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Namaste;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글 입력 2022.12.01 12: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요즘 내 세계에서의 핫한 이슈는 건강과 운동이다. 20대 중후반에 접어든 나와 친구들은 앞으로를 함께하고 우리의 몸을 조금이라도 더 튼실하게 만들어줄 운동을 모색하기에 한창이다. 헬스, 수영, 클라이밍, 러닝, 필라테스, 요가...


운동에 관심을 둔 후 제일 먼저 깨달았던 것은 30대를 앞둔(혹은 30대인) 친구들은 이미 N년 이상 지속해온 각자의 운동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체력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던 장면이 어제 일처럼 그려지는 지금에 와서야 그들의 선택이 오로지 그들만의 선택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어린 나이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지만, 아무튼 웃음과 건강과 친절과 삶이 체력에서 시작됨을 절감하고 있다.


새로운 운동 모색에 있어서 나의 조건은 [1. 안 해본 운동일 것 / 2. 집에서 도보 7분 내에 있을 것] 이 두 가지였다.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다잡은 후 지도 앱을 열어 언젠간 해보자 싶었던 운동들을 검색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새로 생긴 요가원 당첨.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검색을 마친 나는 그길로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 해본 적 있어요?’, ‘운동 해본 적 있어요?’, ‘어떻게 왔어요?’ 등의 질문과 함께 초면인 선생님과 약 30분을 떠들었다.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요가 700.jpg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하타요가를 집중적으로 수련하고, 부수적으로 인, 빈야사, 아쉬탕가 수업을 진행한다. 요가 2주차에 수요일 오전 아쉬탕가 수업을 받고 남은 일주일을 근육통과 함께 보낸 이후로 아쉬탕가와는 담을 쌓았다. 요가로부터 탈주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노력이라고 합리화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은 하타요가에 재미를 붙였다는 사실이다. 하타(hatha)는 대개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데, 하나는 동사 어근 ‘hath’(to oppress)의 변용이라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ha) 와 타(tha)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강력한(forceful)’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후자의 경우 해(ha)로 대변되는 ‘양’과 달(tha)로 대변되는 ‘음’의 조화 즉, 상반되는 짝의 합일을 의미한다. 내가 경험한 하타요가는 이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성질을 가졌다.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타요가는 상하좌우앞뒤 육면으로 뻗어 나가는 수련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요가의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동작들이 대체로 하타요가의 동작들인 경우가 많으니, 아마 요가에 무지하더라도 얼핏 상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김없이 나를 배신하는 나의 몸과 숨은 근육들의 아우성을 견디며 상하좌우앞뒤로 몸을 뻗는 동안 중심은 더욱 확실해진다.

 

 

요가2 700.jpg

 

 

“나마스테(Namaste)”

 

수련 시작과 마지막의 인사는 모두 “나마스테(Namaste)”이다.

 

요가를 다닌지 한 달이 되도록 나에게 “나마스테”는 그저 인도 인사말에 불과했다. 가끔은 인도로부터 전해져 온 이 운동을 한국에서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심지어는 인도 인사말로 인사를 나눈다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고 웃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근 읽은 요가 관련 문헌을 통해 "나마스테"의 직역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임을 알게 된 후로 수련의 시작과 끝에 전하는 이 인사가 색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교인 나에게 종교가 있다면 나 자신을 믿는 것인데, 건방지게도 내 몸 어딘가 신이 깃들어있다는 느낌이 들어버리는 게 아닌가.


“~~사나(āsana)”

 

일주일에 세 번, 선생님의 목소리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각자의 수련에 집중한다.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모이는 곳에서 고통과 함께 나의 단전을 느낀다.

 

2n년을 살아오면서 요가를 한 날보다 요가를 모르던 날이 훨씬 긴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요가를 가지 않으면 온몸이 뻐근한 게 이상하다. 수련의 목표는 물론이거니와 길고 어려운 동작의 이름도, 요가의 효과도 모르는 채로 시작한 요가에 재미를 붙이다니, 기적이 아닐리 없다.

 

나마스테. 오늘도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의를 표한다.

 

 

[김윤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0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