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착했음에도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의 충만함 - 도서 '원청'

글 입력 2023.01.1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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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란스러운 시기, 청말


 

신해혁명은 최초 통일제국인 진나라를 시작으로 수천 년간 내려온 봉건체제가 몰락하고 중국에 공화정이 자리 잡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19세기에 이르러 청나라는 유럽의 눈부신 기술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반식민지 상태에 놓였다. 청나라가 영국의 산업자본과 군사력에 무릎 꿇은 아편전쟁은 당시 청나라의 무너진 기반을 숨김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청말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만주족이 건립한 청에 대한 한족의 저항을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관리의 부패가 공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서양문물의 강력함을 몸소 느낀 청나라의 곳곳에서 현 체계에 대한 불만과 유럽 열강 앞에서 흔들리는 국가체계 현실에 대한 걱정이 들끓었다. 이 시점부터 몇몇 지도층 사이에서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의 해외유학이 늘어났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새로운 정치체계에 대한 갈망이 탄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신해혁명은 피지배 계급이 지배계급에 대한 도전이었다. 급박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신해혁명은 안정적인 정권을 자리 잡지 못했지만, 중국 정치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당시 중국의 정치체계는 무정부상태에 가까웠다. 처음 혁명을 이끈 손문 정권은 방향성을 잃고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결국 군사적 성격을 가진 정권에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군벌통치 체계가 자리 잡았다.

 

청말 인민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혁명 전에도 생활고로 고통받았지만, 중앙정부의 통제가 더욱 힘을 잃자 많은 인민이 토비가 되었다. 탈영한 군인들과 잔여세력들은 고향에 내려가는 대신 토비가되어 타인의 재산을 약탈했다. 이에 대항하여 농민들은 토비에 대항하기 위해 자체 무장조직을 만들었다. 군벌시기 토비들과 민군들은 돈만 있다면 손쉽게 무기를 구할 수 있었다. 역사적 변화 앞에서 많은 사람의 피가 흩뿌려졌다.

 

 

 

2. 내가 읽은 '원청'의 세 가지 특징


 

오늘 리뷰할 '원청'은 이 시기에 살았던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내가 읽은 '원청'은 크게 세가지 특징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성, 민초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심, 하나로 모이는 메시지로 구분했다.

 

첫째, 역사성이다. '원청'은 중국 정치사상 대변혁의 시기에 다양한 인물상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 쓴 소설이다. 위화는 소시민의 삶에 초점을 두되, 역사적 배경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현대 독자들에게 꽤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 최근 창작되는 많은 작품이 캐릭터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청'은 캐릭터에 중점을 둔 작품이 아니다. 원청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역사를 이끄는 주역이라기보다 흐름에 휩쓸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이 책은 '신해혁명 직후의 무정부 시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전개되고, 마무리된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세 남녀-린샹푸, 샤오메이, 아창-의 사랑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을뿐 각 인물들의 독특한 성격 탓이 아니다.

 

두번째, 민초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심이다. 시대적 흐름에 휩쓸렸다고 해서 책에서 묘사되는 개개인이 무기력한 것은 아니다. 역사와 시대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지만, 삶의 역동적인 변화에 모든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친다. 민초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은 책의 전반적인 서술 방식에서 드러난다.

 

위화는 굵직한 역사가 크고 작게 개인과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은근하고 치밀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당시 정치적 변화의 중심이 아니라, 그 변두리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에서만 작품을 전개한다. 당시 중국에서 들끓었던 사상의 충돌을 묘사하지 않으니 책에서도 역사의식이나 교훈을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책은 위화가 당대 청나라의 관습과 문화를 생생한 어조로 전달하는데 애쓴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목수들의 예술양식, 관례의식, 사주팔자 등은 당대 역사를 간접적으로 반영하면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시대정신'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위화가 이러한 서술방식을 선택한 것은 그가 검열에 민감한 중국의 소설가라는 면도 한몫했겠지만, 그러한 배경 속에서 찾은 희망이 정치사상이나 검열보다 인간 자체에게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3. 도착했지만,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그 곳


 

세 번째, 하나로 모이는 메시지다. 첫 번째에서 기술했듯이, '원청'은 캐릭터의 선택 자체보다는 사건에 따라 작품이 전개된다. 작품의 이런 경향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스포트라이트도 비교적 균등하게 나누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원청'이라는 키워드에 따라 조명받는 인물이 존재하고 실제로 두 섹션에 따라 두 인물이 교차하고 대조된다.

