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재밌는게 이렇게 많은 데도요? – 책은 시작이다

글 입력 2022.11.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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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게 너무 많다. 거리와 브랜드에서 각종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작은 핸드폰 하나로 누릴 수 있는 것이 가득하다. 넷플릭스 첫 화면에서 볼게 너무 많아 고르지도 못하고 예고편만 30분째 보다가 그냥 꺼버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디즈니 플러스, 왓챠, 웨이브 등등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OTT 플랫폼이 한두개가 아니고 유튜브에서도 알고리즘이 취향에 맞춰 추천해주는 콘텐츠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책이라니. 이렇게 콘텐츠가 다각화되고 보고 누릴 것이 많은 이 시기에 책은 너무 구식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책 속의 내용을 조금만 살펴보자.

 


좋은 책이란, 그 안에 ‘좋은 시간’이 담긴 책입니다. 독서라는 행위가 우리에게 남겨 주는 것은 책이 갖고 있는 그 ‘좋은 시간’의 감각입니다. 책이 있는 생활, 책이 있는 풍경에서 정취를 느끼는 감각이 우리에게서 사라지면, 사회의 체온이 식어 버립니다. - 11쪽

 


책을 읽는다는 것이 새로운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법을 발견하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독서는 그저 정보수집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 무언가를 불러오는 것, 그런 독서의 ‘필요’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 100쪽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잘 표현한 문장들이다. 그러나 ‘책이 있는 삶’과 책이 없는 삶‘에 대한 단순 비교를 한다면 위와 같은 내용이 충분히 유효하겠으나, 저 자리에 다른 말을 넣어보면 어떨까. 문화생활이라든지, 콘텐츠라든지, 미술이라든지, 영화라든지, 웹툰 같은 것이라도. 책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좀 더 어울리는 문장이 있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큰 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저 자리에 드라마나 게임이 들어가 있으면 더 동의가 될지도 모른다.

 

책에 대한 대체제가 너무 많은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대체제’라는 말 대신 더 재미있고 흥미를 끄는 것들이라고 하면 책에 대한 지나친 저평가가 될까. 우리가 ‘책’이라고 부르는, 활자를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전달방식과 표현방식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그것이 대중들에게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책에 대한 사유를 나누는 이 책도 꽤나 오래전에 세상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책의 마지막 장 감사인사가 2001년 5월에 적힌 것이니 이미 20년이 넘은 셈이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문화생활과 콘텐츠가 겪어온 변화들을 상상하면 의문이 생긴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여전히 유효한가 하고.


재밌는 점은 이 책이 번역되어 출판사 ‘시와서’에서 1쇄를 찍은 날짜가 2022년 11월 15일이라는 것이다. 번역이라는 작업이, 책을 펴낸다는 일이 분명 쉽지 않을텐데 왜 이 책은 20년의 세월을 건너 변화한 시대에서도 다시 한 번 낯선 언어로 번역되어 세상에 나오게 됐을까. 왜 다시 책일까. 왜 책은 시작일까.


왜인지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다. 비록 20년 전의 기록이라고는 해도 작가 오사다 히로시의 책에 대한 사유는 깊이 있는 것이여서 책을 읽는 행위에 대한 사유, 말의 중요성과 활자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매체에 대한 통찰은 단순히 ‘책은 좋은 것이니까 읽어야해’ 라는 허울 좋은 조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앞에서 책의 많은 내용이 ‘책’이 아니라 ‘문화생활’이나 2000년대 이후에 새로 등장 또는 부흥한 다양한 콘텐츠 영역을 가지고 생각해도 적용이 가능한 내용이라고 말했으나 그조차도 어떤 관점에서는 크나큰 장점이다. 우리 삶에서 주로 향유되는 문화의 형식과 양상이 빠르게 바뀌어나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 근본적인 가치들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그 중에서도 책만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었다. 책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보이는 세상에서 여전히 책이 가지고 있는 독점적 위치는 어디일까 고민해보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찾은 문장들의 일부를 공유한다.

 


정보는 역설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보는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가진 시간은 풍부해지기는커녕 거꾸로 점점 줄어드는 듯한 역설적인 결과를 종종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의 양은 변함이 없는데 정보만 비약적으로 늘어나면, 어쩔 도리 없이 줄어드는 쪽은 시간입니다. 채워지면 채워질수록 다른 아무것도 넣을 수 없게 되고 여유가 없어지는 것이 하루라는 시간입니다. - 122쪽

 

 

음악이나 영상은 듣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다시 말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제멋대로 시간이 흘러갑니다. 하지만 책의 시간은 스스로 읽지 않으면 흘러가 주지 않습니다. 음악은 내내 틀어 놓아도, TV는 내내 켜 놓아도, 나와는 상관없이 끝날 때가 되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책은 아무리 내내 펼쳐 놓는다 한들, 언제까지나 펼쳐진 그대로 나아가지도 끝나지도 않습니다. 책은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렇든 책이란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매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과 제대로 마주하려면, 결국 자신의 시간 사용법이라는 문제와 직결하게 됩니다. - 123쪽

 


