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스펜스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책 '레이디스'

글 입력 2022.12.1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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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스펜스는 종종 서프라이즈와 비교된다.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불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대놓고 깜짝 놀라게 하는 서프라이즈와 달리, 서스펜스는 불안과 긴장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즉시 사건이 발생하여 놀라움을 야기하는 것은 서프라이즈이고 사건이 발생하면 벌어질 일을 상상하게끔 하여 불안을 유발하는 것은 서스펜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레이디스>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서스펜스 장르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끈 <캐롤>과 <리플리>를 쓴 작가이기도 한 그녀는 이 시대 최고의 범죄소설과 심리소설 작가로 손꼽히고 있는 미국의 소설가이다.

 

책 <레이디스>는 그녀의 초기 단편 소설들을 엮은 소설집으로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되었다고 한다. 독자들은 6편의 단편 소설을 통해, 그녀의 상징과도 같은 '어두운 상상력의 세계'와 '타인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다.

 

 

평소에 서스펜스 장르를 좋아했기에,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캐롤>과 <리플리>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특히 <리플리> 같은 경우에는 심리학을 공부하며 종종 들었던 영화인지라, <리플리> 원작을 쓴 작가의 글을 읽는다는 사실이 더 호기심이 자극했던 것 같다.

 

책 <레이디스>는 6개의 단편 소설로 구성이 되어있다. 한 편씩 읽기에 부담이 없어 자기 전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인 구성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재미있었다. 서스펜스라는 장르가 이런 것이구나를 새삼 느끼게 만드는 6편의 걸작을 만날 수 있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처음 읽으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서스펜스라는 장르의 대가답게 작가는 상황보다는 심리 묘사에 더 많은 문장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상황에 속한 여러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보니, 가끔씩 너무 급격하게 상황이 전환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장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한다면, 방향을 찾기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정신을 똑바로 차릴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책 <레이디스>는 서스펜스의 참맛을 경험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서스펜스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소한 일상조차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들여다보았을 때, 개개인의 마음은 얼마나 위태로울 수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소설들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심지어 행복한 순간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솜씨가 훌륭하다.

 

책에서 가장 짧은 축에 속하는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를 살펴보면, 소설 속 주인공은 굉장히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구입한 그림의 색을 칠하는 일에서조차, 완벽함을 찾으려고 애쓴다. 별것도 아닌 일에 왜 그리 집착하냐는 아내의 조언에 콧방귀를 끼며 '네가 몰라서 그래.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라는 뉘앙스로 대답하는, 말 그대로 스스로의 철저함에 젖어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는 결국 그림의 색을 찾아낸다. 문제는 '프림로즈 색'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결국 사전을 찾아보고 '연한 초록빛이 도는 노랑'이라는 묘사를 찾아낸 그는 사전이 말하는 색으로 그림을 칠한다. 그는 자신의 성취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의 그림을 본 아내의 한 마디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기 전까지...

 

 

'프림로즈는 분홍색이야. 사전을 찾아볼 필요도 없어.

프림로즈가 분홍색이라는 것을 내가 알고 있으니까.'

 

 

분명 사전에서는 프림로즈를 '연한 초록빛이 도는 노랑'이라고 묘사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무시했던 아내가 프림로즈는 분홍색이라는 확언을 한 것이다. 다시 사전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프림로즈는 '연한 초록빛이 도는 노랑'색이다. 그럼에도 '연한 초록빛이 도는 노랑'색은 그림에 사용되기에 너무 연하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은 어쩐지 일리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스스로의 완벽함에 한치 의심도 하지 않았던 그의 마음이 '혹 내가 실수를 한 것일까?'라는 의심으로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굉장히 짧은 단편 소설이지만, 인물이 경험하는 심리 변화를 통해 독자는 서스펜스의 핵심인 불안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큰 묘사가 없어도 인물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유추하도록 만들고, 그 성격과 충돌하는 사건을 전개하여 자신의 신념이 깨지는 순간의 불안을 너무도 세련되게 전달하고 있다.

 

책 <레이디스>의 소설은 모두 이러한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모두가 서스펜스이지만, 매 순간 새롭고 또 불안하다. 인간의 불안은 굉장히 사소한 것에서부터 거대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게 펼쳐진다. 상황에 따라, 순간에 따라 느껴지는 불안은 각기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지고 있기에 결코 질릴 수 없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였을 때, 삶의 다양한 불안을 생각해낸 작가의 통찰에 감탄을 하게 된다. 서스펜스의 대가라는 칭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서스펜스를 좋아하는 분, 혹은 서스펜스의 참맛을 느끼고 싶은 분에게 책 <레이디스>를 추천한다. 서스펜스가 이런 것이었구나, 새롭게 느끼고 배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감히 서스펜스의 모든 것을 한 번에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다.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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