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동선을 따라 진짜 미술관을 만나는 완벽한 도슨트 -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글 입력 2023.01.0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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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나리자가 대단한 작품 맞아?


 

대학생때 성실한 친구의 손에 이끌려 프랑스의 박물관을 투어 했었다. 그 친구 덕에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핵심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을 모두 돌았으니 참 감사한 일이다. 아무튼, 실제 역사가 살아있는 유명한 작품을 본다는 것은 대단히 기대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가 무색하게도 작품들은 내게 큰 감상을 남기지 못했다.

 

멀리서 보이는 루브르의 기묘한 건축물과 니케의 날개 아래에서 박물관의 현장성을 느낀 것도 잠깐이었다. 사람을 비집어 저 멀리에서 모나리자를 본 순간, 비로소 단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파트라슈를 끌어안고 루벤스의 작품 아래에서 숨을 거두는 네로를 이해할 수 없다. 모나리자는 수많은 사람의 머리 사이에서 애처로운 모습으로 걸려있었다.

 

사람들의 머리보다 모나리자가 작아 보였고, 내가 서 있는 이 루브르 박물관은 지나치게 컸다.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는 관중 사이에서 뭔가 의미를 어색하게 찾으려는 내 얼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그때는 정말 온 머릿속에 벤야민의 도발적인 속삭임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그의 옆에서 조용히 생각했다. "네로, 그 녀석의 이야기는 참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비극이었어. 그가 파트라슈와 천국에 갔다는 이야기의 마무리까지 말이야. " 그래, 내가 프랑스 박물관에 가지고 있는 감상이란 대충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삐딱한 시선을 다시 고칠 일이 평생-최소한 10년 동안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리뷰할 책, '미술관을 빌려 드립니다'는 그것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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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선을 따라 진짜 미술관을 만나는 완벽한 도슨트


 

여러 작품을 모아둔 유명 미술관에서 좋은 도슨트를 찾는 것은 어렵다. 도슨트는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지식과 감상자의 감상 포인트를 비율을 잘 맞춰야 한다. 지나치게 가벼운 정보는 작품에 몰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무거운 미학서는 부담스럽다.

 

최소한 책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이 비율을 잘 맞춘 책이다. 각 작품의 미술사적 의의와 표현방식에 대해서 설명하지만, 감상자의 해석만은 열어둔다. 필요하다면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감상을 위한 핵심적인 정보만 정확히 전달하는 저자의 지식에서 노련함이 돋보인다.

 

이러한 적절한 설명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책의 서술방식이 아주 영리하다. 우선 책은 각 미술관의 역사와 코드에 대해 먼저 설명하고, 각 미술관의 동선에 따라 작가별 감상포인트를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되어있다.

 

미술관의 역사와 코드를 설명함으로써 각 박물관의 미술품들이 어떤 카테고리로 묶어둔다. 인류의 보고 루브르, 인상주의의 오르세, 모네의 정원 같은 오랑주리, 강한 인상의 로댕과 같은 부제목이 각 박물관에 대한 이해에 깊이를 더한다.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적은 일반 대중들에게 확실한 이름표를 달아주는 것이다.

 

각 미술관에 대한 거대한 이름표가 붙여졌다면, 이제 실제 미술관에 방문한 것처럼 동선에 따라 작품들을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이러한 류의 책들은 동선에 따라 작품을 설명하기보다, 시대별 아이코닉한 작품들을 설명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방식으로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직관적일지도 모르지만, 실제 미술관을 방문한 이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보물지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전시의 구성과 의도를 이해하고, 그러한 의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미술관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독자들을 이끄는 것이다. 중간마다 저자의 감수성을 곁들여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상 포인트를 추가하면서 미술관에 가지 않은 사람도 실제 방문한 것처럼 느끼게 하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서술방식이 이 책을 이 책의 제목-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처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동선에 따라 참고하는 가이드인 동시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가본 것처럼 만드는 훌륭한 미술 교양서다.

 

미술 교양서로서 빠질 수 없는 섹션 중 하나는 책 중간중간에 껴있는 미술 작품, 예술가 등에 있는 루머와 오해에 대한 글이다. 예를들어 다빈치의 요리에 대한 루머나, 달리의 만종이 사실은 죽은 아이를 기리는 작품이라는 루머에 대해 미술 전문가의 답변이 실려있다. 마침 얼마전에 살바도르 달리전에서 달리만의 만종 해석을 본 적이 있어서 이 섹션이 아주 흥미로웠다.

 

저자는 이러한 루머에 대해 전문가로서 대답하지만, 이 책의 서문과 본문에서 그러하듯 독자들의 해석의 여지를 언제나 남겨놓는다. 달리가 해석한 '만종'도 틀리거나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만의 복잡한 해석 방법임을 달리의 실제 발언과 행동을 통해 중립적으로 기술한다. 이 책이 매력있는 또 다른 점은, 저자가 진심으로 예술감상에 대해 진지하고 애정어린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진지한 태도 덕분에 편안하고 매력있는 도슨트가 완성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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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가며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당시 충분히 프랑스의 미술관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소외된 관객이었다. 몇몇 작품만을 위해 방문했고, 감상을 충분히 즐길만큼의 지식과 가이드가 부족했다. 만약 그때 이 책을 들고 갔었더라면, 당시의 경험은 전혀 다른 것이 되었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어떤 것을 놓치고 왔는지 깨달아서 입안이 좀 썼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는 과장하지 않고 정말 멋진 도슨트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미술관 교양서와는 차원이 다른 책이라고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 책의 구성 방식도 영리하지만, 그보다는 특히 저자의 부드럽고 유연한 감성과 미술관에 대한 이해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짧은 책은 아니지만, 실제 도슨트처럼 편안한 존댓말로 생생한 현장과 역사를 전하는 글을 따라가다보면 금방 그 끝을 보게 된다.

 

네로가 뭐고, 벤야민의 투덜거림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부드러운 책과 함께라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원작의 신성한 아우라가 어떤 목적 없이 평등하게 나에게도 비칠 것만 같다. 그래, 다음에 프랑스에 갈 때는 꼭 이 책을 들고가야겠다. 저자는 앞으로도 여러 책을 쓸 것이라고 한다.

 

좋은 도슨트를 만났으니, 나도 가야 할 미술관이 좀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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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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