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무대 위에선 모든 것이 예술이 된다 - 스카팽

글 입력 2022.12.29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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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사진19.jpg

공연 사진: 국립극단 제공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글이 쓰고 싶어진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산문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의 첫 구절이다.

 

공연을 보고 나면 꼭 파도가 덮치듯 마음이 일렁였던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번 극장을 나온 뒤 사유를 가장한 복잡한 생각들은 머릿속을 부유했고, 나는 어설픈 기록으로 잔상을 구체화하곤 했으니까.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은 공연예술을 시간의 예술이라 말했는데, 나는 이 대목에서 동시에 소멸을 떠올렸다. 순간적으로 살아났다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무대 위 분명하게 생동했던 것이, 객석 조명이 켜질 때면 환상처럼 아득해지는 그런 소멸성 말이다.

 

극장을 나온 뒤 내가 꽤 자주 공허함을 느꼈던 건 소멸한 것의 상실감 때문이었을까. 예술이 있었다는 유일한 증명인 여운을 품에 안고 돌아가는 길엔, 새로이 움튼 애정과 쓸쓸함이 뒤엉켜 있었다.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사진15.jpg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극 <스카팽>은 익살스러운 하인, 스카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실 이야기의 흐름은 스카팽 중심이지만, 연출상 모든 배우들이 극을 이끌어갔고 각 인물들이 가진 매력이 빠짐없이 돋보였다. 톡톡 튀는 개성이 한데 어우러진 그 유쾌한 조화가 관객들을 끊임없이 웃게 했다.

 

극을 더 풍부하게 만든 건 연기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배우들의 움직임, 음악과 노래였다. 무대 위에서 직접 행해지는 라이브 연주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직접 소악기를 이용해 만들어낸 독특한 음은 극에 재치를 더하며 일종의 예술로 작용했다.

 

그리고 배우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대사에 움직임이 입혀진 것처럼 말과 동작의 템포는 맞아떨어졌고, 그 완벽한 합은 희극의 특성을 강조하면서 배우들의 노련함을 드러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작품의 작가인 몰리에르가 무대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나긴 독백과 쇼맨십을 시작으로 연극의 포문을 연다. 이후에도 몰리에르의 활약은 계속됐는데, 극이 액자식 구성이었기에 몰리에르는 자신이 쓴 작품에 직접 배우들을 연기하도록 지시하며 진행자의 포지션을 취했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끊어졌다 다시 이어질 때면 몰리에르의 ‘진행해’라는 유쾌한 대사가 흐름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지난 2019년 국립극단에서 제작 초연된 <스카팽>은 이번 공연이 관객과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재연된 공연인 만큼 각색과 연출의 과정에서 반영된 시대의 흐름은 큰 장점이 되었다.

 

극 중 일부분에서는 유행하는 노래나 유행어들이 웃음 포인트로 녹아 있었고, 덕분에 관객들은 계속해서 다음 장면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스카팽>은 뻔하지 않은 연극이었다. 배우의 다음 대사를 기다리게 하는, 오로지 2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에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그런 연극이었다.

 

 

[국립극단] 스카팽(2022) 공연사진09.jpg

 

 

공연을 보는 동안 나는 생동의 질감을 느꼈다. 이를테면 활력과 생기, 살아있다고 정의할 수 있는 어떤 것. 무대 위,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에너지는 전율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나는 이번에도 극장을 나온 뒤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는데, 그 마음의 형태를 오직 하나로만 정의할 수는 없다. 향수인 것 같기도 하고 동경인 것도 같았다.

 

어찌 됐건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번 자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 화려한 퍼포먼스를 꾸려낸, 그리고 무대 위 모든 존재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극장 안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바이다.

 

 

 

컬쳐리스트.jpg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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