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해(利害)와 이해(理解) 사이, 사랑이란? [드라마/예능]

서로 다른 이해를 지닌 사람들이 사랑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사랑의 이해>
글 입력 2023.01.2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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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쩌려고들 저러는 거야.”

 

아찔한 곡소리가 절로 뿜어져 나왔다. 시작부터 잔잔한 긴장을 유지하며 애간장을 태우던 드라마가 결국 폭풍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발목을 간질이던 물이 어느 틈에 턱 밑까지 차오른 기분.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지루하다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과몰입 직전까지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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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를 기점으로 10화에 도달한 JTBC 수목 드라마 <사랑의 이해>의 이야기이다. 


서사구조로 치면 ‘위기’ 단계에 접어든 드라마의 전개와 순탄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주인공의 행보, 그리고 과몰입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시청자인 나까지. 

 

두 주인공이 행복했으면 하는 진심과 그럼에도 ‘바람’은 도의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양심. 

 

공존하는 양가감정이 참으로 괴롭게 한다. 완벽한 응원도 비난도 할 수 없는, 모순적이고 나약한 나는 그저 함께 고통받을 수밖에…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묘한 감정을 들게 하는 드라마였다. 드라마의 내용 자체가 크게 색다른 분위기는 아닌데, 환기하는 기운이 적어도 나에게 만큼은 신선했다.

 

특별히 로맨스 장르를 선호하지도 않는 데다, 아주 진중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구미가 확 당기는 첫 인상은 아니었다.

 

일상을 배경으로 하는 평범한 소재의 이야기와 드라마에서나 현실에서나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등장인물들. 와중에 남자 주인공 ‘상수(유연석 역)’는 1화부터 답답함을 넘어 조금은 찌질 하다는 인상까지 보여줬다.

 

극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호는 아닌, 아주 재미있지는 않지만 또 재미 없는 것도 아닌. 내내 애매한 텐션을 유지하던 드라마는 자극적이지도 싱겁지도 않지만 특유의 감칠맛으로 서서히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뒷 내용을 궁금하게 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다음 화를 보게 하는 흡입력이 있는 드라마라는 것이 나의 첫인상의 총평이다. 


다만 조금씩 쌓여가던 갈등의 균열은 10화를 기점으로 완전히 부서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인공들 만큼이나 긴장감에 휩싸이다 엔딩과 동시에 큰 한숨을 몰아 쉬었다. 혼란한 마음과 함께 다음주에는 꼭 본방사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해(理解)

1.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함.

2. 깨달아 앎. 또는 잘 알아서 받아들임.

3.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이해(利害)

1. 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상수, 수영, 미경, 종훈.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겠지만, 평범하다고 느껴지는 이 이름들은 그 자체로 특별하고 매력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이름들은 아니다.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이름들. 평범을 가장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언제나 특별한 구석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이 이름들 만큼이나 그 주인들 역시 평범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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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매력적인 것과 거리가 먼 것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만이 아니다. 

 

‘사랑의 이해.’ 


특정 전공의 개론 강의나, 어떤 과목의 입문서를 연상시키는 밋밋한 제목은 다소 몰개성적인 측면이 있다. 제목만으로도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대충은 연상이 가지만 특수한 맥락은 파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신성한 개념을 설명하는 데는 퍽 단조로운 구석이 있는 그런 이름.

 

이러한 개인적인 감상이 뒤바뀐 건 첫 화를 보고 나서 드라마의 기획의도와 로그라인을 찾아본 이후였다.


 

각기 다른 이해(利害)를 가진 이들이 서로를 만나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理解)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멜로 드라마.

 

-드라마 <사랑의 이해> 공식홈페이지

 

 

‘사랑’의 정의를 탐색하는 것이 주요 메시지일 거라는 단순한 기대와는 달리 불가항력적인 마음까지도 계산하고 통제하려는 미성숙한 태도를 꼬집는 드라마였다는 데서 반전이 있었다.

 

제목의 중의적인 의미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드라마에 대한 나의 감상 태도 역시 그에 맞춰 변화했다. 

 

배경 지식 없이 스토리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이해(理解)해 나가는 것도 좋은 감상 방법이겠지만, 기획의도에 맞춰 관점을 설정한 다음 작품에 몰입하니 세심한 연출이 더욱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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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의미를 의식하고 나면 드라마의 첫 장면이 새롭게 다가온다.

 

 

맞다, 우리는 차별한다

통장에 얼마가 찍혀 있는지

한 달에 얼마나 쓰는 지로

조선시대의 계급은 신분이 정했고

2022년 대한민국의 계급은 돈이 정한다

은행을 찾는 사람에게도

은행에서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계급이 있다

 

그리고 나와 그녀 사이에도

 

-드라마 <사랑의 이해> 1화 

 

 

사람이 있는 곳에 감정이 스며들고 사랑 역시 일상에서 피어나지만, 물신성이 깃든 돈의 속성은 그것을 취급하는 ‘은행’이라는 공간을 뻣뻣하게 만든다. 감정이 배제된 숫자는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마냥 인간적일 수 없는 계산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주제는 분명 ‘사랑’인데 멜로 드라마의 배경이 은행과 그 안에서 근무하는 은행원이라는 점이 처음에는 다소 의아했다. 편견일 수도 있지만 숫자로 환원되는 공간이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理解)’가 아닌 ‘이해(利害)’를 먼저 논한다면 첫 장면의 나레이션은 단순히 이야기의 배경에 대한 설명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축약하는 서문으로 확장된다.

