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김초엽의 세계로 안내하는 초대장 - 글리프 6호 김초엽

글 입력 2023.01.03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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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덕질을 관찰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가 함께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애정을 쏟아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그 감정에 동화되어 그 기쁨이 느껴지고, 열정적인 상대의 모습에 친밀감이 높아지기도 한다. 덕질 대상을 향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김초엽 작가의 작품은 한 권만 읽어봤으면서도 잡지 <글리프>를 통해 더 자세히 만나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김초엽은, 김초엽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작가 덕질 아카이빙 <글리프> 6호, 김초엽 <실험>



엡디랩프레스의 덕질 아카이빙 잡지 <글리프>는 지금까지 정세랑, 구병모, 김금희, 강화길, 정유정 작가를 ‘덕질’했고, 가장 최근에 다룬 작가가 김초엽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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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는 2017년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 동시 수상 이후 국내 인기 작가 반열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인기는 개인의 인기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국내 SF라는 한 장르의 흥행을 뜻하기도 하는지라 그의 작품 세계가 더욱 궁금했다.


하지만 다작하는 김초엽 작가를 보고 있으면 선뜻 발을 들이기가 어려웠다. 독자의 입장에서 다작하는 작가들은 매우 반가우면서도 난감한데, 내가 읽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책을 쓰는 듯한 그들의 어떤 작품을 먼저 읽어야 할지 고민되기 때문이다(솔직히 이 말은 사소한 진실 위로 살을 불린 거대한 핑계지만, 이 핑계에 공감하는 독자들은 많을 것이다).


그럴 때는 출판사나 서점의 공식적인 홍보물보다도 팬과 독자들의 감상을 살피는 것이 유용하다. 이번에는 부지런히 인터넷을 뒤지는 대신, <글리프>의 도움을 받아 그 감상을 쉽게 모아보았다. <글리프>는 잡지답게 다양한 구성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는데, 에디터들의 작품 서평과 작가의 인터뷰, 애독자들의 후기 등이 합쳐져 김초엽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림을 통해 만나는 김초엽



<글리프>는 잡지지만 그 안에 수록된 사진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시각적인 요소가 적은 것은 아니다. 픽토그램 수준의 간단한 흑백 이미지들로도 재미와 의미를 쏙쏙 전달해 눈이 즐거웠다.


가장 맘에 들었던 부분은 작가의 여러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세계를 ‘김초엽 유니버스’라는 하나의 우주 안에서 보여주는 페이지였다. 하나의 행성에 소설의 제목과 그 소설의 짤막한 배경 설정을 붙인 ‘김초엽 유니버스’는 예비 독자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어떤 설정을 가진 소설이 내 입맛에 맞을지 한눈에 보여 나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나는 언어체계에 관심이 많아, 기존 언어와는 다른 형태를 띠는 언어가 나온다는 <숨그림자>와 <공생 가설>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글리프6호_본문2.jpg

 

 

또 하나 눈에 띈 포인트는 그 다양한 가상의 행성들 사이에,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지구’ 또한 당당히 자리한다는 것이었다.

 

 

지구 in <사이보그가 되다>

 

전체 표면의 71%가 물로 덮인 덕분에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배층이 된 후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환경이 급격히 변화했다. 최근에는 신체 보조 기구, 인공지능 로봇, 생명 연장술 등에 대한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진 상태이다.

 

p.20

 


지구는 작가의 첫 논픽션, <사이보그가 되다>의 배경 행성으로 등장하는데, <사이보그가 되다>의 주제, 그리고 작가가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온 주제와 어울리는 설명을 달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지구를 이렇게 거대한 우주의 일부로 만나니, 우리 삶의 터전이 아닌 객관적인 하나의 행성으로 관찰하는 듯해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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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김초엽’에서는 김초엽 작가의 독자 설문을 볼 수 있다. 그 첫 페이지에는 김초엽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인지에 관한 답변이 도형으로 나타난다(p.105). 각 작품을 상징하는 도형인 만큼, 해당 도형이 소설과 관련이 있는 듯해 어떤 이야기를 하는 소설일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단순히 수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면 밋밋한 그래프 통계가 더 효과적이었겠지만, 이렇게 도형을 통해 보여주면 작품 하나하나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다양한 색이 들어갔으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아서 이 잡지가 흑백인 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쉬웠다.

 

 

 

팬을 통해 만나는 김초엽



비평 대신 덕질로 한국 문학을 향유하고자 한다는 시리즈 소개에 걸맞게, 잡지의 구석구석에서 작가를 향한 애정이 보였다. 보통 조그만 글씨로 짤막하게 담기고 마는 주석이 본문과 비슷한 글씨 크기로 실려 있어 읽기 편했고, 부록 취급 받기 마련인 작가 연보는 인터뷰까지 덧붙여가며 섬세하고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맘에 들었다.

 

사소한 정보로 치부될 수 있는 작가의 한 줄 한 줄을 중요하게 담은 덕에, 이 작은 책자를 읽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많은 것을 얻어갈 수 있었다. 잡지와 함께 받은 ‘모의덕력평가 초엽 영역 문제지’의 성적도, 잡지를 읽고 풀었는지 아니면 읽지 않고 풀었는지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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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기상천외한 실험들은 앞으로도 현실에 발맞추어 계속해서 발전될 것이다. 상상력이 더 나은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인류의 오랜 충동이며 문학이 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 모색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김초엽 현상은 일시적인 것으로 치부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17
 

 

잡지를 읽으며 사람들이 왜 김초엽 작가와 그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또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전문적인 정보가 담긴 것은 아니지만 그냥 책을, SF를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유익했고 오히려 같은 위치인 팬과 독자들의 생각이 담긴 덕에 더 많은 공감이 갔다.

 

나는 SF 장르를 좋아하면서도 어쩐지 국내 SF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SF 창작물도 생소하게 느꼈는데, 김초엽 작가가 지닌 이야기보따리를 향한 기대감이 커진 지금을 기회 삼아 국내 SF에도 재미를 붙일 생각이다.

 

머지않아 나도 김초엽의 세계에 빠져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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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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