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글자의 표면에서 맞닥뜨리는 기저의 불안함 - 레이디스

글 입력 2022.12.19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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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점프스케어를 이용해 보는 이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는 영화. 다른 하나는 보는 이가 불안하도록 주로 음악 등을 이용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영화.

 

전자는 직접적으로, 후자는 간접적으로 관객에게 불안이나 두려움, 공포를 선사한다. 후자의 것을 좋아하고, 책을 읽으며 머릿 속에서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인물을 만들어 영화를 제작하기를 즐겨하는 필자와 같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그의 작품에는 꼭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 해도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으슥하고 불길한 분위기가 배어 있다.

 

*

 

본 책은 하이스미스의 단편 소설 여러 편을 묶어놓은 책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나 영상 매체를 볼 때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대략적인 흐름을 발견하기까지 홀로 작품에 대해 추측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리고 작품 전체를 모두 아는 상태에서 다시 볼 때의 재미가 또한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러했다. 서스펜스의 대가로 불리는 하이스미스가 쓴 책, 이라는 정보 하나만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장인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에서는 남자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로 한 수녀원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여자 아이로 키워진 '남자아이'는 남자라는 존재를 알게된 후 탈출을 감행한다. 이후 두 번째 장인 [미지의 보물]이 전개된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가방을 가지고 장애인과 키 작은 남자 사이에 목적이나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과 불안감이 오간다.

 

나는 세 번째 장으로 넘어가기까지 수녀원의 남자아이가 [미지의 보물] 속 키 작은 남자와 장애인 중 누구인지 찾기 바빴다. 단편 소설들을 엮은 것임을 모르고 이 책은 그저 하나의 장편 소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바는 내가 두 소설이 한 이야기라고 착각할 만큼 인간의 불안, 두려움과 긴장 등이 이 책의 전체를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것으로 뭉뚱그려지는 바로 그 심리들이 각각 어떤 상황에서 다양한 인물들 사이에서 조성되는지가 궁금해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조금 미안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다면 참으로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었을 그 감정들이 책 속 인물들의 것이 되면 어떻게 그토록 흥미로운지, 하이스미스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차례

 

세인트 포더링게이 수녀원의 전설

미지의 보물

최고로 멋진 아침

모빌 항구에 배들이 들어오면

공 튕기기 세계 챔피언

돌고 도는 세상의 고요한 지점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

루이자를 위한 초인종

엄청나게 친절한 남자

시드니 이야기

영웅

애프턴 부인, 그대의 푸르른 산비탈에 둘러싸여

미스 저스트와 초록색 체육복

하늘로 막 비상하려는 새들

마법의 문

달팽이 연구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꼽아보자면, [공 튀기기 세계 챔피언]이다. 엄마와 아빠의 미묘한 다름과 그로부터 비롯된 불편함을 아이는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를 위해 그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부모님을 보며 아이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그 숨막히는 분위기에 더불어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내본 용기가 타인에 의해 좌절되었을 때 그 감정은 더욱 심화되었을 것이다.

 

이 때 주목할 점은, 그들은 그 감정을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신뢰와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말들을 선택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각자의 두려움은 소리 없이, 은은하고 끝없이 퍼져나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보다는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고, 그 심연으로 함께 가라앉는다.

 

개인적으로 한없이 불안한 감정을 하이스미스의 어두운 상상력을 통해 여과없이 보여준,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 1921~1995)


'불안의 시인', '서스펜스의 대가' 등으로 불리며, 우리 시대 최고의 범죄소설과 심리소설 작가로 손꼽혀온 미국의 소설가. 1921년 1월 19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태어나 뉴욕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바너드 대학에서 소설 창작과 극작법을 공부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고, 트루먼 카포티의 지지를 받아 1950년 장편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출간해 큰 주목을 받았다.

 

50여 년 동안 꾸준히 활동하며 [캐롤](클레어 모건으로 필명으로 출간), [아내를 죽였습니까], [재능 있는 리플리], [심연], [올빼미의 울음], [유리 감옥] 등 수많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중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집필에 매진했고, 장편소설 [소문자 지(g)]를 마무리한 뒤인 1995년 2월 4일 스위스 로카르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이스미스는 생전에 에드거 앨런 포 상, 오 헨리 상, 프랑스 탐정소설 국제 부문 그랑프리, 미국 추리 작가협회 특별상, 영국 추리작가협회 은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인 2008년에는 <더 타임스> 선정 역대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로 꼽혔다. [레이디스]는 심리소설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초기 소설 열 여섯 편을 발굴해 묶은 탄생 100주년 기념 소설집으로, 하이스미스 고유의 주제와 특징인 '어두운 상상력의 세계'와 '타인에 대한 한없이 불안한 감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민시은.jpg

 

 

[민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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