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그녀의 작품을 더 잘 감상하고 싶다면 -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

글 입력 2023.01.2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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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오스틴_평면표지.jpg

 

 

편지, 요즘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만일 편지를 지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면, 예쁜 손 편지가 감성의 대상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편지라는 단어에서부터 아련하고 뭉클한 감정이 발현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편지를 쓰고 주고받는 일련의 과정이 무척 특별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편지가 오래전 어느 날에는 유일한 소통의 수단이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수단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편지 속에는 알알한 감정뿐만 아니라 일상의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편지 자체가 하나의 유산이 되어 후손에게 전해지고 심지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중하게 보관되는 것이 아닐까?

 

책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는 우리에게 <오만과 편견>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이 실제 자신의 가족 및 지인 등에게 송부한 편지들을 엮었다. 영국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제인의 스무 살 무렵의 편지부터 꽤 나이가 든 이후의 편지까지, 그녀의 시간과 머물렀던 장소와 함께 담아낸 것이다.

 

그렇다고 크게 특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제인 오스틴과 가장 많은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은 그녀의 언니였는데, 그 둘의 대화는 여느 자매와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이야기, 관심이 가는 남성을 비롯해 자주 만나는 지인들 소식 등 오늘은 어떤 일을 했고 누구와 만났는지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풀어내고 있다.

 

다만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일상을 묘사하는 문장에서 그녀의 감수성, 그녀의 솔직함이 묻어나는 톡톡 튀는 문장들을 발견하는 재미일 것이다.

 

 

H. 씨는 엘리자베스와 첫 춤을 추고 또 그녀와 췄어.

하지만 두 사람은 각별해지는 법을 몰라.

 

p.42

 

 

각별해지는 법이라니, 참으로 아름다운 표현이지 않은가? 굳이 요즘 말로 바꾸자면, 썸을 탄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일 텐데, 훨씬 애틋하고 수줍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누군가가 '우리 각별한 사이야?'라고 물어온다면, '우리 썸 타는 사이야?'라는 질문보다 더 많이 설레고 더 큰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듯 깊이가 달라지는 법이다.

 

 

난 타인의 괜찮은 점을 어떻게 계속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

 

p.88

 

 

이런 솔직함이라면, 누구든 마음의 빗장이 풀려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 연기하는 태도보다 솔직하게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해 버리는 태도가 훨씬 매력적이다.

 

타인의 괜찮은 점을 억지로 찾는다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솔직하게, 어렵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용기이다.

 

책을 읽다 보면, 위에 발췌한 예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된다. 책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에 수록된 수십 통의 편지 곳곳에서 이 같은 제인 오스틴의 위트를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의 편지들을 끝까지 읽어갈 수 있게 만든 힘은 그녀의 비범한 표현과 문장이었다.

 

제인 오스틴에게 편지란 무엇이었을까, 어떤 존재였을까? 책 <제인 오스틴, 19세기 영국에서 보낸 편지>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단지 안부를 묻기 위한 연락 수단에 불과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보다는 지금의 제인 오스틴을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디딤돌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믿는다. 그녀가 글솜씨를 연마하고 글쓰기를 사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궁극엔 그녀를 작가의 길로 이끈 대단한 존재였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와 에세이, 그 사이 어디쯤에서 마음껏 세상을 보고 느끼고 기록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준 편지. 제인 오스틴에게는 편지가 곧 습작 노트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편지를 먼저 읽고 난 후 그녀의 작품을 읽는다면, 그 안의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작품을 더 잘 감상하고 싶다면, 편지를 읽어 보시길!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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