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련된 과거를 그리는 사진작가 '마리아 스바르보바'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회고전 '어제의 미래'
글 입력 2023.01.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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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의 여러 표현 방식 가운데 사진은 비교적 최신의 기법이다. 그렇기에 여타 장르에 비해 그 예술성을 평가절하하려는 경향 또한 분명했다. 카메라 장비로 얻은 결과물이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하려던 시기, 그것이 과연 타 장르에 비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입증하는 데 많은 작가들이 노력했다는 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혹시 여전히도 카메라의 가동 범위를 현실의 기록에 한정 지어 생각하고 있다면, 과거 예술사진을 향했던 구식적인 시선을 벗어던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사진이 매력적인 것은 오히려 카메라가 예술적 매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요인, 즉 화면 속의 장면이 우리의 삶으로부터 독립된 세계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제시되는 이미지는 분명 실존했던 사실 그 자체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통제하는 예술가의 몫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장면이다. 그렇기에 카메라 장비와 예술가의 힘이 만났을 때에만 현실의 삶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극적인 순간을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러한 예술가의 재량을 온전히 표출하는 사진작가를 묻는다면 마리아 스바르보바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슬로바키아 출신의 그는 특유의 실험적인 사진 스타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사진작가로, 우리나라에서는 디뮤지엄이나 롯데갤러리 전시로 소개된 바 있다. 그의 국내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 《어제의 미래 : FUTURO RETRO展》가 2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열린다.


마리아 스바르보바의 대표적인 작업은 단연 ‘스위밍 풀 시리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오래된 수영장을 배경으로, 직선적인 구도에서 수영복 차림의 모델들을 채도 높은 색감으로 담아낸 작품들이다. 스위밍 풀 시리즈는 공산주의의 잔제를 공간적 배경 삼아 억압에 맞서는 여성들의 연대를 시각화하는 작업으로, 그 배후의 의도 못지않게 매력적인 색감이나 구도 등 작가 특유의 매력적인 시각요소 또한 유명세에 한몫을 더했다.


이번 전시 역시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스위밍 풀 시리즈를 메인으로 앞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최초의 회고전답게 스위밍 풀 시리즈를 작업 세계 전반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 준다. 모델들의 자세나 화면의 색감, 조도 등 해당 시리즈에서 드러나는 특징적 요소들이 직전작과 비교했을 때 어떠한 맥락에서 나타나는지, 그리고 다른 시리즈에서는 어떤 부분이 달라지는지를 비교하며 그의 예술세계를 산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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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노스탤지아’, ‘퓨트로 레트로’, ‘더 스위밍 풀’, ‘커플’과 ‘로스트 인 더 밸리’ 등 5개 섹션 순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고향 슬로바키아의 공산주의 시절을 재현한 ‘닥터 시리즈’와 ‘정육점 시리즈’가 전시된다. 병원과 정육점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할 장소지만, 사진 속 인물들은 경직된 자세와 무표정한 얼굴을 취한 채 각자의 시선만을 독점할 뿐이다. 정육점 주인과 손님 또는 의사와 어린 환자 사이에는 긴장된 공기가 감돈다. 그 숨막히는 분위기는 가지런히 정돈된 사물들과 단일한 조명효과로 인해 배가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각각 전후 재건 시기 유행한 브루탈리즘 양식의 건축물과 배드민턴 경기장을 배경으로 하는 ‘휴먼 스페이스 시리즈’와 ‘더 게임 시리즈’가 전시된다. 이 두 시리즈의 공통점은 공간과 인물이 서로 이질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빨간 체육복을 입고 고무줄놀이를 하는 세 명의 소녀들은 거칠고 칙칙한 콘크리트 구조물과는 전혀 어우러지지 않는다. 하이패션처럼 독특한 의상을 입은 채 배드민턴 경기장에서 뻣뻣하게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두 섹션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옛 장소와 사물들이 그저 과거를 철저히 재현하기 위해 차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특유의 정적인 연출과 파스텔톤으로 통일된 색감 때문이다. 이로써 완성된 이미지가 역사적인 기록이 아닌 이후 시점의 연출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드러난다. 실제 과거의 소품과 장소를 사용했음에도, 화면 속 이미지는 마치 레트로풍으로 연출된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사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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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위적인 연출 기법은 스위밍 풀 시리즈에서 극대화된다. 이 시리즈에는 소련이 근대 올림픽 경기에 대항해 만들어낸 스포츠 경기 ‘스파르타키아다’에서 영감을 받은 ‘걸 파워’ 연작이 포함된다. 일제히 같은 복장을 입은 여성들은 고난도의 동작을 취하며 대열을 맞추고 있다. 완벽하게 대칭을 이룬 모습은 사실 하나의 사진을 좌우 혹은 상하로 반전하고 붙여넣어 완성된 것으로, 그러한 기하학적인 구도가 직선적인 수영장의 구조물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정교한 그래픽 이미지를 보는 듯한 이질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모델들은 주어진 규율에 저항하는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체현한다. 이는 ‘다이빙 금지’를 뜻하는 "Zákazskákať"라고 적힌 벽 바로 앞에서 다이빙 직전의 자세를 취하는 모습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촬영 장소가 된 슬로바키아의 옛 수영장은 휴식과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공간임에도 검열의 공기가 스며든 역설적인 장소다. 벽에 적힌 금지 문구뿐만 아니라, 화분들 역시 알게 모르게 그러한 사회적 배경을 보여주는 사물 중 하나다. 슬로바키아에서는 공산주의 시절 뿌리내린 근검절약 정신의 영향으로, 습도가 높은 수영장 실내에 화분을 두어 식물에 줄 물을 절약했다고 한다.


