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는 너의 평안을 바라고, 우리의 안녕을 빈다 - 사월의 사원 [공연]

글 입력 2022.12.09 16:35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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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사월의 사원_전화벨이 울린다.jpg

 

왜인지 극장을 나올 땐 마음이 무거웠다. 인물들은 저마다의 아픔이 깊었고 선명한 상처를 안고 있었다.


사람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덴 분명한 목표와 이유가 존재한다고 했던가. 연극을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물의 행동 습관과 두드러지는 특성으로 그들이 살아온 삶을 감히 헤아려 본다는 것이다.

 

왜 지수와 해영은 영혜가 말이 많아졌다고 얘길 하는지, 영혜는 왜 말이 많아진 건지, 정말 말이 갑자기 많아진 건지 아님 원래부터 그랬던 건지, 기정은 왜 그렇게 학교에서 폭력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 해영은 왜 처음에 현주를 달가워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왜 지수와 해영은 영혜의 집을 떠나야만 했는지.

 

나는 조심스레 가늠했다.

 

*

 

뜨개질 공방을 운영하는 영혜. 그녀가 살게 된 큰 집은 어린 시절 자신을 버렸던 모친을 간호하는 대가로 얻은 집이다. 혼자 살기에는 너무 컸던 그 집에 영혜는 마음이 가는 이들을 하나둘씩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이 집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인 지수, 동성애자 만화가 해영, 이혼과 실직을 겪은 현주와 그의 아들 기정이 함께 살고 또 흩어진다.


이들이 함께하는 생활은 순탄치 많은 않다. 특히 현주와 기정이 영혜의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려 할수록 의도와는 다르게 관계는 좀처럼 깊어지지 못했다.

 

여러 실이 한데 얽힌 뜨개질처럼, 하나의 공동체로 묶인 이들은 어딘가 자꾸 비죽 튀어나오곤 했다. 그것이 서로에게 흠집을 내면서도 위로가 됐을 것이다. 어디선가 치이고 모난 존재가 됐다 할지라도 서로가 서로의 따뜻한 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영혜의 집에 함께 살고 있진 않지만, 지수의 가까운 지인인 메싸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조명된다. 메싸는 자신의 아이를 만나기 위해 용기 있게 고향인 캄보디아로 돌아가지만 만날 수 없었다. 아이는 물에서 뭍으로 돌아왔다. 고요히 눈을 감은 채로.


지수는 메싸를 만나기 위해 영혜와 함께 살던 집을 떠나 캄보디아로 향했다. 같은 시기에 해영도 집을 떠났다. 영혜는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특히 북적하던 거실에 홀로 앉아 뜨개질을 하는 영혜의 모습에선 아득한 고독감마저 느낄 수 있었다. 분명한 상실이 묻어 나왔다.

 

침묵이 두려워서였을까. 영혜는 끊임없이 혼잣말을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고요한 이 집에 영원히 내려앉을 것 같은 침묵. 영혜는 그것을 자꾸만 깨려 했다. 그녀는 외로움에 빠진 스스로를 위로하듯 "혼자도 나쁘지 않다"라며 다독였고, 이때 기적처럼 해영이 돌아왔다. 해영을 바라보는 영혜의 눈은 일순간 무언가로 일렁였다. 꾹 눌러왔던 외로움이 솟구치듯 영혜는 터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고, 다행히 곁에는 기댈 수 있는 해영의 어깨가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메싸의 죽은 아이의 안녕을 빌던 지수는, 동시에 영혜의 집에서 함께 살던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런 마음으로 지수는 영혜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엔 우리 모두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지수의 바람이 묻어 있었다.

 

삶에 치이고 상처 입은 이들이 안온하기를, 아프더라도 회복할 수 있기를, 우리 모두가 평온한 경지에 이르기를. 그녀의 목소리가 피부에 와닿았고 이내 스며들듯 마음이 무언가로 적셔졌다. 극장을 나올 때 유난히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 그래서였던 것 같다.

 

*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이 어그러질 때가 있다. 마음먹을 때는 그렇게나 용기가 필요한데, 별거 아니라는 듯 짓눌리는 다짐을 볼 때면 도무지 다시 내디딜 앞이 보이지 않아 주저앉고 싶기 마련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이 저렸다. 막연한 해피엔딩을 바라는 인생처럼, 그냥 좀 잘 살아보겠다는데 좀처럼 잘 안되는 것을 볼 때면 그랬다. 인물들의 상황은 극적이면서도 가깝게 느껴졌다.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기울었다.

 

사실 상처 입지 않고 모나지 않은 존재가 어딨겠는가. 우리는 인생이라는 요란한 단어 안에서 각자의 빈 수레를 덜컥대곤 하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수레를 밀어주고 뒤에서 받쳐주며 조용히 위로를 건넨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 남겨지는 일이 되지 않도록. 상처와 회복, 다짐과 무너짐, 고독과 소속을 거듭하며 그렇게 함께 존재하는 우리들의 안위를 빌며. 이만 글을 마쳐본다.

 

 

 

컬쳐리스트.jpg



[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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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퍼플
    • 우리 인생도 연극처럼 살인가는거 같아요.
      작가님의 글처럼 덜컥대는 수레에 밀어주고 받쳐주면서 위로하고 위로 받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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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바다
    • 빈수레를 덜컥대고, 그럼에도 밀어주고 받쳐주고 위로하고,,,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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