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요정은 떠돌이의 모습으로 - 영화 '요정'

글 입력 2022.11.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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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은 기적이 필요한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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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을 받겠다, 대통령이 되겠다,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겠다. 큰 꿈을 가지고 있던 어린이는 시간이 흘러 작은 기적이 간절한 어른이 된다. 이번 프로젝트를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이번 시험에 통과할 수 있기를, 그 사람에게 답장을 받기를. 과거의 그 어린이가 본다면 실망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 하루 무사히 넘기는 것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영화 <요정>의 영란과 호철도 작은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평범한 동네에서 작은 개인 카페를 하던 두 사람은 같은 지역 동종 업계 사람이라는 이유로 친해지고 부부가 된다. 둘 다 사장님이라고 불리지만 알바생 한 명 없는 이들의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집을 합친 둘은 가게도 그냥 합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려면 둘 중 더 장사가 잘되는 가게로 합치는 게 합리적인 법. 영란의 가게가 좀 더 잘되긴 하지만 차이는 미미하다. 둘 사이에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는 음주운전 중 그들의 차에 부딪친 한 청년을 집에 데려오게 된다. 깨어난 청년은 경찰에 말하지 않을 테니 임시로 자신이 지낼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때부터 ‘석’이라는 이름만 알려줬을 뿐, 사는 곳도 나이도 어떤 사정이 있는지도 말하지 않는 이 이상한 존재와 부부가 함께하는 생활이 시작된다.


신기한 점은 석이 호철의 카페 일을 도와주면서부터 갑자기 호철의 카페가 붐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냥 우연인 걸까 아니면 석이에게 진짜 뭔가가 있는 걸까. 석이와 가게 매출을 두고 부부의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진다.

 

 

 

함께 있어도 외로워지는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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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부부의 신경전은 단순히 어느 카페가 더 잘되느냐를 놓고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며 둘 사이의 갈등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영란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엄마와 다름없는 언니가 있는데, 결혼 후에도 언니의 말에 휘둘린다. 돈을 빌려달라는 언니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할 때도 있다. 호철은 그런 영란이 답답하고, 영란은 은근히 언니네를 우습게 생각하는 호철에게 불만이 있다. 한편, 호철은 전처와 딸이 있다. 이혼 후 연락을 끊다시피 하고 살았지만 호철이 오랜만에 건 전화에 전처가 호의적으로 응하며 영란과 갈등을 빚는다.


좋아서 함께 살기로 한 사람인데, 함께하는 건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걸까. 영란과 호철은 분명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타이밍이 자꾸 어긋난다. 마음과 다르게 나오는 말과, 또 그 말을 듣고 오해하는 상대방. 제3자가 볼 때는 별것도 아닌 걸로 싸운다 싶지만 사실 이 세상 대부분의 갈등은 그런 모습이다. 재벌가에서나 일어나는 거액의 유산 상속 싸움도, 막장 드라마 속 치정 싸움도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카페의 매출이 잘 나오면 기분이 좋고, 다음날 손님이 줄면 침울해진다. 반려인과 마시는 막걸리 한 잔에 웃고, 또 그 반려인이 던지는 냉정한 말 한마디에 속이 상한다. 하루하루 계속되는 일상, 영화를 보는 대다수의 관객이 사는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을 삶의 풍경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현실적인 마법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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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을 앞두고 진행된 무대 인사에서 배우 중 한 명이 <요정>은 춥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한, ‘눈’ 같은 영화라고 말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영화에 나오는 영란과 호철이 꿈꾸는 것이 대단한 기적이 아니라 하루 치의 평온, 어제보다 나은 가게 매출이라는 것은 어쩐지 씁쓸하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지금과 다른 삶을 꿈꿔 보기도 하지만 결국 이들이 돌아올 곳은 서로가 있는 작은 집의 거실뿐.


하지만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두 사람은 그 평범한 삶에 분노해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거나 아예 주저앉기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몫의 행복을 찾는다. 그렇다고 갑자기 영란과 호철의 삶에 굴러 들어온 석이 대단한 마법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몇몇 사건으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이들은 한 사람의 카페를 접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곳에서 함께 카페를 운영하기로 결심한다. 석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작은 기적을 보여줬을 뿐이다.


이제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일까. 석은 왔을 때처럼 훌쩍 부부를 떠난다. 그의 존재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는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곳곳에 조용히 자리한 사소한 기적은 늘 석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떠돌이의 모습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꽉 붙잡으려 하면 사라져 버리지만, 가만히 있으면 어느 순간 곁에 잠깐 머무는.

 

영란과 호철의 작은 기적을 보며 나도 지금의 삶을 잘 살아내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다 보면 ‘석’과 같은 작고 엉뚱한 요정 같은 존재가 우리의 삶에도 굴러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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