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각자 다른 모양새로 모난 존재들의 한 집 살이 - 사월의 사원 [공연]

글 입력 2022.12.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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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사월의 사원>

내용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자취 생활을 꿈꿨다. 자취를 하면 집을 내 취향대로 꾸미고, 맛있는 것도 요리해 먹고, 주말에는 취미 활동을 하며 여가를 보내는 로망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집에서는 원 없이 쉬는 걸 제일 좋아하는 나에게 이러한 로망은 그저 환상이었을 뿐인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때때로 마음이 힘들 때는 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수많은 이들과 부대끼다가 하루가 다 지나가곤 했으니까. 떠오르는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차분히 소화할 여유도 없었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대학교에 온 후 2년간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분명 재미있고 새로운 경험이긴 했지만, 하나의 좁은 방에 둘이 같이 지낸다는 건 정말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난 후, 가장 편해야 할 거주 공간에서까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혼자만의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만큼은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던 자취 생활을 드디어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새로운 세상을 얻은 듯 신나고 설레었다.


*


그렇게 기다리던 혼자만의 자취였는데, 막상 내가 느낀 감정들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텅 빈 집이 너무 공허하고 적막한, 커다란 통처럼 느껴졌다. 집에 드나들 때 인사할 사람도 없고, 배달음식을 혼자 먹다 남길 수밖에 없다는 게 그토록 외로운 일인 줄 몰랐다.


그 후 나는 또다시 타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외출하고 나서 돌아오면 집이 나를 반겨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설령 그들이 집을 비우고 있거나, 인사를 하지 않을 때라도 말이다. 이곳이 나만의 집이 아닌 누군가의 집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든든하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어떤 공간에서 머물며 산다고 해서 그곳이 저절로 나의 ‘집’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나일 수 있고, 편안한,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은 곳만이 나에게는 진짜 ‘집’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살아가는 우리 집이 나에게는 무척 소중하다. 앞으로는 또 누구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함께 사는 이 혹은 이들과 동시에 어떤 공간을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운이 계속된다면, 내가 그 사람들과 공간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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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집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연극, <사월의 사원>이 나에게 특히나 각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극 중 인물인 영혜에게서 가끔은 나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도.


영혜는 어릴 적에 자신을 버렸던 모친에게서 집 한 채를 받았다. 곧 요양원에 들어갈 모친을 죽기 전까지 보살펴 주는 조건으로 말이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컸던 그 집에, 영혜는 마음이 가는 이들을 하나둘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길거리에서 구타를 당하고 우연히 발견된 지수와 해영, 영혜의 모친이 머물렀던 요양원에서 일하다가 해고된 현주, 그리고 그녀와 이혼한 남편의 집에서 살고 있던 아들 기정.


그들은 모두 영혜 자신처럼 버려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영혜가 그들을 집에 데려온 것은 선의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영혜는 외로워 보인다. 말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자신을 버린 어머니가 별안간 찾아와서 한 부탁에 감정적 동요를 겪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한동안 돌보던 모친이 세상을 떠나며 영혜는 다시금 버려진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혜는 그 감정을 외면한다. 


그녀는 커다랗고 텅 빈 집에서 그 감정을 혼자 마주하고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진 사람들을 ‘주워’오게 된 것 같다. 어린 시절 버려진 경험이 있는 그녀는 아마도 밥이 끓는 냄새가 나는, 복작복작한 집에서 가족 같은 이들과 살아가는 것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수반하게 되어 있다. 하물며 원래 아주 가까웠던 사이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공동체로부터 밀려나는 상처를 받고 각자 다른 모양새로 모난 존재들이 처음 만나 갑자기 한 식구로 살아가게 되었으니, 순탄하게만 흘러갈 리 만무하다.


