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과거에 기대어 미래를 바라보다 - 마리아 스바르보바: 어제의 미래 [전시]

결벽적인 아름다움, 마리아 스바르보바 : 어제의 미래
글 입력 2023.01.1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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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서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전시가 열린다.

 

마리아의 전시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쯤 봤을 <스위밍 풀>시리즈를 포함하여 과거를 그리는 <노스텔지아>, <퓨처 레트로>, 그리고 <커플>과 <로스트 인 더 밸리>의 5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대부분의 전시가 작가의 작풍 변천사를 담아내는 데에 주안점을 둔다지만,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전시는 그보다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었다. 마치, 한 인간의 유년기부터 현재까지 정제된 클립으로 관찰하듯이 말이다.


이에 대해 빠짐없이 음미하려면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배경에 대해 알아야한다.

 

기억해야할 것은 단 두가지다. 그가 슬로바키아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과, 사학과라는 사진과 상관없는 전공으로 대학시절을 보냈다는 것. 섹션별로 이어지는 흐름을 알아챌 키워드가 될 것이다.

 

 

 

노스텔지아 : 결벽적인 과거의 향수


 

만약 한 사람의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그건 어떤 형태일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분명 끊어지고 비어 잃어버린 조각이 존재할 것이다. 영상처럼 연속적일 수 없다는 의미다.


마리아의 기억, 정확히는 그가 상상하고 이어붙인 조각들의 장이 <노스텔지아>다. 우리가 1990년대를 살아가지 않았어도 싸이월드나 삐삐 감성을 그리워하는 Y2k 유행처럼, 마리아가 과거의 슬로바키아, 공산주의가 만연하던 시기를 상상한 향취가 그대로 드러나있다.


우리가 레트로 감성에 젖어드는 것처럼,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계를 그려낼 수 있다. 심지어는 진한 향수를 느끼는 경우도 더러있다. 그러나, 타인의 기억으로 빚어낸 상상인 만큼 온전치는 못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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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스텔지아의 장에서는 드문드문 기억나는 부분을 잘 가공하여 나열한 듯한 작품 구성이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병원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대기실>부터 <병원>까지의 구조다. 동시에 미묘한 이질감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다.

 

표백된듯 창백한 화이트톤의 색감, 빛바랜듯 차분한 주홍의 원색들, 그리고 묘하게 결벽적인 모습. 모두 감정의 부재에서 기인하는 것들이다. 노스텔지아에서 그려지는 작품들은 감정이 없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알 수 없는 무표정을 한 체, 그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하지 않는다. 엇갈린 시선, 그게 또 하나의 주요한 감상 포인트다.

 

그들은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창백하고 뻣뻣하다. 저 속에서 어떠한 형태든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찌보면 밀랍을 굳혀 만든 미니어처같기도 하다.

 

동적인 세상 속에 찬물을 끼얹듯 멈춰버린 세상을 부추기는 건 배경이다. 미묘하게 결벽적으로 정돈되고 연출된 구도와 장소가 더더욱 생기를 앗아간다. 무생물은 말할 수 없다는 명제가 자연스레 떠오르는 섹션이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마리아가 그리는 향수에 있다. 마리아는 공산주의가 만연하던 과거의 슬로바키아를 그려냈으므로, 감정의 부재에서 소통의 단절을 이끌어냈다. 소통이 없으니 감정이 없고, 시선조차 마주할 수 없다. 다소 폭력적인 형태의 단절임에도 노스텔지아, 단어 뜻 그대로 오묘한 향수가 느껴진다.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라니,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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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해답은 노스텔지아의 끝자락, 이어지는 두 작품 <크럼키>와 <미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 무표정의 아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작품의 옆엔 인상적인 문구가 쓰여있다.

 

“Be courageous and you’ll see what happens.”

 

용감해지면,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될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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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나오는 작품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덮은 아이의 모습이다. 이 작품의 이름은 <미래>.

 

이로서 마리아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노스텔지아는 과거에 묶인 시간이다.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수많은 이들처럼 미래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어른이들을 위한 상상 속 세계.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상상은 불완전하고 미래는 곧 현재가 된다는 것이다.

 

 

 

퓨처 레트로 : 변화를 마주하는 순간


 

퓨처 레트로는 공식 해설상으로는 신과 구의 적절한 결합을 담아낸 섹션이다. SF같은 미래지향적 분위기와 노스텔지아의 배경의 뒤섞이는 장이다. 그렇기에 상당히 작품 하나하나 의미심장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신(新)과 구(舊)의 조화라는 점에서 ‘변화를 마주하는 시기’라 해석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는 기존의 것을 버려야한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것과 과거의 것의 적절한 조화라 함은 어쩌면 당연한 말일지 모른다. 1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는 꾸준히 변화하여 함께 공유하는 경험과 취향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테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나’인 것처럼 말이다. 뭐든 한번에 100% 버릴 수 없고, 덜어내더라도 흔적이 남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변화를 마주하는 시기란 구체적으로 언제일까?

