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바람 쐴 겸 머물다 간 인생 - 나의 외삼촌을 추억하며

글 입력 2022.12.0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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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8일. 금일 저녁 6시경, 본가의 아버지께 전화 연락이 왔다. 춘천에 계신 외삼촌께서 방금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말씀이셨다.


이미 올해 2월경, 외삼촌께서 담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외삼촌과의 이별을 준비했던 것 같다.


외삼촌과 이 세상에서의 이별을 고하러 출발하기 전, 조카의 시선으로 그의 모습을 추억해본다.

 

 

 

#외삼촌과 만능 손



어린 시절, 하나밖에 없는 조카가 초등학교 입학한다며 빨간 책가방 선물 주시던 외삼촌의 손. 성냥개비와 이쑤시개만을 사용해 ‘퀸 엘리자베스호’를 만든 작품을 보여 주시던 외삼촌의 손을 기억한다. 평생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사람들의 삶을 함께했던 손이었다.


“요즘에는 캐드(CAD)다 뭐다 컴퓨터로 다 설계하는데, 예전에는 내가 직접 다 그렸지. 컴퓨터가 어딨어? 나도 이런 거 배운다고 당시 노트북 200만 원짜리를 사다가 해보려고 엄청 애를 썼는데, 화가 나서 부숴버렸지 뭐야! 허허”


그 손은 환갑이 넘어서야 소박한 꿈이 생겼다. “나중에 늙으면 가죽공예를 하고 싶어.” 조카인 내가 생각만 해도 멋진 모습이실 것 같았다. “삼촌! 작가인 조카와 함께 공방 차려서 가죽 만들어요. 저도 같이하고 싶어요!”라며 나는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외삼촌의 말씀



근무하시는 현장 지역에서 만난 외삼촌은 고기를 구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은미야. 세상 사는 게 참고 견디고, 인내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 그렇지만 그것들을 참고 이겨냈을 때 얻는 열매는 달단다.” 외삼촌께서는 소주잔 빈 잔에 채워지는 술을 보며 내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제가 알 것 같아요. 더욱 깊이 인내하는 만큼 그 열매는 인내를 양분 삼아 더욱 풍성하게 맺힌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제야 조카인 제가 자신 있게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외삼촌과 숨바꼭질, 그리고 친구


  

"삼촌, 요즘은 어디에 계시나요?"

“지금은 용인에 없어. 일산 쪽으로 왔어.”

"삼촌, 요즘은 어디에 계시나요?"

“그래. 요즘 춘천에 있다.”


외삼촌께서는 평생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며 객지에서 생활하셨다. 가족과 떨어져 숨바꼭질하듯 살아온 인생이셨다. 그 시간 동안 외삼촌의 친구는 술과 담배, 그리고 책이었다. 그리고 최근 항암치료 생활 중에서도 여전히 멋들어지게 커피를 드시던 삼촌이셨다.

 

그 중 외삼촌의 책은 남달랐다. 언젠가 외삼촌께 책 한 권 선물해주십사 말씀을 드렸다. “네 마음에 드는 좋은 것으로 골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을 고를까 생각하다가 ‘나의 한국 현대사 - 1959-2014, 55년의 기록 (유시민 저)’을 가져다드렸고, 숨이 차올라 힘에 겨워하시는 외삼촌께서는 “이건 네가 태어난 시대가 아닌데, 어찌 알고?”라고 하시며 조카의 모습을 여전히 사랑스럽게 보아주시면서도 의아해하셨다. 이에 나는 “잘 모르니까 저도 벗 삼으려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허허 웃으시는 삼촌께서는 나중에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라는 동명 작가의 책도 유명하니 나중에 꼭 읽어 보라고 하셨다. 오랜 세월 곁에 책으로 친구들을 많이 두셨기에 조금은 덜 외로우셨을까 싶었다.

 

 

 

#외삼촌의 방



20221129_바람 쐴 겸 머물다 간 삶, 나의 외삼촌께 (워터마크O).jpg

 

 

작년 봄, 나는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경춘선을 타고 춘천 외가댁으로 떠났다. 왜 행선지가 굳이 외가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삼촌께서는 현장 근무지에서 생활하고 계시어 춘천에는 안 계셨고, 나는 외숙모의 배려 덕에 외삼촌 방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침대 건너편 피아노 위에는 오래된 연식의 카메라가 있었는데, 내게도 익숙한 브랜드라 반가웠다. 벽 한쪽에는 작은 서재가 있었다. 책꽂이에는 역사책, 에세이,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꽂혀 있었다. 하루 묵는 시간 동안 외삼촌께서는 이제까지 살아오시면서 어떤 꿈을 안고 살아오셨을까 궁금해졌다. 외삼촌께서도 일생의 꿈이 있으셨을 텐데, 결혼 후 가정을 이끄시는 가장으로, 딸 셋 키우시며 오롯이 아버지의 삶을 살아오신 게 느껴졌다. 하룻밤 자고 다시 수원으로 내려오는 길, 나는 경춘선 열차 안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일기를 썼다.


2021년 3월 14일, 날씨 맑음


일상에서의 벗어남을 항상 갈망하고, 또 다른 일상을 찾아 어떤 일상에 흠뻑 취하려 했다. 결국 그 일상도 내가 그동안 몸담고 있었던 그것의 연장선일 뿐, 전혀 색다른 것이 아닐지인데, 어찌 그리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인지. 나의 익숙한 일상 끝에는 또 다른 일상이 닿아있었기에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 때문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 뭉클하고 더 반갑다. 나의 일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인데, 내 마음이 바라보는 그것은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가. 결국 같은 일상 속 연장인데 말이다.

 

 

 

#외삼촌과의 이별 연습



2022년 2월 24일, 9월 4일, 11월 1일, 11월 24일, 그리고 영상통화.

 

올해 들어 외삼촌과 만났던 네 번, 아니 그 이상의 만남은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었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나누었다. 직장생활과 두 차례의 국가자격시험 준비를 병행하면서도 나는 외삼촌을 뵈러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평생 고되고 외로운 삶을 살아낸 그 마음. 허락된 시간이라도 밝음으로 채워 드리고 싶었기에 웃는 얼굴만 보여드리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그 전에 실컷 원없이 울었다. 그래서 만남의 끝마다 외삼촌의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며 기쁨으로 헤어질 수 있었다. 나는 외삼촌을 만날 때마다 물리적으로 조금씩 멀어짐을 느꼈지만, 오히려 마음만은 서로가 더욱 깊이 가까워지며 애틋함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올해 네 번, 아니 그 이상의 만남은 또한 소중하고 내겐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

 

 

 

#외삼촌과의 이별


 

이제 해가 뜨면 춘천으로 다시 향한다. 외삼촌께 간다. 나는 이번에도 여전히 웃으면서 보내 드릴 것이다. “초등학생이었던 조카가 이제 어른이 되어 외삼촌 앞에 섰습니다. 살아 생전 외삼촌께 약속 드린 바를 꼭 지키겠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 여전히 많이 사랑합니다.”

 

바람 쐴 겸 춘천에 놀러 오라는 외삼촌의 목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길 가의 단풍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 여전히 아른 거린다.

 

그렇게 바람 쐴 겸 이세상 머물다 간 인생, 나의 외삼촌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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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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