그들은 한 집 아래에서 잘 지내보려 노력해보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상대방이 정해놓은 선을 넘게 된다. 인물들은 서로를 품어보려다가 계속 튕겨 나가고, 이러한 갈등들로 인해 모두가 떠나면서 이들의 ‘집’은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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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사원>에서 관객들은 무대 위, 즉 영혜의 집으로 표현되는 공간에 앉아 관람하게 된다. 원래의 관객석을 향해 ‘ㄷ’자 구조로 배치된 좌석에 앉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과 똑같은 눈높이에 둘러앉아 있었기 때문에, 마치 영혜의 집에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배우와 관객 간의 거리가 아주 가까운 데 비해 관객과 호흡을 맞추는 장면이나 연출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초대되지 않은 방문객으로서 그곳을 관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가까이 있으면서도 물과 기름처럼 어우러지지 못하는, 영혜의 집 인물들과 비슷한 처지 같았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 바라보며 생각과 감정을 속으로만 삼켰다. 그들의 대화가 어긋났을 때, 어쩌면 그들도 서로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뜻대로 전달하지 못해 그냥 접어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 각자 혼자만의 방에 들어가서는 삐걱거리던 대화를 떠올리며 후회와 답답함을 느꼈을지도.


 

“동시대의 연대라는 건 때론 환상에 가까울 정도로 닿기 어려운 무언가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거리 안에서는 그럼에도 낙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면서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월의 사원> 배해률 작가

 


영혜의 집에 살던 인물들은 서로를 끌어안기 위해 적절한 거리를 찾아 움직여 보았다. 그들이 사는 곳이 ‘우리의 집’이 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상대방의 선을 넘고, 누군가는 그 선을 더 공고히 하며 상대를 밀어내며 결국 모두 튕겨 나갔다.


선의가 빚어낸 갈등과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내린 집에, 영혜는 다시 혼자 남는다. 돌아오겠다는 말도 공허한 모두와의 헤어짐으로 인해 영혜는 절망한다.


그러나 멀어진 거리가 오히려 그들에게 적당했던 것일까?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안부를 물으며 서로에 대한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는다.


*


<사월의 사원>의 공간적 배경은 크게 두 꼭지로 나뉘어 전개된다. 하나는 영혜의 집, 다른 하나는 캄보디아.


캄보디아 배경에서는, 지수와 공장에서 친해지게 된 캄보디아인 메싸가 등장한다. 그녀는 공장에서 해고당한 후 한국을 떠나 캄보디아로 돌아간다.


지수는 메싸와의 전화에서 그녀가 고향 마을에 좀처럼 찾아가지 못하고 계속 미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메싸에게 고향 마을은 전남편의 폭력과 아들 수린의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배를 타다 사고로 죽은 아들 수린은 당시에 시신도 찾지 못하였다.


굳은 결심으로 고향에 찾아간 메싸에게, 한 노인은 메싸가 고향에 돌아오기 얼마 전 배를 타고 나간 사람들이 백골을 발견하여 이를 사원의 탑에 안치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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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의 집과 캄보디아에서의 이야기. 전혀 다른 결로 진행되는 두 이야기는 극의 후반부에 영혜의 집을 떠난 지수가 메싸를 만나기 위해 캄보디아에 가면서 연결된다.


메싸는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인 수린을 마주하기 위해 사원의 탑에 오르고 지수는 그 길을 함께 해준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도한다. 영혜의 집에 살았던 사람들, 영혜, 해영, 현주, 그리고 기정을 위한 바람을 품은 기도를.


캄보디아의 사원에서 울리는 지수의 기도는 편지를 통해 영혜의 집에 전달된다. 영혜가 걱정된다던 현주의 말을 듣고 집에 다시 방문한 해영은 쌓여 있는 편지 더미 사이에서 지수의 편지를 발견하고 영혜에게 읽어주게 된다.


너무 가까이 있을 때는 엉켜버렸던, 서로를 향한 작은 소망의 마음이 실처럼 이어져 결국 서로에게 닿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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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는 메싸가 수린에게 주기 위해 가져온 장난감들이 객석 통로에 두 줄로 놓여 사원의 탑 계단을 상징하는 길을 만든다. 관객들 역시 그 사원의 탑을 오르며, 이야기는 끝맺음을 짓는다.


이 길은 누군가에겐 묻어뒀던 아픔을 마주하러 가는 길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소중했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길일 것이다. 또는, 미뤄뒀던 안부의 한 마디를 건네러 가는 길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됐든 꼭대기에서는 모두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운 기분을 느낄 수 있기를.

 

 

 

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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