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궁중 암투물의 얼굴을 한 SF물 : 웹툰 '후궁공략' [만화]

글 입력 2022.12.2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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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아래 글은 웹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만화는 수능을 앞둔 한 소녀가 자신도 모르게 가상현실 게임 ‘후궁공략’에 접속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전에 모바일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이미 출시가 되었고, 주인공 또한 그 게임을 해봤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가상현실로 리메이크되었다는 점과 모바일 게임 당시 주인공이었던 ‘리리’가 아닌 처치해야 하는 악역인 황귀비 ‘서란희’로 접속되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악역이었던 ‘서란희’가 황후가 되어야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갈 수 있다는 어려운 도전 과제가 주어지고, 수능을 봐야 해서 게임에서 꼭 탈출해야 하는 주인공 ‘요나’는 이상하게도 게임의 여러 기능이 먹통이 된 상황 속에서 여러 동지와 적을 만나며 문제를 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1. 모델링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이곳은 ‘가상’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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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시뮬레이션 게임 ‘후궁공략’은 일명 ‘3세대 가상현실 엔진’을 기반으로 한다. 1, 2세대 가상현실 엔진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는 가상현실 게임처럼 직접 그 게임에 접속해서 체험할 수는 있지만 현실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가상현실 엔진은 ‘모델링’을 통해 가상현실 세계를 조립했지만, 3세대 엔진의 특징은 세상을 ‘시뮬레이션’한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비현실적인 가정이고, 실제로 작품 내에서도 과학 기술이 매우 발전하여 양자 컴퓨터라는 어마어마한 용량의 기기를 사용하여 3세대 엔진을 작동한다는 세계관을 가정한다. 이렇듯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겨난 세상은 철저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똑같은 물리 법칙을 가진다. 물건과 사람을 개발자가 모델링하는 것이 아닌, 가상현실 속 사람이 창조해내는 것이다.


물론 가상현실 ‘게임’이기 때문에,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과 똑같은 물리 법칙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개발자가 조종할 수 있는 범주 내에 있으며, 그리고 한계 또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게임을 클리어하면 그 세계는 끝나는 시공간적 한계 말이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물음이 생겨난다. 첫 번째, 이렇듯 인간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인간은 신의 경지에 다다른 것은 아닌가? 실제로 <후궁공략>에는 이러한 대사가 몇 번 등장한다. “빛이 있으라!” 과학 기술이 발전함으로써 인간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된다. 어쩌면 과학 기술의 발전은 전지전능의 존재를 갈망하는 인간의 욕망을 표방하는 것은 아닌가?


두 번째, 이렇게 생겨난 가상현실을 ‘가상’ 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후궁공략’ 게임 속 NPC라고 여겨졌던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사연과 과거가 존재한다. 이 또한 단순히 모델링을 통해 생겨난 인물이 아닌,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겨난 인물이기에 생기는 현상이다. 결국 각 NPC에 자유의지가 있는 자아와 각자만의 인생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들을 가짜라고 부를 수 있는가?


세 번째, 우리가 있는 곳 또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생겨난 또 다른 가상현실인가? ‘요나’의 아버지는 게임기의 한계와 현실의 한계인 ‘빛의 속도’를 지적하며 우리가 사는 현실도 어쩌면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게임처럼 구성된 세계일 수 있음을 연상케 한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신’이라는 존재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이곳 또한 창조된 또 다른 가상현실이 아닌가?

 

 

 

2. 호접지몽(胡蝶之夢): 이것은 ‘현실 도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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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胡蝶之夢). 장자(莊子)가 나비가 된 꿈을 꾸며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의 물아일체를 경험한 고사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후궁공략>에서는 ‘나비’를 주요 소재로 등장시키며 게임 속에 접속한 ‘요나’와 다른 인물들을 호접지몽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물아일체는 실제로 가상현실 엔진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닌, 캐릭터에 동기화되어 마치 그 캐릭터처럼 살아가는 것.


그리고 이 가상현실 엔진과 게임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이다. “네가 살기 원하는 가상현실 속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일”. 즉,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는 없는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고 될 수 있는, 말 그대로 온전히 나를 위한 유토피아에서 사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현실에서 실제로 살 수 있고 그곳이 곧 나의 현실이 된다면, 그것은 ‘현실 도피’인가? 이것이 바로 호접지몽의 난제이다. 실제 현실에서 벗어나 가상현실로 도피한 나, 즉 ‘행복한’ 현실의 꿈을 꾸는 ‘각박한’ 현실의 내가 아닌, 그저 ‘각박한’ 현실의 꿈을 꿨던 ‘행복한’ 현실의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득 이런 의문도 든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이 정녕 행복한 현실일까? 그것이 가치 있는 인생일까? 인생은 오히려 변수와 장애물이 있고, 그것을 헤쳐 나감으로써 얻는 성취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나 ‘편리’와 ‘전능’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3. 진짜와 가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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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게임을 진행하면서 ‘서란희’로 살아가는 ‘요나’는 이렇듯 생생하고 진짜 같은 곳이 모두 가짜라는 사실에 허무함과 혼란스러움을 품게 된다. 그리고 게임을 진행하며 생겨나는 갈등과 그로 인해 얻는 마음의 고통을 애써 가짜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하지만, 자신이 클리어해야 할 퀘스트라고 여긴 ‘황상’은 그저 한 명의 인격체라는 사실이 ‘요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렇게 방황하는 ‘요나’는 수시로 그녀의 아버지가 말했던 인생의 지표를 마음속에 새긴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내가 겪은 감정과 내 생각만큼은 진짜라는 것. 그것은 ‘요나’가 앞으로의 갈등과 장애물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하는 열쇠가 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살아가기 힘든 현실이라도, 그리고 길을 잃고 방황한다면, 내 생각과 감정이 길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만큼은 절대로 헛되지 않은 것이다.


‘요나’는 결국 ‘황상’, 즉 ‘햇살’과 함께하는 현실에 살 것을 택하고, ‘상재’는 그 현실을 게임이 아닌 누구도 조종할 수 없는 별도의 세계로 만들어버린다. 퀘스트, 아이템 등의 게임 속 요소를 모두 지우고, 원자 컴퓨터를 통해 시뮬레이션을 끝까지 돌려 아예 간섭할 수 없는 독립적인 세계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후궁공략’의 세계는 독립적인 세계가 되고,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는 되지 못했지만, 그곳은 ‘요나’가 정한 마음의 지표이고 그곳이 곧 ‘요나’의 세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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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후궁공략>은 올해 본 웹툰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웹툰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궁중 암투물 장르에 이끌려 보기 시작했지만, 작품의 메인 스토리뿐만 아니라 세계관이 체계적이고 탄탄하며, 애절한 로맨스와 과학기술 이야기, 그에 곁들인 철학적인 물음까지 조화롭게 어우러져 굉장히 감탄하였다.


분명 분위기는 후궁 암투물과도 다름없지만, 독자들은 이 웹툰을 SF물 명작이라고 평하고 있다. ‘용두용미’라고 평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탄탄한 스토리와 세계관이 있으니 웹툰 애호가라면 꼭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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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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