 

전통적인 미디어나 이야기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항상 신성하고 고결한 것처럼 묘사되곤 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 이상 사랑은 절대선이나 완전무결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능력주의와 물신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계급은 은근하게 존재한다. 겉으로는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일상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계급은 위선적이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지만 닿을 수 없는 선택지는 사실 없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처음부터 한계를 규정짓는 과거의 계급과 달리 모두에게 선택지를 공개하는 현대 사회는 알고 있지만 닿지 못하는 사람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차별은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가격을 보지 않고 무언가를 구매할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최저가를 계산해야 할 때. 고작 몇 백원이나 몇 천원 앞에서 취향을 양보해야 할 때. 너무 소소해서 더 구차한 그런 차별.

 

절대적 부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상승했지만, 상대적 격차는 무한대로 벌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누리는 것이 많아져서 비참해진다.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인지가 중요한 세상이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이나 선택이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세상에서 일상화된 비교는 욕구에 비례하여 감정을 소모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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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만은 세속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사실 지극히 환상에 불과하다. 

 

사랑은 결코 관대하고 인정 넘치지 않는다. 연애도 결혼도 결국 끼리끼리 한다는 말이, 돈이 없으면 사랑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회한 섞인 자조가 된 세상에서 사랑은 결코 모두에게 동일한 의미로 이해(理解)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 이상 드라마에서조차 계급과 신분 차이를 극복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씁쓸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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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드라마의 구조와는 달리 <사랑의 이해>의 두 남녀 주인공은 서로에 대한 끌림을 애써 외면하고 각기 다른 상대와 연애를 한다. 그들의 연인을 생각하면 이기적인 선택이지만, 화가 나기 보다는 안쓰럽다.

 

사랑의 의미를 완벽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 본질이 계산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사랑은 쉽게 계산된다. 사랑은 결국 감정을 소모하는 것일 텐데, 각박한 세상은 본능적인 마음에서 조차 작은 여유를 부리기 힘들게 한다. 

 

은근한 차별과 멸시에 이른 나이부터 노출되어온 '수영(문가영 역)'은 포기를 학습한 인물이다. 그런 그녀가 득과 실을 따지는 순순하지 못한 사랑을 한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기란 어렵다. 이미 상처가 많은 수영이 사랑에서까지 손해를 본다면 너무 각박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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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현 씨, 나는요

누군가한테는 쉬운 일이

우리한테는 어려운게 화가 나요

누구한테는 아무렇지 않는 게

우리한테는 절실한 것도 화가 나

이건 내 화풀이에요

 

-드라마 <사랑의 이해> 10화 中

 

 

드라마는 연애를 시작한 두 커플을 지속적으로 대비하여 계급 차이를 보여준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의 꿈이 되는 씁쓸한 구조는 사랑의 이해(利害) 관계의 배경을 설명한다.

 

이것이 현실임을 알리는 듯 자꾸만 어긋나는 타이밍은 끊임없이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지만, 불가항력적인 사랑은 아슬아슬한 줄타기 끝에 결국 10화에 이르러 수영과 상수의 마음을 닿게 한다.

 

온전히 사랑의 대상이었을 당시에는 이해(利害)를 따지는 대상이었던 서로가, 각기 다른 연인과 맺어져 계산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나서야 이해(理解)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는 점이 작품의 주제의식을 완벽히 드러낸다.

 

제자리를 찾은 그들의 사랑은 각자의 연인에게는 분명한 기만이다. 그런 점에서 수영과 상수는 주인공으로서 완전히 선한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악한 인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또 무리가 있다.

 

상수와 수영 뿐만이 아니다. 사실 <사랑의 이해>에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가를 수 없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를 닮아 있다. 하나의 성질로 요약 되기에는 복잡 미묘한 현실의 우리들을 말이다.

 

때로는 잘못도 하고 실수도 저지르는 나를 온전히 미워할 수 없는 나는 최소한의 양심으로 수영과 상수의 사랑을 두 팔 벌려 응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난 모습을 애써 숨기며 발버둥치는 그들의 삶을 이해(理解)하기에 맹 비난을 퍼붓고 싶지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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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사랑의 이해>.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니, 드라마의 연출이 원작의 장르적 특성과 꽤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심한 연출이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작품이다. 문자 언어가 지닌 풍부한 설명은 없지만 감정의 표현에 있어 결코 모자람이 없다. 표정과 행동만으로 전달해야 하는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들을 연출의 힘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구현해낸다.

 

멜로물 치고는 아주 낭만적이지는 않다. 현실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주인공들의 감정들은 격정적이기 보다는 절제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충분히 문학적이고 섬세하다.

 

비록 시청률의 측면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종영 이후에도 꾸준히 회자될 수 있을 만큼 공들인 좋은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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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안 와요?

 

내가 졌어요.

 

해 보지도 않았잖아요

 

그냥 수영씨한테는 져 줄게요

 

동그라미

벗어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다시 원점

벗어나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다시 제자리

결국 다시 원점…

 

결국 다시 안수영

 

-드라마 <사랑의 이해> 10화 中

 

 

<사랑의 이해> 10화는 상당히 상징적이다. 

 

나레이션처럼 두 사람은 돌고 돌아 사랑의 원점으로 돌아왔다. 잠깐의 망설임으로 사랑에 실패했던 상수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던 수영. 

 

두 사람의 엇갈린 사랑이 시작되었던 1화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아이스링크 장의 장면은, 멈춰선 상수를 향해 다가가는 수영의 모습을 통해 그들의 사랑이 새로운 터닝포인트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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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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