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계의 이그노벨상이 있다면,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고 싶은 작가 - 글리프 6호: 김초엽 [도서]

글 입력 2023.01.05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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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만난 건, 불과 몇 개월 전이었다. 작가의 소설을 호평하는 말들을 끊임없이 들어왔지만, SF 장르는 나와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에 읽어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읽기를 망설였다.

 

그러던 와중, 김초엽 작가의 첫 소설집이자 데뷔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펼쳐 들었던 소설은 빠른 속도로 읽혔다.

 

화학을 전공한 작가의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그녀가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에서는 현시대가 가진 문제점을 이성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풀어내는 두 가지의 상반된 성질이 공존해있었다.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세계로 생각되는 우주를 세계관을 이루는 공간으로 설정해 그곳에서 현실의 문제를 적용하는 작가의 독특하고도 창의적인 글쓰기 방식은 낯설고도 매력적이었다. 냉철하면서도 따스한 시선이 함께 스며들어 있는 하나의 장이 끝날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초엽 작가를 덕질의 대상으로 삼아 그녀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아카이빙하고, 이를 책으로 펴낸 글리프의 저자도 매 순간 터져 나오는 탄성을 경험했을 것이다. 필자보다 더 많이 탄성하고 필력에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써 내려간 글리프 6호를 한장 한장 넘기며 읽는 행위는 작가에 대한 애정을 마주하고 깊이 아로새기는 과정이었다.

 

 

 

한국문학의 패러다임을 재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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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아카이빙 출판물인 만큼, 글리프에는 단순함 그 이상의 정보가 나열되어 있다. 밑줄을 긋거나 큰 괄호를 그리는 등의 적극적인 책 읽기가 자연스레 수반될 수 있었던 이유다.

 

작가와 작품 소개로 들어가기 전, 그녀의 글이 한국 문학에 준 영향력과 그 위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를 서술한 대목은 특히 인상 깊었다.

 

 

살펴본 대로 김초엽은 지금 가장 반짝이는 작가라고 부를 수 있을 텐데, 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이 흐름은 단순히 젊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등장을 넘어서서 한국문학의 체질 자체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사건처럼 감지되기도 한다.

 

- <글리프 6호> 10p 중

 

 

'김초엽 장르'라 할 수 있는 SF는 한국문학의 역사에서 한때 인정받지 못한 서브 컬쳐로서 유치하거나 공상과학적 이미지에 그친 것으로 평가되었다. 뽑아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한국문학이 취해온 순문학주의의 거대한 뿌리는 김초엽이 발휘한 소설의 힘으로 마침내 뽑혔다.

 

오랜 시간 인정받지 못한 SF 문학의 가치가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심지어는 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하면서 한국문학의 한 장르로 당당히 자리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김초엽이 여러 영상 매체와 전시, 아이돌 세계관 작업에 참여하는 행보는 문학의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을 시사한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이전의 논리에 반대되는 깃발을 들면서도, 세상이 새로운 논리에 납득하도록 온갖 근거를 들고 와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다. 김초엽은 외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 <실험>을 근거의 초석으로 삼았다.

 

 

김초엽 작품은 사회를 이루는 여러 조건들을 바꿈으로써 혐오와 배제가 일어나는 방식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비정상과 정상의 구분 없는 세계를 끊임없이 가늠해 보는 가상 실험으로서 SF의 요소가 동원된다. 

 

혐오의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미래를 더듬어보는 김초엽의 실험에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글리프 6호> 17p 중

 

 

김초엽의 기상천외한 실험들이 우리의 현실에 더 나은 가능성을 찾는 열쇠가 되어주었고, 사람들은 작가의 작품에 매료되어 그 안에서 삶의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간다.

 

SF는 그녀에 의해 더 이상 유치하거나 공상과학적 이미지에 그치는 장르가 아닌,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어나갈 방법론을 제시한다.

 

 

 

기상천외한 실험이 바꾸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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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한 연구에 주는 이그노벨상 (출처: 알쓸인잡)

 

 

최근 방영한 <알쓸인잡> 5화는 2022년을 마무리하며 '상 주고 싶은 인간'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과학계에서 유명한 '이그노벨상'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그노블(Ignoble), 즉 '명예롭지 않은, 품위 없는'이라는 의미를 지닌 상은 노벨상을 풍자하면서 기발한 연구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1년 하버드 대학에서 재미 삼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맥주 거품, 걸을 때 커피를 쏟는 이유, 영화 장르별로 관객이 내뿜는 냄새의 차이 등 기상천외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자 중에서는 자석으로 개구리를 띄워 2000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이 있는데, 그는 수상 10년 후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신소재 그래핀을 발견해 노벨상 수상자가 된다.

 

기상천외한 실험들, 파격적이고 도전적이라 생각해 그 누구도 하지 않았던 행위를 과감하게 행했던 이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 것이다. 비록 부정적인 의미의 '이그노블'로 불리지만, 수상자의 업적은 노벨상에 버금가는 도전정신과 가치를 지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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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그노벨상의 정신은 바로 김초엽 작가에게도 깃들어 있다.

 

작가는 문학이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이야기들은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믿는다. 원대한 결과를 이루려 하기보다는 행위와 목적 자체가 가져다줄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 그런 가치관이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문학계의 이그노벨상이 있다면, 한 치의 고민 없이 기상천외한 실험을 주저하지 않았던 김초엽 작가에게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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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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