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 몰라, 너무 짜증 나 [사람]

그냥 짜증 난 사람은 없다
글 입력 2023.01.0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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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 등을 집필한 김영하 작가가 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칠 때 금지시킨 말이 있다. 바로 '짜증 난다'라는 말이다. 이는 완전히 다른 감정의 무늬를 단순하게 뭉뚱그리는 표현이기에 사람의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김영하 작가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조언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건 모든 사람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감정 언어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상사에게 호감을 품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 사람에 대해 품은 감정이 단순히 동경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선 한번 주지 않는 그 사람이 문득 미웠던 적이 있다.

 

그날 나는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에게 울면서 말했다.

 

"아 몰라, 너무 짜증 나."

 

과연 짜증이 나서 울었던 걸까?

 

훗날 이날을 돌이킨 나는 단순히 '짜증'이 나서 울었던 게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 사람이 한 번이라도 눈길을 줄 것이라 내심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실망'했던 것이다. 내 마음에 보답하지 않는 그 사람이 '원망'스러웠던 것이고, '서운'했던 것이다.

 

실망, 원망, 서운. 이미 잘 알고 있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막상 부정적인 상황이 닥치니 그저 '짜증 난다'라는 복합적인 언어로 내 감정을 퉁치게 되었다. 나 스스로가 내가 느낀 감정을 적합하지 못한 표현으로 퉁치고 말았으니, 오랫동안 호감을 동경으로 착각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2006년 한국심리학회지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자면 한국어에서 흔히 쓰이는 감정 언어는 총 400여 개. 그중 부정적 감정이 72%라고 한다. 가만 보면 우리는 280여 개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짜증 난다'라는 단어로 대체하는 것 같다.

 

우리는 감정 언어의 스펙트럼을 넓힐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왜 그런 감정이 생긴 것인지.

 

제대로 감정을 진단할 수 있다면, 스스로의 감정에 휩싸여 마음이 괴로워하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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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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