그러한 경직된 분위기는 작은 파장조차 없는 수영장 물의 표면과 직선적인 인공 구조물들을 통해 다시금 시각화된다. 그러나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델들의 신체와 창 너머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그를 중화한다. 마네킹처럼 뻣뻣하게 타인과는 아무런 소통조차 하지 않았던 이전 섹션의 인물들과는 달리, 이들은 서로 같은 자세를 취하거나 화합함으로써 하나의 완성된 구도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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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인물들 사이의 관계성은 다음 섹션인 ‘커플’ 섹션에서 한결 짙어진다. 이 시리즈에는 커플들의 모습을 담은 시리즈가 포함되는데, 먼저의 섹션에서는 주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는 과정을 담은 시리즈 중에는 즉각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남녀의 관계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작품도 있다. 제목 역시 ‘당신은 여자를 변화시킬 수 없다.’로, 남편이 길바닥에 누워있는데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을 등진 채 서 있는 작품이다.


그 밖에도 근현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들을 재해석한다. 아폴론의 손길이 닿아 나무로 변해버리기 직전의 다프네, 서로 첫눈에 반했지만 트로이 전쟁을 예감한 듯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는 헬레네와 파리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얼핏 지나치면 연인의 모습을 연출한 화보처럼 보일 정도로 현대적이지만, 옛 신화의 한 장면에서 출발한 장면들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는 시공간의 구분조차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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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마지막 섹션인 ‘로스트 인 더 밸리’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이 섹션에서는 미국에서 촬영된 시리즈가 등장하는데, 사막 등의 거대한 자연경관 가운데서 인물이 홀로 사색하고 있는 사진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슬로바키아의 정통 공산주의 의상을 입고 있는데, 스카프 등의 붉은색이 눈이 시릴 정도로 높은 채도로 강조되어 자연물의 색채와 대비를 이룬다. 사진 속 인물은 홀로 남겨져 있지만 하늘의 눈부신 파란빛과 펄럭이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기는 듯한 모습이다.

 

 

“A unique visual language is the greatest gift an artist can have. I developed mine through the absolute freedom to photograph on the basis of my own thoughts, imagination, and memories.”

 


작가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자유가 허락된다는 것과 같다. 유일한 제약이라곤 사각형의 프레임뿐이지만 그 제약마저도 작가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요소다. 프레임 내부라면 얼마든지 구도를 결정하고 화각을 조정해 최적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색감이나 조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리아 스바르보바는 그러한 작업과 후가공에 정교한 공을 들이는 작가다. 바꿔 말하면, 그는 분명 사진작가지만 카메라 장비의 성질에 매몰되지 않는다. 마리아에게 카메라란 스스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 중 하나일 것이다. 동시대의 감각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완벽한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해 모든 요소를 세밀하게 컨트롤하는 것. 그의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앞으로 나아가기에 앞서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세심하게 살피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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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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