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인만이 시를 쓸 수 있다면 [영화]

이창동, <시>(2021)
글 입력 2022.11.2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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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난해한 문학 장르를 꼽으라면 단연코 시다.

 

너른 백지에 단 몇 줄. 쓴 것보다 쓰지 않은 것이 많으므로, 여백의 힘으로 여백을 채우며 나아가는 시는 그 태생부터 난해하다. 시 읽기란 난해함을 견뎌내는 일이고,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겨우 여백을 채우는 일이며, 읽기에 성공한 이마저 결국엔 그 정확함을 의심하게 되고 마는 일.


대체로 시가 제련한 창은 뚫을 마음이 없고 시가 주조한 방패는 막을 마음이 없다. 그런 모순과 여백의 문학이 시라면, 그래서 시를 읽는 일마저 그토록 자주 실패한다면, 시를 쓰는 것은 대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시에 대한 좋은 영화 한 편을 통해서 조심히 반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본다.


양미자(윤정희)는 꽃이다. 철없는 중학생 손자 종욱(이다윗)과 단둘이 낡은 아파트에 살며 국가보조금을 타서 생활하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늘 화사하다. 밝고 쾌활한 성격은 물론 병원에 갈 때마저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는 그녀는 분명 꽃을 닮았다.

 

얼마나 많은 시에서 꽃을 노래했던가. 그녀는 꽃이다. 꽃이 시에 이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양미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 꿈이었던 시를 쓰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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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보는 일.

 

시인 김용탁(김용택)의 문학강좌를 듣게 된 양미자는 그의 말을 따라 “진짜로 보는” 일에 몰두한다. 집 안에 쌓인 설거지부터 집 앞 나무에서 자라난 잎사귀의 흔들림까지 관찰하지만 도무지 시상을 찾을 수 없어 고민하던 어느 날, 그녀의 일상으로 불행한 시상이 될 사건이 찾아온다.

 

손자 종욱이 친구들과 함께 여중생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했고, 결국 그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이 드러난 것. 외면할 수 없이 육박한 거대한 비극 앞에서, 양미자의 시는 여백을 채우기 시작할 테다.


사죄와 반성은 없고 대책만 오가는 자리. 가해 학생 부모들의 모임에서 불편함을 느낀 양미자는 차라리 바깥에 나가 꽃을 관찰한다. 그녀는 피해자 희진(한수진)의 위령미사에 참석해서도 죽음과 애도의 순리를 견디지 못하며 희진의 사진을 훔쳐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그녀 자신의 말마따나 “꽃도 좋아하고” 가끔 “이상한 소리도 잘하”는 사람이 시인일 것이므로, 시를 쓰려는 양미자는 삶과 죽음의 그 냉철한 정상성을 견디지 못한다. 공간의 의도에서 떨어져나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양미자를 통해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를 쓰는 자는 기꺼이 이상해야 한다고. 그래야 겨우 시에 다가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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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양미자가 사랑하는 대상은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제일 좋은” 가해자 종욱이기에, 시를 쓰기 이전에 그녀는 손자를 구하려 노력한다. 이 죄스러운 비호의 과정에서,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양미자의 시는 천천히 다음 단계로 올라선다. 시의 대상이 되어 철저히 감각하는 일.

 

자신이 돌보는 고용주 노인(김희라)과 위력에 의한 성관계에 가까운 행위를 (스스로) 함으로써 양미자는 마침내 피해자 희진이 되어 본다. 그렇게 확장된 감각으로 양미자는 드디어 시를 탈고한다. 아녜스―희진의 노래를.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 씨밖에 없네요.”

 

시를 쓴 사람은 양미자뿐이므로, 양미자만이 시인이 됐으니, 양미자는 이제 시인의 너머로 이동한다. 시인에서 대속자로.

 

양미자는 면죄 대신 스스로 대속하는 길을 선택한다. (이 영화에서 윤리적 대속은 법리적 단죄와 명확히 구분 지어진다. 종욱과 가해자 일당은 경찰(법리)에 의해 어떤 처벌을 받게 될 것이므로.)

 

모든 것을 짊어지고, 아녜스에게 “차마 부치지 못한”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는 사라진다. 시인만 시를 쓸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시인이 되어서야 쓸 수 있는 시가 있다.

 

그렇게 쓰인 시는 분명 이상하고 참담하고 그래서 아름다울 것이라는 말을, 이 영화는 시처럼 여백으로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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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승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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