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상담일지

심리 상담이 보편화 되길 바라며
글 입력 2022.12.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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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같이 흘러가는 삶의 파도에 휩쓸리다 하루는 문득 뒤를 돌아볼 여유를 찾았다. “나 적당히 바쁘고 틈틈이 사람도 만나고 휴식도 취하고 있는데 괜찮게 살고 있는 거겠지?” 이 정도의 작은 기대도 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조금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한 쳇바퀴 속에서 발을 구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학교에 간다. 밥을 먹는다. 가끔 친구들을 만난다. 시험이 가까이 오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과제와 시험공부를 해낸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였다. 반복되는 루틴에서 오는 행복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지만, 왠지 그 루틴 안에 주체적인 나는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학교라는 장소, 적극적으로 원하지 않는 분야의 공부에 초점이 맞춰진 삶. 그것이 내가 원하는 전부는 아니었다. 주어진 모든 과업을 끝마친 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기엔 수행해야 할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적당한 시기, 여유로운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간 삶의 흐름에만 이리저리 떠다니겠다는 불안이 스며들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되는구나. 부지런히 작은 틈새에 ‘나’라는 조각을 끼워 넣어야하는구나.'


그 후 찾았던 조각 중 하나는 심리 상담이다. 인생에 상담을 하는 날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던 나에게 그 시작은 갑자기 찾아왔다.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갑갑하다고 생각할 때쯤 친구들에게 상담을 추천받았다. 친구들은 이미 상담이 진행 중에 었거나 일찌감치 끝마치고 다음 상담을 진행 중이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동료마저 상담을 하고 있다는 말은 깊게 숨어있는 아픔을 인식하게 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 당연한 생각을 새삼스레 깨닫게 했다. 그렇게 상담센터에 찾아갔고 신청은 단 10분으로 끝났다. 역시 시작은 무엇이든 갑자기, 별거 아니게 찾아오는 것인가.

 

그렇게 현재 다섯 번째 회기를 진행하고 있다. 경험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주는 은은한 강렬함을 실감하고 있다. 정말 모든 이들에게 상담을 추천하는데, 특히 내면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못하는 이들, 지독한 리스너에게는 더욱 권유하고 싶다. 내가 바로 그중 하나기 때문이다.


상담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설계하고 이끌어야 하는 대화다. 내가 고민을 토로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돌이켜 보고 내가 말해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토해내듯 말한 경험이 없는 나는 아직 상담이 어렵다. 하지만 나의 머리에만 맴돌고 있는 생각과 타인에게 가닿는 언어는 분명히 같은 것이 아님을 매번 깨닫고 있다. 그것들은 나의 입과 언어로 구체적인 존재 앞에 발화될 때 다른 모양과 힘을 갖게 된다. 예상도 못 했던 변화의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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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 ‘대화’라는 것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과 두려움이 있다. 나의 언어가 의도와는 달리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위축시키는 것이 싫고, 내가 그런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마땅한 당위이자 능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들었고, 나의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대화에서 바라는 가장 큰 가치였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대화에서 나의 감정과 생각은 서서히 자리를 잃었고, 사소한 내면의 이야기조차 꺼내기 부담스러워진 상태가 되었다. 사실 해본 적이 별로 없으니 그 방법조차 잘 알지 못했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이를 인식하고 나니 사소한 대화에서도 몸과 머리에 긴장을 놓지 않았던 내 모습이 보였다. ‘나 긴장하면서 살고 있었네.’


(미처 말하지 않은 내용으로 조금 비약적인 결론이긴 하나) 문득 내 모습과 내가 쌓아 올린 관계가 거품처럼 느껴졌다. 마음에 들지 않고 초라하기도 했던 모습이 ‘최선의 나’였다는 허무함, 매번 긴장 속에 관계를 맺었던 모습의 위태로움이 민낯을 드러냈다. 내 민낯은 작은 알맹이 같았다. 나의 초라함을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 당장은 씁쓸하고 아팠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무의미한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내 편안해졌다. 만약 모든 게 거품이었고 사라졌다면 이제 채울 일만 남은 것이니까. 내내 긴장하면서 부풀렸던 마음을 터트리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니까. 아직, 그리고 영원히 미숙한 아이일 수 있을 것이란 감각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이제는 더 편안히,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을 다시 마주하고 쌓아 올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 부지런히 나의 조각을 끼울 일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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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상담을 통해 도착한 나의 현주소다. 상담은 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버린 이유를 나의 생각과 내 역사에서 찾는다.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저 아득한 과거 속에서, 혹은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는 것 같은 사건 속에서 항상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이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록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지금에서라도 내가 직접 그것들을 끌어내고, 바라보고, 느끼고, 아파하고,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 시작은 자신과 상대에게 너무 모질어지지 않는 마음으로부터다.

 

개인적으로 기록하고 싶은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이 글을 통해 한 사람이라도 상담의 문턱이 높지만은 않다는 것을,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를 바라며 글을 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손이 필요한 유약한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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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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