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소설이라는 유일무이함 -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도서]

글 입력 2022.12.2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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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_평면(띠지유).jpg

 

 

마진이 얼마야? 숫자가 너무 많아 열리려면 한참이 걸리는 엑셀 앞에 앉아서 묻는다. 새로운 상품을, 서비스를, 취미를, 태도를 불러올 때면 고민한다. 내가 투입한 것, 그리고 내가 얻는 것, 그 사이 내가 얻는 순수한 차액은 얼마인가?


일상 속에서 너무도 익숙한 ‘마진’이지만 책의 제목에선 낯설게만 느껴진다.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희소성 혹은 화폐적 가치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세상에서 소설의 마진은 얼마인 걸까? 예술 작품도 돈으로 환산되곤 하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자본주의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기엔 빈틈이 생기고, 의문이 든다. 이 작품은 왜 이리 터무니없이 비싼가, 또 다른 이 작품은 왜 아무도 찾지 않아 가치가 없다고 평가받는가? 글을 쓰는 작가는, 글을 읽는 독자는 무엇을 얼마나 얻는가?

 

소설이 남기는 건 정확히 눈으로 가늠하고 손을 뻗어 만져볼 수 없는 것. 출판사 작가정신이 창립 35주년을 맞아 23인의 작가들에게 물은 ‘작가정신’에서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쓰는 사람의 이야기


 

23명의 작가들은 소설을 쓰는 이유, 소설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과 마음가짐, 소설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들이 긴 시간 고민하고 사투한 결과인 소설을 많이 읽어왔지만, 그 전후 과정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한 작품을 끝마쳤을 때, 다음 작품을 내기까지의 시간 속에선 어떤 생각을 할까? 소설을 쓰고 읽으면서, 그들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 이야기들은 소설가가 아닌 삶과 비슷하기도, 완전히 다르기도 했다.

 

 

원고료나 인세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등단 후 십여 년간 생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소설 때문이었다. 소설은 결국 나를 먹고살게 했고,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소설은 내게 노동이었다. 

 

 

나는 운동을 하며 소설을 쓴다. 주저앉고 싶을 때까지 달리거나 때론 수영장에서 헤엄을 치거나 발레 학원에 가서 햄스트링이 찢어지는 고통을 직접 느끼면서. 운동은 소설을 쓰기 위해 오랫동안 미뤄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식사를 미루지 않듯 운동을 미루지 않아야만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예전보다 더 소설 쓰기를 사랑하고, 그보다 더 소설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나는 영감을 찾아 나서지 않고 다만 묵묵하게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사람의 모습에 좀 더 가까워졌다. 


- 박민정, 나는 더 이상 소설을 기다리지 않는다 中

 

 

박민정 작가의 글에서 먹고사는 일로서의 소설을 생각해 본다. 독자는 순수한 예술 작품으로 소설을 받아 읽는다. 일을 마치고 난 여가시간에 책을 펼치고 활자의 세계로 들어선다.

 

예술과 여가와 맞닿아 있는 것은 흔히 일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소설 또한 누군가에겐 분명한 일이다. 9시부터 6시, 딱 떨어지지 않는 그들의 노동시간, 그렇다면 작가의 노동 가치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예술은 영감과 재능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박민정 작가는 예술 또한 성실함과 끈기가 중요함을 알려주었다. 목표가 있다면,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서 이뤄지진 않는 건 예술도 마찬가지였다.

 

문장은 엉망이고, 사건이 전개되는 모양도 이상하고, 인물은 밋밋하게만 느껴지더라도 묵묵히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작은 희망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이 주는 위안이 있다.

 

 

소설을 쓰는 일은 맞거나 틀리거나 하지 않는다. 옳거나 그르거나, 이기거나 지거나 하지 않는다. 뭔가 의미 있는 형태를 만들어 옆 사람과 나눌 수 있는 조용한 작업, 나는 이런 일에 나 자신을 종사從事시키고 싶었다. 누구를 만나도, 어떤 새롭고 재미있어 보이는 일에 빠졌어도 반평생을 지속적으로 좋아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가닿고 싶은 유일한 것이 소설을 읽고 쓰는 일이 되었다. 


- 조경란, ’작가의 말’과 신발 中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 이어지는, 대단한 작가의 작품 앞에 끝없는 질투와 열등감을 느끼게 하는, 과연 그것이 직업인가 세상의 몰이해가 여전히 쏟아지는, 소설이지만. 그 소설이야말로 세상을 살아아게 하는 무엇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을 직업으로 갖는 것,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싶었다. 무수한 어려움이 따를 테지만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궁금했다.

 

 

 

읽는 사람의 이야기


 

작가들의 이야기 속에서 글을 읽는 이유, 글을 읽으며 얻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소설을 읽는가? 나는 소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인물과 상황 속에서 나와 유사한 면을 본다.

 

그건 타인과의 대화나 혼자만의 생각으론 불가능한 위로를 준다. 소설 속 다른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각도의 기울기로 기울어진 채 살아간다는 것. 그 안에서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한데 어느 날, 샤워를 마치고 락커 앞에서 급히 로션을 바르다 통을 떨어뜨린 일이 있었다. 플라스틱 원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제법 둔중한 소리가 났는데, 별일은 아니었다. 무언가 깨지지도 않았고, 통이야 다시 주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늘 툽상스러운 표정으로 샤워실 이곳저곳을 살피던 관리자가 내게 다가오더니 뭐랄까, 다친 짐승 새끼를 보는 사람처럼, 한없이 걱정하는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요?”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핑 돈다는 표현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되었는데, 왜였을까? 


- 한유주, 산책들 中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 불친절한 사람들이 싫다가도 언제나 더 이해하고 싶고, 다정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을 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영원히 모른 채 살아갈 나와 상관없는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랄 때가 있다.

 

다른 지대의 사람들을 왜 생각하며 사냐는 질문을 받다가도, 이름 모를 이의 친절을 받을 때면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란 걸 느낀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한다.

 

 

결과적으로 호치민은 센스 있는 요리사처럼 나의 굶주림을 해소시켜 주었다. 실제로 호치민에는 맛집들이 많다. 베트남에 대한 나의 막연한 편견과 달리 그곳의 우유는 부드럽고, 굴은 크리미하고, 차는 달콤했다. 거리의 꼬질꼬질한 개들은 붙임성이 아주 좋았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달려나가는 오토바이 여자들은 늠름했으며 식료품점 매대를 가득 채운 이름 모를 향신료들, 그리고 부동산 열기로 가득한 고층 빌딩의 공사 현장까지 나는 눈앞에 펼쳐진 온갖 이미지를 대식가처럼 먹어치웠다. 

 

- 김사과, 디즈니랜드에서 글쓰기 中


 

소설가의 글을 읽는 또 다른 이유는 경험을 다시 불러오고, 곱씹게 만드는 데에 있다.

 

김사과 작가가 여행지에서 풍경을 먹어치웠다고 말한 표현이 너무나 생생했다. 새로움이 쏟아지는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생경함과 턱 끝까지 숨이 차게 하는 흥분감이 느껴졌다.

 

글은 내가 분명히 느꼈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지나친 감정과 장면을 다시 불러와 명명한다. 정확히 말하고 싶었던 바를 말하는 문장을 만날 때, 그때에만 느껴지는 짜릿함이 있다.


23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에게 소설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각자의 답을 내려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익숙하고 낯선 작가들을 만나며 마음에 들어온 글을 꼽아보고, 그들의 소설을 찾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어 매력적이다.

 

 

 

컬쳐리스트 명함.jpg

 

 

[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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