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가 말하는 난민의 삶.
글 입력 2022.11.27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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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의미는 무엇일까. 집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가장 보편적인 공간의 형태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에게는 삶을 영위하면서 유일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산’이나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집이 어떤 의미냐고?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어딘가로 이동하지 않고 머물러도 된다는 느낌. 임시적이지 않은 곳 같아.” 오늘 소개할 영화의 주인공인 아민은 집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으로 살아왔던 아민의 과거를 인터뷰하는 애니메이션 형식의 다큐멘터리다. 긴 시간 동안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었던 그가 평생 바라온 공간인 집의 의미는 임시적이지 않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영화는 자신을 물리적으로 보호해 주고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줄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평생을 고군분투해야 했던 그의 과거를 조명하며 우리에게 집의 의미를 묻는다.

 

 

 

‘진짜 나’의 모습을 모두에게 숨긴 채 침묵해야 했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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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의

내용 및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989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세계의 정세가 불안정하던 상황. 미군이 소련군에 대항하는 아프간 무장 조직인 무자헤딘에게 무기를 지원하면서, 무자헤딘의 공격과 아프간 내전 상황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무장 조직이 도시와 마을 주변 산에 은신하고 있었기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은 하루빨리 떠나야 했다. 아민과 그의 가족이 카불을 간신히 빠져나오자마자 총탄과 조명탄이 터지고,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연기로 뒤덮였다.


10대 소년 아민은 그렇게 난민이 됐다. 평범한 학생의 삶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거의 매년 거주하는 나라를 옮겨 다녀야 했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그의 큰형 덕분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는 면했지만 그들이 살 곳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는 불법 밀입국뿐이었다.


물론 밀입국하는 과정도 순탄치는 못했다. 밀입국 업자들은 커다란 화물선에 난민들이 탄 컨테이너를 싣고 다른 컨테이너들로 그 주변을 둘러막아 그들이 절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거친 파도가 치는 상황, 좁은 컨테이너 안에 수백 명이 갇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그곳에는 생후 8개월 아이도 있었다. 상황은 실제 영상이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묘사됐지만 끔찍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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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은 여러 번의 밀입국으로 거주국을 옮겨 다녔지만, 그를 사람으로 존중해 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썩어가는 건물에 망명자 수용소를 마련해 그들을 가둬놓거나, 자국민이 아닌 것 같은 이들에게 수시로 다가가 합법 서류가 없으면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부패 경찰도 흔했다.


어떤 공동체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연약한 개인은 전쟁과 역사 앞에서 속수무책인 존재로 전락했다. 수많은 이들이 외부의 끊임없는 갈등, 폭력, 억압으로 인해 보편적이고 당연히 가져야 할 공간이어야 하는 집을 잃게 된 것이다.


자신을 지켜줄 물리적 정착지가 부재했기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심리적 안식처가 존재할 리 만무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거주지를 계속 옮겨 다니다 보니, 아민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말할 오랜 친구 하나조차 없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아민. 그러나 그가 살던 당시 아프간에서 게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그의 가족에게 수치가 되는 일이었다. 친구, 가족 그 누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의 마음은 썩어 문드러져 갔다.


사람이 정체성을 확립해가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 아민은 어디에서도 ‘진짜 아민’일 수 없었다. 밀입국을 위해서는 자신의 국적과 정체를 밝히지 않아야 했고,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게는 성적 지향에 대해 거짓으로 이야기해야 했다.


외부인에게는 본인, 가족, 살아온 환경을 모두 숨겨야 했고, 가족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것이다. 한순간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없었던 아민은 전쟁으로부터만 도망쳐야 했던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비밀로 하며 ‘나’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그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정착할 수 없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 곁을 지켜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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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덴마크로 밀입국하게 되던 날, 우연히 같은 차에 탄 한 소년이 아민의 닫힌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리게 한다. 두 소년은 잠시 동안이지만 같은 테이프로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된다.


아민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고 두렵지 않은 상대를 만난 것이다. 당장 의지할 곳이 아무 데도 없었던 그들에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서로는 위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공항에서 헤어졌지만, 아민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소년으로 인해 아민은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과, 성적 지향 및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덴마크에서 홀로 살아가던 아민은 오랜 후에야 스톡홀름에서 큰형과 누나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재회했다는 사실에 기뻤지만, 계속해서 왜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냐고 묻는 형 때문에 그는 다시 혼란과 괴로움에 휩싸였다.


아민은 동성애를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족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성적 지향을 치료할 수 있는 증세이자 병이라고 여기며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평생 동안 정체성을 숨기고, 억누르고, 억압해왔던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가족이 자신을 멀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도 이제는 말해야 했다. 그렇게 그는 가족에게 동성애자라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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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듣고 표정을 굳힌 형이 그의 손을 끌고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성소수자 클럽이었다. 클럽의 문 앞에서 형은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아민을 껴안는다. 형의 포옹은 ‘그동안 괴롭고 혼란스러웠냐’고 물으면서, ‘이제는 어디서도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클럽에 들어가게 된 아민. 드래그 퀸, 이성애자, 양성애자, 게이, 레즈비언 등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이들이 모여 자유롭게 놀고 있는 모습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던 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 순간만큼은 그의 얼굴에 어떤 걱정이나 불안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인지, 아니면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처음 만나 느끼는 설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너무나도 행복하고 평온해 보였다. 가족을 만나 정착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그는 마침내 집에 도착한 듯했다.


이후, 아민은 쉴 새 없이 공부하고 일하며 코펜하겐의 성공한 학자로 살아가게 된다. 사랑하는 애인 캐스퍼를 만나 결혼하고 집도 마련해서 마침내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한 아민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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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치 25년의 시간 동안 그는 방황하는 삶을 살아왔다. 폭력과 억압 속에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며, 스스로의 모습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고통의 시간을 견뎠다. 난민으로 살아왔기에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었지만,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에게 진정한 집은 그의 가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가 처음 카불을 떠날 때, 이국에 정착하기 위해 거처지를 옮겨 다닐 때, 성적 지향을 고백했을 때, 그리고 마침내 집을 마련할 때까지 그의 곁에는 항상 가족이 있었다.


우리를 외부로부터 지켜주는 집이란, 결국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정체성을 찾아가고 자립하는 힘든 과정 속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 같은 존재가 집이라면, 항상 우리의 안정과 평화와 행복을 바라주는 이들이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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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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