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평행세계는 파스텔 색상 - 마리아 스바르보바: 어제의 미래 展

과거가 미래가 되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스바르보바의 세상
글 입력 2023.01.1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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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스바르보바는 슬로바키아 출신의 사진작가다.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채와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사진과는 달리 대학에서는 복원과 고고학을 전공했다. 그녀가 2010년부터 현재까지 작업한 주요 작품이 담긴 [어제의 미래 : FUTRO RETRO]展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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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미래]展은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 스바르보바가 작업했던 여러 시리즈가 속해있다. 주제는 <01 노스텔지아>, <02 퓨트로 레트로>, <03 더 스위밍 풀>, <04 커플>, <05 로스트 인 더 밸리>로 총 다섯 개다. 전시 공간도 그에 맞추어 여러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규모가 큰 사진전은 흐름을 잘못타면 지루해져서 끝까지 밀도 있게 감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마리아 스바르보바 전은 동선과 전시 방식이 그녀 작품의 흐름과 주제와 컨셉에 잘 맞아떨어져 감상의 폭을 깊게 해준다.

 

노스텔지아부터 로스트 인 더 밸리로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유려해서 감상이 더욱 즐거웠다. 특히 오디오가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들어서자 마자 입구에서 들리는 몽환적인 음악이 조용한 전시관의 천장에 옅게 떠 다닌다. 음악은 섹션 1의 작품을 감상할 수록 멀어진다. 이는 어떤 환상 속의 분위기, 추억, 향수라는 주제와 잘 어우러진다.


전반적인 감상평은 이쯤하고, 전시에서 감명 깊게 보았던 작품과 사적인 감상을 함께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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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기억을 편집해서 새로운 이야기와 장면을 만든다. 또 개인이 현실에서 겪은 사건의 한 부분으로 돌아가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같은 악몽을 꾸고, 누군가는 과거의 특정 장면을 본다.

 

나 또한 자주 꾸는 꿈이 있다. 그 중엔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도 있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흐릿한 순간은 꿈에서 만큼은 선명히 보인다. 색감도, 사람도, 상황도. [Doctor] 시리즈를 보면 그런 꿈의 분위기가 떠오른다.


시간이 정지된 것만 같은 병원과 이상할 정도로 어색하고 말이 없는 사람들. 그 안에서 동글동글 눈을 돌리는 나는 이 기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정적을 깨지 못하고 바라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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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

 

 

<스틱>을 보면 색상의 대비가 완만하도록 노출도가 조절되고 오렌지, 레드, 블루 등 고채도의 색상은 형광색으로 느껴질 만큼 쨍하고 밝게 조절되었다. 이렇듯 왜곡된 색상과 전반적으로 얇게 블러가 깔린 듯한 톤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과거의 어느 순간, 꿈의 어느 장면과 같은 비현실적인 장면에서 숨을 죽여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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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트로는 FUTURE와 RETRO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다. 스바르보바의 사진에는 신구의 조합이 잘 느껴진다던데 그게 무슨 소리일까. 사실은 89년생이자 공산주의 국가였던 슬로바키아 출신 사람의 작품에서 문화적 공감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두 번째 섹션에서 그 감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던 건 인물들이 있는 공간이다. 정확히 짚어내긴 어렵지만 그들이 서 있는 건물과 인테리어, 소품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는다.


브루탈리즘은 사진 속 건축물과 같은 건축양식을 뜻한다. 용어 자체는 가공하지 않은 콘크리트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브루탈리즘 건축물이 주로 값싼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인데,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건물이라 그렇다.

 

그 당시 지어진 건물은 전쟁이 끝나고 빠르게 신축해야 했기에 기능주의적이고 투박한 구조, 모더니즘적인 형태를 띈다. 스바르보바의 작품도 이러한 기능적 양식의 건축물에 영향을 받았다. 더 스위밍 풀에서 보이는 대칭적 구조, 균형감 등이 그렇다.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이 최근 들어서는 보기 힘든 형식이기 때문에 그 희소성이 브루탈리즘 건축물을 가치 있고 멋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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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퓨트로 레트로 섹션의 막바지로 갈수록 작품들에서 레트로를 넘어 미래의 한순간을 연상하게 되었다. 통창의 햇빛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람들, 유리창 위로 쏟아지는 해와 그 아래에 모여있는 녹색 식물들과 사람들이 특히 그랬다.

