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들의 인정과 관심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의 초상 [영화]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
글 입력 2023.01.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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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성공의 필수 조건은 나르시시즘.” 사회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소셜 미디어의 팔로워 수, 좋아요 수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시대다. 본인은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주인공 ‘시그네’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파티에서 관심을 독차지하는 소위 ‘SNS 셀럽’들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눈치다. 


지극히 평범한 카페 바리스타의 인생을 사는 시그네는 남들의 관심과 사랑이 고프다. 매일 반복되는 따분한 삶 속, 행위 예술가로 매거진 표지를 장식한 남자친구 ‘토마스’의 사랑만이 그녀를 활기 띠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점점 명성을 떨치는 토마스에게는 시그네보다 예술가로서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한 듯하다.


토마스와 주변 이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시그네의 행동은 과감해지기 시작한다. 토마스와 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식사 자리에 가서 견과류 알레르기라는 거짓말을 하며 고통을 호소하거나, 카페에서 맹견에 물린 여성을 도와준 후 피 칠갑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고 그 일화를 무용담처럼 과장해서 떠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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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네의 기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토마스의 관심뿐 아니라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정체불명의 불법 알약을 복용하기에 이른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부작용이 있다는 알약 ‘리덱솔’의 존재를 인터넷에서 발견한 후, 입에 수십 알씩 털어 넣는 위험한 행위를 반복한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소홀해진 토마스의 관심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행위였지만 주변 이들의 이목을 끌자 쾌락을 느끼고, 종국에는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지속적인 리덱솔 복용으로 인해 두드러기는 물론, 먹은 음식을 모두 게워내기 시작하고 탈모와 경련까지 심해졌지만 그녀는 거울에 비친 흉측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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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고통과 위험을 전시하는 시그네의 행위는 기괴하면서도 불쾌하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지나치게 높은 병적인 상태’를 말하는 신조어, ‘관심병’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끔찍한 모습을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을 모두 차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녀를 자기 파괴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나 단순히 ‘관심을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자기 파괴’로 시그네의 모든 행위와 심리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듯싶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최악의 순간에 처했을 때마다, 비관하고 절망하기는커녕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에 잠기는 건 왜일까.


예컨대 자신의 기사를 써준 친구에게 거짓말이 탄로 나 주변 이들이 모두 그녀의 곁을 떠나갈 위기에 처했을 때는 직접 자서전을 써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상황을 상상하고, 머리가 빠지다 못해 뽑히기 시작하고 얼굴의 살점이 녹아 흘러내릴 때는 뉴스에 나와 고통을 이겨낸 영웅담을 늘어놓는 상상을 펼친다.


이는 진실된 자신으로부터의 도피다. 본인의 결점과 불완전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아무런 변화 없이 남들에게 인정받기만을 바라는 심리에서 기인한 자기 연민이다. 자신의 결핍이 더 이상 결핍으로 여겨지지 않는 상상 속 세계에서 유영하며, 자신이 부족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고 도망치는 행위만을 반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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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병, 공상허언증, 과대망상, 현실로부터의 도피, 그리고 극심한 정도의 자기 연민. 영화가 꼬집는 것은 시그네의 존재로 상징되는 이 모든 정신병리학적 증상이 진실된 소통, 인정, 유대가 결여된 사회로부터 기인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는 비단 그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파하는 시그네를 정성껏 간호하는 것처럼 보이던 토마스는 사실 관심받기를 원하는 이기주의자일 뿐이었다.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시그네를 과하게 보듬고 보호하면서, 버스 안의 사람들이 동정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을 즐긴다. 그녀의 존재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토마스가 하는 행위예술의 실체 역시 그가 잘못된 방식으로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가게에서 판매하는 의자, 전등 등의 가구들을 훔쳐서 그를 쌓아 미술 작품을 만들고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를 이어간다. 그는 자신이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있다고 굳게 믿는 나르시시스트이지만, 현실에서는 절도범일 뿐이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모델 에이전시 관계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이중적이다. 마르고 정형화된 모델의 모습에서 탈피하고자 시그네를 비롯한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며 매거진 화보를 촬영하지만, 촬영 중 피를 토하며 시그네가 쓰러졌을 때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기는커녕 서로 남 탓하기 바쁜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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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 수로 인기의 등급을 매기고, 부와 명예를 척도로 사람을 사귀고, 매거진의 표지 혹은 기사 헤드라인을 차지하기 위해 안달 난 영화 속 인물들에게는 과정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외면에 비춰지는 결과만이 중요한 듯하다. 서로의 진실된 내면을 바라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진심이 담긴 소통과 유대가 일어날 리 만무한 사회다.


남들의 인정을 받고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 외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들과 이기주의 및 거짓이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그네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어쩌면 토마스의 거짓된 사랑도,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도, 모델로서 매거진 표지를 장식하는 것도 아닌 결점 또한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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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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