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함부로 사는 삶 [사람]

글 입력 2022.12.1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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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절벽 아래 철철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졌다. 잠시간을 흘러 닿은 망망대해에는 배 한 척 보이질 않고, 수평선 가까이에도 육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헤엄치다 뜨문뜨문 솟아있는 바위에 몸을 걸치곤 숨을 돌릴 뿐. 내 요즘의 상황이다.


여러 이유로 퇴사한 지 어언 한 달이 되어간다. 당최 무슨 바람이 들어 그 안정적인 자리를 포기하고 뛰쳐나온 것인지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고, 나 역시도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따금씩 혼란스럽다.

 

허나 깊고 긴 고민으로 굳이 불안감을 사고 싶지 않으며 애를 들여 길게 설명하기는 싫기에 수많았던 이유 중 하나를 짤막하게 설명하고 만다. 그러면 다들 석연찮은 반응 없이 수긍하며 더 이상 깊게 묻지 않는다.

 

그렇게 대화가 다른 주제로 흘러갈 때면 안심이 되었다. 면밀하게 파고든다면 여태껏 해온 노력과 앞으로 해낼 노력에 대해서 자신 있게 길게 풀어 말해야 할진대, 간혹 자신감보다 자만에 가까운 것이면 어쩌나 싶은 의구심이 드는 탓이었다. 해서, 질문이 그만한 데서 그친다면 마음이 놓였다.


회사를 다닐 적엔 매일 출퇴근길만으로도 채우기 쉬웠던 8,000보가 이제는 부러 나가 걸어야 하는 목표가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있기 바빠 나가지도 못하는 날이면 2,000보도 겨우 채우는 날도 여럿이다. 집에 틀어박혀 나를 증명하는 데에 바쁘게 구는 날만 가득하면 우울이 성큼 다가올 수 있음을 알기에 가끔은 냅다 걸어 이만 보를 넘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근 한 달간 평균 걸음 수는 회사를 다닐 적보다 한참 적다. 소수로 다수를 중화하려 드는 내 욕심도 참 답이 없다. 제자리걸음은 아닌데 자꾸만 제자리걸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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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한 마음에 문득문득 급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고 숨기기도 싫은 감정이다. 우울은 수용성인 데에 반해 막막함과 조바심은 그 무엇에도 약하지가 않아서 자꾸만 답답해진다. 꼬이는 습기를 어떻게든 환기하려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맛있는 걸 먹어도 며칠 지나지 않아 습기는 또 답답하게 들어찬다. 다행히 앞만 보며 묵묵히 달리는 것에 능한 만큼 결승선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지 못함에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페이스를 유지하는 법을 알고 있다. 실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요즘 무얼 하고 사냐는 질문을 받으면 온종일 글을 쓴다고 답한다. 나를 증명하는 글도 쓰고, 내가 좋아하는 글도, 하루를 기록하는 글도 쓴다고. 낭만적인 듯 메마른 근황에 주로 ‘힘들겠네’와 ‘잘하고 있네’가 얼버무려진 “힘들겠네. 그래도 좋다.” 하는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쉽진 않지만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만 불현듯 형용할 수 없는 막연함이 밀려오면 또 입을 다물곤 한다.

 

그렇게 혀 밑에서 녹아 사라지고 입안에서만 굴리다 목구멍으로 삼켜진 속내가 수없이 많음은 아무도 모를 터였다. 뱉어내어질 준비만을 한참 하다 결국에는 삼켜지고 마는, 답답해서 스스로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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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박상영을 읽고, 전에 써보지 않은 유형의 글을 써보며 처음 접하는 분위기의 영화를 시도했다. 차라투스트라는 말이 좀 많고, B급 감성의 영화는 꽤나 재미가 좋다. 격주로 나가던 글쓰기 모임은 끝이 났지만 또 신청할 예정이고, 앞으로의 여행을 함께 할 친구로 귀여운 카메라를 받았다. 새로운 비타민을 먹기 시작했고 겨울옷 쇼핑은 포기했다. 오랜만에 병원을 다녀왔고 밥솥을 선물받았다. 보온이 잘되지 않아 가끔은 딱딱하게 굳은 밥알을 천천히 씹어 삼키던 날들도 끝이 난 듯하다.

 

잘 먹고 잘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갓 지었을 때는 맛이 좋고 고장 난 구석이 없어 여즉 쓰고 있던 것을 집 밖으로 내어 버렸다. 어제는 아르네 네스의 심층생태운동 논문과 관련한 도서가 도착했고, 즐겨하는 게임의 티어는 그대로다. 현실적인 이유로 긴 시간 쉬었던 오래된 취미를 다시 즐기려 나갔던 11월의 클래스도 끝이 났다. 많은 것이 흘러가고 오가는 나날 속에서 뼈대를 꼿꼿이 하려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다.


올해 더는 보름달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유난히 차갑다는 그 망월을 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고 남은 것은 그믐달과 달이 없는 밤하늘뿐이라 헛헛할 뿐이다. 망망대해에 빠진 후로 시간은 느린 듯 야속하리만치 빠르다. 평년보다 훨씬 웃도는 기온이 조금은 무섭고 걱정스러운 겨울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고 있는 지금, 오로지 나만을 믿고 달려야 하는 세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언덕 하나만 넘으면 될 수도 있고 험한 산을 대여섯 번 넘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내 사람들의 조용한 응원을 간직한 채 어떻게든 뛰어보려 한다. 길가에 멈추고 벤치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별 수 있나.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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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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