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의 모든 것에서 두근거리고 근사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마음 - 집이라는 모험 [도서]

신순화, 《집이라는 모험》, 북하우스, 2022.
글 입력 2022.12.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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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번잡한 도시의 원룸에서 세를 얻어 살고 있다. 도시와 집이 주는 꽉 막힌 기분으로 살아가다가, 모처럼 생긴 여유에 무작정 제주도로 향하는 비행기에 이 책을 들고 몸을 실었다. 집 떠나온 모험에 ‘집이라는 모험’을 들고 가다니, 조금 아이러니한 시작이다.

 

‘만약 내가 복권에 당첨이 된다면’ 같은 터무니 없는 상상을 꽤나 자주 하는 나는 오래도록 ‘나의 집’을 꿈꿔 왔다. 어렸을 때는 마냥 궁전 같은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점점 나의 욕심의 양을 조절하게 된 것은 ‘책임’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책 소개를 보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긴 했었다. ‘마당에서 아이 키우기 로망으로 시작한 전원생활’ 안에는 그저 부러워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 담겨있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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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면 충분히 겪었고 충분히 지쳤다는 저자가 꿈꿔왔던 집을 운명처럼 만나 덜컥 계약하면서부터 이 모험은 시작된다. 저자의 전원생활은 벽난로와 통창이 있고 마당이 넓은 이층 벽돌집. 눈을 돌리면 어디나 푸른 나무인데다 새가 지저귀고 꽃이 지천에 벌과 나비가 모여드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곳은 동시에 밤새도록 난로를 때도 실내 기온은 오르는 둥 마는 둥 하고, 장마라도 지나면 마당과 집 안은 정글이 되는 곳이다. 득실거리는 벌레들과 뱀으로부터의 위협이 여기저기서 도사리고,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자라는 풀과의 전쟁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상식 밖의 방문객이나 주민과 씨름하는 일도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가까웠던 출퇴근, 등하교 거리가 멀어지는 것부터 전력 문제, 택배 문제, 쓰레기 문제 등등 이곳에서는 각자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 있다. 일상 곳곳에서 도시에 구축되었던 시스템의 부재를 나열해 놓고 보니, 인간들이 불편함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에서 얼마나 멀리 왔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도시를 두고 저자가 이곳에서의 12년을 선택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꿈꿔왔던 자연 속, 너른 대지를 품고 있는 집에서 산다는 것은 단지 집의 내부를 정리정돈하는 일뿐만 아니라 집 외부의 농작물과 생물들을 돌보는 일도 포함한다. 안락함을 포기하면서부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숲속의 외딴 집은 풍성하고 풍요로운 집이 되어간다.

 

삶을 이루는 무수한 노동들을 인식할수록 책임의 무게는 점점 묵직하게 다가오지만, 그 사이사이의 존재들을 발견하며 얻는 설렘과 감사함이 있었다. 불편함이 근사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철없을지도 모르는 로망으로 벌인 일들을 수습하면서 저자는 만들어가는 자의 보람을 느낀다. 문제가 있다면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부딪히고 개선한다. 사람이 집을 짓지만 집이 사람을 지어간다는 말처럼, 이러한 단순한 단련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라는 존재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어쩌면 이는 편리함이 주는 무력감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필요한 감각일지도 모른다. 낭만 하나만으로 시작된 삶, 그리고 낭만 하나만으로 구원받는 삶. 이 말에는 생기와 기쁨이 잔뜩 묻어나 있었다.


그런데 책이 주는 살아보지 못한 집에 대한 예찬에 한껏 취해 가고 있던 중, 결말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자가 살던 집도 결국 도시가 이끄는 개발 바람을 피해 가지 못한 것이다. 한동안 마음이 붕 뜰 수밖에 없었지만, 그동안 알뜰살뜰 손봤던 꿈의 집에 살며 뿌리내린 시간의 나이테가 곧 그를 차분하게 붙들어 주었다.


저자는 집에서의 열두 달을 회고하고, 집에서 살며 찾아냈던 감동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곱씹는다. 바라던 모든 것을 이미 받았고 누렸으므로 욕심 없이 언제든 떠날 결심을 내렸다. 이제 이 모험은 ‘다시 집을 얻는다면’이라는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이제는 아는 마음으로, 충분의 정도를 어림잡아 본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것과 동시에 나의 모험도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이 여행을 끝나는 것으로 취급하지 말자고. 기대를 허물고, 가지 않은 길로 기꺼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삶의 모든 것에서 두근거리고 근사한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마음을 결심한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넘쳐나는 길목에 있다. 그렇게 인생은 점점 살만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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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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