른 요인이 몸에 느껴진다. 리드미컬하되 잔잔하게 퍼지는 재즈 음악이다.


복잡하지 않은 버거의 맛이 리드미컬하되 잔잔한 재즈 음악과 만나는 순간 입이 음식을 씹는 동안 몸은 재즈에 몸을 맡기고 있다. 엉덩이 근육을 위아래로 살짝 튕기며 어깨는 좌우로 흔들흔들하고 머리는 어깨를 따라 흐느적 거린다. 남들이 보면 '뭐하는 놈인가?' 싶겠지만 직선적인 버거가 리드미컬하되 잔잔한 재즈 음악과 만나면서 통통 튀는 음식이 된다. 세트를 시켜 곁들여진 감자튀김은 소금간이 강해 짠 맛이 강한, 마찬가지로 직선적인 음식이다. 훈연한 신맛과 짠맛이 교차로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와중에 리드미컬한 재즈 음악이 느리면서도 잔잔하게 잽과 훅을 간간히 섞어준다. 음식 자체의 맛은 특별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하지만 음악과 함께 만나는 순간 어떻게 보면 부족한 지점들이 채워지면서 식당 자체의 분위기를 즐기게 된다. 혼밥을 하러 와서 여유 있게 수제 버거를 먹어도 좋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와 재즈 음악을 느끼면서 음식을 즐기고 편안하게 얘기를 나눠야 하는 공간이다.


훈연한 신맛 일변도인 치즈버거의 직선적인 맛에 볶은 양파가 들어가면 단맛이 더해져 단맛과 신맛에 훈연이 섞이며 더 진하고 조금이라도 복잡한 버거가 될 것이라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PPS는 맛에 집중한 '식당'보다는 모든 것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목표인 듯하다. 그렇다면 맛은 조금이라도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다. 간단할수록 리드미컬한 리듬과 멜로디를 잔잔하게 전하는 재즈 음악이 귀를 파고들어 몸에 느껴질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질테니. 버거를 다 먹고 함께 온 이들과 얘기하는 와중에 위스키 한 잔까지 더하면 금상첨화일테지. 간단하고 직선적인 버거가 위스키에 씻기면서 그 빈 감각을 재즈가 채워줄테니. 그래서 더 재밌는 식당인 듯하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버거, 재즈, 위스키라는 조합은 겉으로 보기에 불협화음에 가깝다. 하지만 음식의 맛이 어떤 박자, 리듬, 멜로디와 어울릴 수 있는지 혹은 음악이 어떤 음식의 맛과 향에 화음을 이룰지 고민하며 답을 내린 화음은 혀만이 아니라 귀를 넘어 몸을 움직인다. 불협화음으로만 생각한, 생각지도 못한 조합이 화음을 이루니 식당은 미각만이 아닌 감각을 온 몸으로 느끼는 공간이다.

 

 

[고재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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