 

바로 ‘대학’이다. 아마 20살 언저리의 사람에게 가장 커다란 변화였을 것이다.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시기라고 하질 않는가.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대학시절 사진과 관련없는 사학을 전공했다. 예술가를 꿈꾸던 그녀가 잠시 자신의 예술세계를 등진 시기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런 혼란이 신과 구의 대조적인 구도 안에 녹아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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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 레트로> 섹션에서는 특히 대비되는 구조가 눈에 띈다.

 

서로를 대립하듯 마주하고 있는 소녀들, 쨍한 블루와 레드의 대비, 광택감과 매트한 질감의 상단부와 하단부. 섹션의 네이밍대로 퓨처와 레트로의 대비라 볼 수도 있고, 예술가를 꿈꾸는 자아와 사학을 전공한 마리아의 대립이라 해석할 수 있다. 자고로 예술작품이란 정답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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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마리아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하게 몸집을 물린다.

 

세 소녀들이 나오는 시리즈를 지나면 끝부분에 전시된 <유행 Vogue>란 작품이다. 톡 튀어오르는 노랑의 원색들. 노스텔지아와 퓨처레트로 전반부에서 줄곧 사용하던 레드와 블루가 아니다. 새로운 색 ‘노랑’인 것이다.

 

이 작품의 의미는 제목이 정점을 찍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행’. 통일한 듯 노란 엘리베이터와 식탁보, 소녀의 상의. 바람처럼 노란색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이다. 이 속에서는 마리아가 쭉 사용해오던 블루와 레드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유행이 기존의 것을 새로운 것으로 뒤바꾼 모습이다.

 

이 작품을 통해 마리아가 단순 자신의 삶에 대해 회고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자신의 삶이란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였다. 마리아의 삶에서 세상을 엿볼 수 있고, 세상의 일부를 떼어 마리아의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리아의 작풍은 그녀의 대표작 <스위밍 풀>시리즈에서 한층 색을 더해간다.

 

 

 

스위밍 풀 : 수면 위엔 늘 상이 맺힌다


 

마리아의 대표작인 스위밍 풀 시리즈는 독특하게도 수영장 내에서만 촬영이 이루어졌다. 모국인 슬로바키아의 도시 졸라테 모라브체 속 수영장을 시작으로 13여개의 수영장에서 129개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이 시리즈에서는 ‘빛’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설화처럼, 수면 위는 종종 무언가를 반사하는 용도로 사용되곤 한다. 마리아의 스위밍 풀 시리즈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수영장을 반사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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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스위밍 풀 시리즈에서는 이전에 크게 조명되지 않았던 자연광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노스텔지아에서부터 이어지던 표백된 화이트톤과 무표정한 사람들 위로 자연광이 쏟아진다. 그러면 발 밑에는 반사된 또 하나의 상이 맺힌다. 의도적으로 구도를 설계한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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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부터 ‘반사’를 주연으로 가져간 만큼, 배경인 수영장과 피사체의 반사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마리아가 촬영한 슬로바키아의 수영장들에는 하나같이 ‘다이빙 금지’라는 경고문구가 붙어있다. 수영장에서 다이빙이 금지라니, 현대 사람들이 들으면 어이가 없어 되물을만한 이야기다.

 

동시에 금지문구가 점칠된 수영장에 반사되는 여성들의 모습은 다소 도발적이다. 다이빙대 근처에서 머무르며 보란듯이 다이빙 준비자세를 취해보이기도 한다. 고작 경고문구 따위는 살아숨쉬는 인간의 행위를 멈출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러한 작품의 구도는 결벽적인 구도와 푸른 배경 위 빨갛고 노란 원색, 반사되는 상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앞선 <노스텔지아>와 <퓨처 레트로>를 참고했을 때, 마리아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 반복되는 대비와 반사가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의 사이에서 찾은 해답인 것이다.

 

이처럼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의미심장한 메타포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원색 위로 그려지는 강박적인 통일성, 엇갈리는 시선들이 주는 에너지는 가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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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노스텔지아>부터 그의 대표작 <스위밍 풀>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개인전의 이름을 어제의 미래로 지은 이유에 대해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리아는 과거를 지워버리지 않는다. 과거를 홀로 버려두고 미래로 달려가기보단, 과거에 기대어 미래를 바라보는 쪽에 가깝다. 

 

‘어제의 미래’란 제목처럼, 마리아가 미래로 나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하고 감상하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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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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