예컨대 독서는 시간을 능동적으로 쓰는 행위, 의도적으로 자신의 시간을 쓰는 행위라는 것. 이 역시 영상을 TV에서 나오는대로 시청하던 시기를 지나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때에 선택하고 돌려보고 배속으로 볼 수도 있는 선택권을 가진 지금에는 다른 콘텐츠에도 적용될 수 있겠으나 책에는 능동성이 조금 더 요구된다. 정해진 흐름에 맞춰 보여주는 작품의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읽어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가 끊임없이 몰려드는 현대사회에서 독서하는 행위로써의 시간은 정보를 얻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사용하는 의도성의 관점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책을 읽느냐의 문제만큼이나 삶에 책을 가까이하려고 노력하는지, 적은 양이라도 독서라는 행위에 내가 시간을 주고 있는지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저자가 책의 가장 앞 장에서 언급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책이라는 것은 ‘책이라는 사고방식’입니다. 책은 단지 ‘생각’을 담는 그릇이나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은 ‘책이라는 사고방식’을 나타낸다는 것.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이 ‘책이라는 사고방식’을 만들어왔다는 것.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 속의 내용이나 생각을 검색하고 요약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을 통해, 책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 7쪽

 

 


그리고 이 말은 출판사에서 책 소개와 홍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문장과도 이어질 것이다.

 


“모든 것은 독서에서 시작됩니다. 책을 읽는 것이 독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잃고 싶지 않은 말을 쌓아두는 곳을 만들어내는 것이 독서입니다.“

 


그럼 나로써는 한가지 질문이 더 생긴다. 책은 어떻게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할까.

 


책을 그저 표현의 도구나 미디어 매체로만 여긴다면, 오랜 역사르 거쳐 책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힘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한 인간이 되어 버립니다. - 24쪽

 


책이란 가장 단순한 매체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만들어진 매체입니다. 독서란 그런 한 권의 책이 가지고 있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 46쪽

 


책이라는 문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키워 온 것은 책에 쓰여 있는 것을 통해 책에 쓰여 있지 않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힘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쓰여있지 않은 것을 필요로 하는 생각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우리는 어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입니다. - 22쪽

 


우리가 책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책은 단순한 매체가 아니다. 예컨대, 책이 가장 오래된 매체로써 역사를 품고있는 아카이브로의 역할을 한다는 것. 그래서 책을 점점 읽지 않는 사회가 되고 책을 대체할 수 있을만한 혹은 책보다 발전된 매체와 콘텐츠들이 계속해서 등장해도 책은 그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는 건 책을 기반으로 분화하여 다양한 표현방식과 삶의 문화가 등장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역설적으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지난 책들이 여전히 다시 읽히고 있는 것은 다른 매체가 따라올 수 없는 길고 탄탄한 역사를 가진 책의 가치와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되는 원천소스로의 가능성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책은 시작’인 것이다.

 


이제는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자꾸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책은 읽히지 않음으로써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도서관이라고 하는, 읽히지 않는 책을 소중히 간직하는 공간이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장소가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2천 년, 3천 년을 살아온 책이라고 하는 매체가 없으면 소프트웨어를 충분히 담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책의 세계에는 사회의 하드웨어를 눈부시게 발전시켜온 다양한 기술도 해내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편리한 기술은 경험의 생략을 가져다주었지만, 그로 인해 오로지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들 사이에는 사회적 공백이 생겨 버렸습니다.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틀림없이 책의 세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54쪽

 

 

 

출판사 책 소개


 

책은 무엇보다 오래, 무엇보다 깊이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 책이라는 매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정한, 모든 것을 포용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책은 우리를 고독하게 만들지 않는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물론, 책 읽기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에게도 따뜻하게 다가가는 ‘인간과 책’을 탐구하는 독서 에세이.


책이란 무엇이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독서가 사람의 인생에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서점에는 책이 넘쳐나고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책을 내는 것까지도 어렵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현대 사회를 ‘활자 이탈’, ‘책맹’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저기 활자가 넘쳐나고, 책이 아니어도 필요한 정보를 온갖 채널에서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더 이상 책의 시대가 아니라는 말까지 들려온다. 그런 시대에 굳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천 년의 시간을 인간과 함께해온 책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고 의미일까?


이 책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한다는 식의 독서에 대한 지침서가 아니다. 독서라고 하는 인간의 행위를 깊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생론이기도 하고, ‘책’이라는 관점에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독특한 문화론이기도 하다. 말과 인간의 관계, 책의 세계, 책의 문화, 책과 사람 사이에서 생겨나는 소중한 것, 읽지 않는 책의 소중함과 가치, 독서를 위한 하드웨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 어린이책의 힘, 도서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런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책의 모습을 통해, 그저 자신의 생각을 담기 위한 미디어의 한 형태로 생각하기 쉬운 책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얼핏 비슷해 보이는 책 읽기와 정보 수집의 근본적인 차이를 통해, 말과 책을 단지 표현의 도구로 여기는 기존의 상식과 개념을 파괴하고, ‘나눔’과 ‘키움’과 ‘축적’이라고 하는 독특한 문화 유형론을 펼치며 현대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책은 억지로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일상에서 책과 함께 보내는 풍요로운 시간을 잊어서는 안된다. 책과 기억, 기억과 인생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지금,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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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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