 

작품은 거의 실내 풍경이었는데, 사람과 식물 모두 야외로 나가지 못하고 실내에서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인 것 같아 영화 보듯 마냥 즐길 순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1과 2 섹션의 몇 작품은 과소비, 낭비 등으로 소진된 지구의 환경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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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스토리가 있는 연작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재밌다. 같은 장소에서 상황을 조금 달리하거나 프레임을 조절하여 그사이의 시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식사 시간 식판을 들고 차례로 밥을 먹는 과정을 여러 사람을 배치하여 동선을 보여준다. 식탁 위 밥을 먹고 있는 세 남자와 바로 옆 정 가운데 앉아있는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다. 그의 표정이 뭔가 말해주는 것 같다. 밥 먹다 기분 나쁜 얘기라도 들은 걸까?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보이는 전시장 어딘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방은 벽으로 막혀있는데 물소리가 들리니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그 신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음향의 사용은 ‘더 스위밍 풀‘에서 더 인상적이었다.

 

섹션 3은 커튼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세계다. 물방울 소리가 들리는 곳의 두꺼운 커튼을 슬쩍 열면 파란 수영장의 물이 빛에 반사되어 일렁이고 있다. 나는 속으로 기분 좋은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쏘아 내린 물결이 자아내는 분위기는 전시에 강렬한 이미지적 전환을 꾀한다. 전체적으로 조도를 낮춘 전시관에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보이는 수영장 영상이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조명이 어두워 작품의 색채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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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공간에서 코발트블루 계열의 시원한 벽면 위로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면서 여행지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다. 작품과 잘 어우러지는 벽의 색과 보색 대비를 이루는 뒤편의 다홍색 포인트 벽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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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밍풀] 시리즈는 청량하고 푸른 파스텔톤의 색상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넓은 공간감이 느껴지는 장소에 원거리로 작게 위치한 사람과 원색적인 색감 포인트 덕에 눈이 즐겁다. 그녀는 고향 슬로바키아의 14개 수영장을 돌아다니며 4년간 120개가 넘는 작품을 작업했다고.

 

한 지역의 수영장이라는 소재가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내 지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수영장의 공간은 실내 외로 알차게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그녀가 연출한 장면과 새로운 시선은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해서 같은 공간에서도 새로움을 느끼고 예술성을 느낄 수 있기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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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경계 (좌), 네헤라 캠페인 (우) 

 

 

그녀는 피사체를 활용하여 반전, 대칭을 주로 사용했다. 반전과 대칭을 위해 복제하는 한편 물에 비치는 반영 사진도 많이 찍었다. <노란 경계>의 중앙에 위치한 인물은 고고한 학처럼 수면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고요하고 평화롭게 느껴진다.

 

<네헤라 캠페인>은 수영장의 통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물에 빈틈없이 비치는 선명한 풍경, 모델이 입은 다홍색 의상 등 전체적인 조화가 매우 아름답다. 이처럼 그의 반영 사진은 ‘수영장에 인물이 비치는 것’과 같은 소재더라도 각기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지며, 보정된 색과 톤이 너무나 깨끗해서 사진이 아니라 창문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개인적으로 <네헤라 캠페인>은 비교적 오랜 시간 감상하고, 너무 맘에 들어 공책과 포스터를 구매했다.

 

반면, 이와는 달리 두려움이 느껴지던 작품도 있었다. 원색의 수영모를 쓴 인물의 얼굴 반영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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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두 작품을 발견하고 잠시 충격에서 나올 수 없었다. 얼굴의 반대편에 위치한 소녀의 얼굴이 단순히 노화한 얼굴로 반전된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 구도와 표정이 오싹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래에 위치한 얼굴은 물에 반사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얼굴이다. 연결된 두 얼굴은 또렷이 정면을 바라보며 눈으로 무슨 말을 전하려는 것 같다. 윗부분의 얼굴에서는 어떤 메시지도 느껴지지 않지만, 거꾸로 보이는 얼굴은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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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작품 중 특히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원들>이다.