 

첫번째 인물은 린샹푸다. 그는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목수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그는 적절한 혼기를 놓치고 어느 날 원쳉에서 왔다는 떠돌이 남매 아청과 샤오메이를 집에 머물게 해준다. 아청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떠나고, 린샹푸는 남은 샤오메이와 사랑에 빠진다. 린샹푸는 샤오메이와 혼례를 올리고 집안에 남은 금괴들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샤오메이는 그것을 가지고 도망친다. 일년 후, 샤오메이는 금괴 없이 그의 아이를 가지고 돌아온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지 한달이 좀 지나서 샤오메이는 다시 도망친다. 그는 샤오메이를 찾기 위해 '원청'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원청은 없고, 남매의 독특한 말투를 닮은 시진을 찾는다. 린샹푸는 시진에서 젖동냥하러 다니며 아이를 키우고 그곳에 남아 샤오메이를 그리워한다. 젖동냥을 통해 키운 딸은 천 개의 집에서 젖동냥을 받아 키운 아이라고 하여 '린바이자'라고 이름 짓는다.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고, 토비와 싸우다가 우아한 미소를 지으면서 죽었다.

 

두번째 인물은 '또 하나의 이야기'의 주인공 샤오메이다. 그녀는 시진에서 아청과 어린 시절부터 혼약을 맺은 사이로, 시댁에서의 갈등 때문에 쫓겨났다. 샤오메이와 아청은 그들의 본명이 아니라 아명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잊을 수 없었던 아청이 그녀를 다시 찾아오고, 둘은 정착하기 위해 떠돌다가 린샹푸의 집에 머문다. 아청과 후일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린샹푸와 연을 맺지만, 그녀는 아청을 버릴 수 없었다. 린샹푸에 대한 죄책감과 사랑을 뒤로 놓고 그녀는 아청의 품으로 돌아간다.

 

시진에서 그녀는 원청의 샤오메이를 찾아다닌다는 소리를 듣지만, 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딸을 상상하면서 만든 옷을 계집종을 통해 린샹푸에게 건넨다. 둘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토비떼가 들끓기 전에 샤오메이와 원청은 추운 날씨 기도를 하다 동사하고 만다. 샤오메이는 죽기 전 린샹푸에게 내세에서는 이 빚을 갚겠다 생각한다.

 

원청을 찾는 이와 원청의 여인,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린샹푸에게 원청은 간절히 바라는, 그리운 사람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샤오메이에게 원청은 아창이 갑작스럽게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여기에서 독특한 메시지가 남는다. 린샹푸는 시진에 도착한다.

 

그곳이 샤오메이의 진짜 고향이고, 실제로 샤오메이도 있었으니 원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린샹푸는 원청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고, 샤오메이를 그리워한다. 우연히라도 시진에서 샤오메이를 만났다면, 그는 그곳에 원청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과 기묘한 운명의 순간이 그들을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했다. 린샹푸는 샤오메이와 닮은 여자를 만나고 영원히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숨을 거뒀다. 샤오메이 역시 아청만큼이나 그를 사랑했으니 이러한 상황이 샤오메이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원청은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 아니다. 그는 소박한 삶을 바라고, 현실적인 여인을 사랑했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고 그는 실제로 도달했지만, 그는 그곳에 영원히 도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다. 비극적인 부분이 있지만, 그것을 향해 나아가고 도달했는데도 알지 못한 그 끝없는 갈망과 그리움 자체가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슬프고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큰 가치를 가진다. 영원히 가슴을 짓누르며 그 빛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 원청이라는 것이 단순한 이데아나, 무릉도원이 아니라는 것도 인간의 삶의 참을 수 없고 가벼움과 무거운 가치를 숨 막히게 표현하는 것 같다.

 

소설을 쓰면서, 위화는 원청의 여인을 사랑했다고 이야기했다. 샤오메이의 시신이 린샹푸와 인연이 된자의 손에서 정리될 때, 나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았다. 우리 모두가 원청을 사랑한다. 소설 '원청'은 굵직한 역사를 뼈대로 전개되는 소설이지만, 소재 '원청'은 역사를 초월한 것이다. 이 두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 소설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위대한 사상도, 정신도 아닌 원청, 실제로 도달했다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그 막연한 갈망. 그 갈망을 가진 자들이 끝없이 태어나고, 살고, 죽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원청을 찾으면서 살아간다. 위화가 '원청'을 통해 표현한 것은 이러한 삶의 형태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심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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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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