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오래된 미래를 그린 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 [전시]

글 입력 2023.01.18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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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swimming_out_대지 1.jpg

 

 

몇 년 전 기억에 남는 전시가 있다.

 

해가 점점 길어지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할 즈음, 작은 갤러리에서 여름을 정면으로 만났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Swimming Pool’ 전시가 열리는 현장. 갤러리에 들어섬과 동시에 푸른 물결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녀의 대표작인 수영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작품들이 이어졌다. 작품 수가 아주 많지는 않은 작은 전시였지만 조용한 수영장에서 누군가 큰 파도를 만들며 잠수해버린 것처럼,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과 습도가 느껴졌다.


이후 많은 전시를 관람하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를 꼽자면, 수영장의 풍경이 떠오르곤 했다. 오랜만에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예술의전당에서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개인전이 열렸다. 롯데갤러리에서 선보인 수영장 작품들은 물론, 초기작과 가장 최신작까지 170점이 넘는 작품으로 풍성한 전시가 펼쳐졌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당장 달려간 그 전시로 함께 뛰어들어 보자.

 

 


오래된 미래를 그린 수영장


 

Tree, 2016, 90x90.jpg


 

대표작인 수영장 시리즈 작품이 풍성하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그런데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수영장 하면 떠오르는 풍경과 거리가 멀다. 평온하고 조용한 공간, 물을 가르는 손과 발, 청량함이 오감으로 다가오는 수영장. 물 안에서는 모두 말이 없다는 점에서 찾아오는 고요, 그 감각을 특히나 좋아한다. 반면 마리아 스바르보바가 담은 수영장은 고요를 넘어 무서울 정도의 정적이 느껴진다.


정확히 똑같은 간격을 두고 서있는 사람들, ‘다이빙 금지’를 시작으로 금지하는 무엇과 무엇으로 채워지는 수영장의 벽면. 분위기는 딱딱하게 굳어갔다.

 

사람들의 손끝 하나, 모자의 각도 하나까지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는 것처럼 제 자리에 있었고, 그것을 깨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Windows, 2016.jpg


 

이처럼 딱 정해진 규율이 직선의 형태로 그려진 특징은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배경에서 왔다.

 

그녀의 고향은 체코슬로바키아로, 과거 공산주의라는 역사를 품고 있었다. 그녀는 직접 공산주의 시대의 중심을 지나오진 않았지만, 그 시대가 남긴 흔적에 매료되었다. 동일한 크기, 동일한 배치, 동일한 구성으로 놓인 대상을 보면서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휴식하고 평화를 누리는 수영장에서도 개인은 작아지고, 전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은 좁아지고, 똑같이 공유하고 나누는 공간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복고풍 미래’를 그린다고 평가받는다. 직선으로 딱 떨어지는 대칭과 조화가 미래적이지만, 동시에 과거의 모습을 보게 만든다. 정확히 그녀가 선택하고 불러온 과거를 겪어보지 않은 이라도, 대상과 시기가 불분명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색과 색의 경계에서


 

Boder II, 2017.jpg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전시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색의 사용이다. 원색에 가까운 튀는 색, 빛이 바랜 듯 빈티지함이 감도는 색이 공존한다. 특히 서로 다른 온도의 색을 계속해 가까이 배치하고, 대조시키면서 특별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수영장 시리즈에서 물의 파란 색감과 대조되는 사람들의 빨간색, 노란색 수영복도 그렇다. 한층 더 배경과 인물이 대비되게 만들면서, 공간을 가득 감싸는 딱딱하고 단절된 분위기를 심화시킨다.

 

아름다운 색감과 풍경을 보면서도 이상하고 어쩐지 불편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게 된다.

 

 

137_(50x50cm).jpg


 

전시 후반부, 커플의 모습을 다룬 시리즈와 미국에서 촬영한 시리즈에서도 색의 효과가 눈에 띈다.

 

어색할 정도로 꼿꼿이 서 있는 인물들의 자세, 계속되는 수평과 수직 속 색 또한 고유한 이미지를 만든다. 인물들의 옷 색상, 자동차와 가로등, 다른 소품과 배경의 색, 선명하거나 빈티지한 색감들이 함께 녹아든다.

 

자연스레 섞여들기보다는 계속해서 색과 색 사이 경계를 만들어내면서 관람하는 이가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든다. 지루해질 틈 없이 다음 작품을 향해 걷게 만든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전시는 시원하면서 동시에 시리다. 수영장과 자연의 풍경에 편안해지기보다는 잠든 마음을 깨우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한번 보면 잊기 힘든 강한 이미지를 지녔다.

 

직접 전시장을 거닐면서 나의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을 만나보길 추천한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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