 

사진의 재밌는 점 중 하나는 정해진 공간 안에서 시선을 달리하는 것으로 새로운 순간을 짚어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원들>에서 그러한 재미를 발견했기에 더욱 감탄하였다. 수영장 벽을 전체로 보았을 때 어떻게 생겼을지는 모르지만, 빨강 노랑 파랑 패턴과 시계 위쪽까지 크롭하여 잡아낸 벽면은 직접 그림을 그린 것처럼 안정감과 리듬감이 느껴진다.

 

<원들>을 담당하는 빨강, 노랑 원과 원색적인 의상도 벽면의 배경과 잘 어울리는 것으로 매치했다. 거기다 발아래에 놓인 화살표와 모델의 시선은 방향감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시계가 위치한 기하학적인 패턴의 노랑 타일이 이 작품의 정점을 찍었다고 느꼈다.

 

만약 저 시계가 저 타일 위에 없었더라면 이렇게 감탄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패턴 사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가가 의도하고 그린 회화 작품처럼 느껴질 때, 더욱 보는 맛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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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고 아름다운 [스위밍풀] 시리즈 중에서도 이목을 끄는 것은 이러한 대칭 작품들이다. 데칼코마니처럼 한 장면을 세 차례에 걸쳐 복제하고 반전하여 하나의 그림으로 연출했다. 이러한 대칭구도의 작품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뿐 아니라 뭔지 모를 신성한 기분까지 받았다.

 

특히 좌측의 <그뢰슬링 목욕탕>이 그렇다. 물이 빠진 수영장에 걸쳐진 두 여성의 모습은 휴식 뒤편의 고단한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피부톤과 어우러지는 수영장 벽면까지, 박물관의 한 회화작품처럼 보인다.

 

걸파워Ⅱ는 정말 묘한 작품이라 오랫동안 감상했다. 네 사람의 시선 때문이다. 네 명의 소녀는 물 아래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대각선 너머의 사람을 바라보기도 한다. 건너편의 자신과 시선을 교환하는 장면이 평행세계의 자신과 만나는, 저 너머의 시간을 상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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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반대로 <신체 수영>은 작품 속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위의 사진처럼 인물을 중심으로 상하좌우 반전의 복제를 거치긴 했지만, 빛의 곡선이 많이 조절되었다.

 

노출도가 심하게 왜곡되어 반전처럼 보이는 <신체 수영>은 인간의 움직임으로 몇 가지 패턴을 만든다. 꽃을 현미경으로 크게 확대한 것처럼, 수영장의 한 장면을 문양으로 탄생시킨 것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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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섹션에 오면 그동안 파란 톤의 [스위밍풀] 시리즈에서 휴식하듯 감상하던 것이 환기되는 기분이다. 레드톤의 전시 공간에는 메리지 시리즈와 월 시리즈 등 여러 커플의 모습이 담겨있다.

 

특히 커플 섹션의 작품에는 서사가 담겨있어 웃음이 나온다. 커플의 이야기란 만국 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니. 두 사람의 만남과 갈등, 화해 등이 순서대로 담겨있다. 커플 각각의 포지션과 제목에서 작가의 유머러스함도 함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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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로 신화적 이야기를 스바르보바의 시선으로 보여준 작품들도 좋았다. 하늘을 떠받치는 벌을 받은 아틀라스와 추락하는 이카로스 등 신화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이카로스는 전시된 위치의 특성상 가까이 다가가면 조명이 반사되어 날개 부분이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카로스는 태양에 날개가 불타 사라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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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더 밸리] 시리즈는 한 인간이 갖는 내적 성장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사방이 비어있는 황무지에서 홀로 대담하게, 굳건히 저마다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사람의 모습이 인상 깊다. 바람을 느끼거나 명상을 하는 등의 행위는 자신이 이곳, 현재에 있음을 적극적으로 느끼는 행위다.

 

광활한 대지와 높은 하늘, 커다란 산과 같은 거대한 자연 속 우뚝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멋지다. 인간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고독감, 자아와의 대면이 떠오른다. 그러다 곧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을 나 자신과 동일시하며 일종의 위안, 해방감을 느꼈다.

 

전시는 2월 26일까지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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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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