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묶이지 않는 울음이 뛰어다닌다 [음악]

이고도의 [Knife(나이프)]
글 입력 2022.11.2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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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놓지 못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낮은 덥고 밤은 추운 이 날씨에 어울리는 웃옷을 고르느라 아침이 자꾸만 무거워진다.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적당한 두께의 패딩. 차가웠다 뜨거워지는 오늘의 음료. 가을의 쓸쓸함과 연말의 포근함이 공존하는 매장들. 온갖 애매하고도 적당한 것들이 눈에 띈다.

그래서인가, 이 애매한 날씨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내가 자꾸 비친다. 퍽 슬프지도 퍽 행복하지도 않은 표정을 머금은 채 두 계절 사이를 엉거주춤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적당함과 애매함 사이를 배회하는 자는 자신의 동료를 단번에 알아보는 법이다. 고독을 애매하게 동경하는 바람에, 여전히 혼자일 테지만 동시에 같이 걸어주는 동반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뜻하지만 서늘한, 그러나 금방 또 따뜻해지고 마는 이 계절의 마음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동료 한 명을 소개하려 한다. 그 혹은 그것은 여전히 테두리만 훑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대해 변명 없는 걸음으로 지금도 성실히 걸어가고 있다.
 
 
*필자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고도-[Knife(나이프)] 앨범 소개글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이고도-[Knife(나이프)]

 

[크기변환]8253047.jpg
이고도 Knife(나이프)_melon

 

 
앨범 소개 - [Knife(나이프)]
 
꿈은 자주 흔들리며 미끄러질 뿐이다. 바짝 엎드린 낮과 밤 앞에 낮은 포복으로 나아가려는 노래가 있다. 불행에 저항하는 꿈을 꾼다.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이다. 의지는 꿈의 어디까지 손을 뻗을 수 있나요. 하루의 꿈이 타올랐다. 빠르게 저문다.
 
가끔은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노래처럼 들렸다. 유리벽을 모르고 날아드는 날벌레처럼 아는지 모르는지 마음들이 하루 살고 죽어 수북이 시체처럼 쌓였다. 내일 우리는 다른 마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제 죽었던 마음 위에 다시 놓일 것이다. 눈 밑의 점에서 알 수 없는 노래가 새어 나오고 맥박이 뛰지 않는 글자에서도 노래가 들린다. 커서가 깜빡이는 간격 사이에 묶이지 않는 울음이 뛰어다닌다.
 
 
이고도는 2020년 2월 첫 번째 싱글 ‘겨울밤’으로 대중에게 다가온 싱어송라이터로, ‘계세요’,‘우리 같은 사람들’, ‘폴리나’ 등 솔직한 마음을 담은 노래들을 다수 발표하였으며, 최근, 2022년 10월 23일에 싱글 앨범 knife(나이프)를 선보였다. ‘knife(나이프)’에는 ‘나이프’와 mole(my room) 총 두 곡이 수록되어 있다.

 
 
1. 나이프(Knife)


 
 
아쉬워라 말하지마
비좁은 속에 방을 불릴 때
엉켜 붙은 마음 헤집는 날
괜히 가엾이 여기지 마
마른 가지 위에 핀 허기진 슬픔에
몸을 던져주고 헛된 꿈을 꾸네
잠시 슬쩍인 속을 걷어 살폈더니
등 떠밀려 걷는 서러운 사람처럼
한참 먼 길을 돌아 난 슬피
우우우우
 
- 나이프(Knife) 중
 
 
경쾌한 울음소리를 담은 노래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화자가 꾸는 어떤 꿈을 상상하게 됐는데, 그 꿈은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악몽이다.

화자는 나를 가엾이 여기지 말 것을 얘기하며, 내가 삼킨 슬픔 더미들은 어제의 것이고 내일 나는 시끄러운 소리들 속 웃음을 지으며 다른 마음이 될 거라고 외친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 죽었던 마음 위에 다시 놓이는 법이다. 그렇기에 어제와 오늘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인 그 꿈에서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후렴에서 ‘우우’라는 경쾌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절망 속에서 나이프를 쥐고 날 따라오는 너는 정말 ‘너’라는 타자였다가, 들으면 들을수록 어딘지 낯익은 마음으로 변한다. 나를 쫓아오는 그 무언가는 어쨌든 나로부터 시작된 무언가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나이프는 처음에는 분명 나를 쫓아오는 정체 모를 너의 손에 있었지만, 어언간 내 손으로 옮겨진다. 불행에 저항하려는 마음이자 누군가 나를 쫓아오는 악몽. 그 꿈에서 깨려고, 혹은 괜한 것들이 모인 구슬 같은 꿈을 깨려고, 나는 나이프를 쥐고 휘적거리고 있다. 말미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나 꿈을 깨려고’가 무척 애달프게 들리는 이유다. 꿈을 깨려고 나이프를 쥐고 울며 달리는 나 때문에 더 그 꿈(불행)은 더 아프다.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 너(타자, 마음 혹은 나) 때문에 나의 꿈(그것 또한 나)에 상처를 낸다.

 
 
2. mole(my room)

 

 
 
이 작은 방에
쌓인 미움도
차마 전부
버리지는 못할 거야
이 작은 맘을 빌린
한때 우리도
이 작은 점도 결국
영원하진 못할 거야
You live in a room inside my sadness
my little room
my little room
 
- mole(my room) 중
 
 
귀여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노래다. 갑자기 생긴 점을 모르고 손톱깎이로 떼어내려 했던 경험에서 출발하여, 하나의 점과 같은 나. 그런 점인 나에게 있는 또 하나의 너라는 점. 그 점으로 나와 네가 통하는 길이 열린다는 상상을 풀어내었다.  

내가 지닌 통로를 통해 들어온 마음들이 나의 방에 들어와 살고는 떠나간다. 여기서의 통로, 마음, 방들은 모두 점을 의미하는 것 같다. 내 안에 시작점을 모르고 깊게 이어진 그 점처럼 방은 끝을 모른다. 떠난 후 남겨진 미움도 슬픔도 끝내 버려지지 못하고 짐처럼 쌓이는 점. 그렇게 너는 떠나도, 내 슬픔 속에 들어와 여전히 살고 있다. 

그러나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저 붙어있는 것 같기도 한 점은 잊기 쉬운 마음이 되기도 한다. 점은 한 줌의 재와 같아서 영원할 수도 없다. 그저 잊고 살다가 또 어느새 발견하기도 하는 별것 아닌, 사소한 것이다. 
 
그렇게 우린 시시한 점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슬픔 속의 방에 꾸준히 너를 들인다.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으며 영원하지도 않고 어느 순간에는 있었던 것도 모르게 잊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방(점)을 지니고 산다. 내 몸의 일부이나 사실은 비어있는 방과 같은, 끝을 알 수 없는 방. 어쩌면 누군가 이미 살고 있을지 모르는 방. 사소하고 아주 작은 (). 

그게 바로 우리가 사소하게 사랑하는 것()들이 될 수 있지 있을까 생각한다. 각양각색의 불행 속에서 그럼에도 이 점()들을 발견하며 불행과 공존할 힘을 얻는다. 점 하나 없어도 다를 점 하나 없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서로의 점이 될 것을 결심한다. 
 
이 노래는 나에게 있어 다행스러운 점이며 비어있는 구멍이며, 그러나 누군가 있을지도 모르는 방이며, 너와 나의 통로이고 결국 잊히겠지만 여전히 붙어있는 마음이 된다. 사소하게 사랑하는 것들()의 탄생과 남겨짐이 들린다. 노래 가사에 긍정적이거나 희망찬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자꾸만 사랑으로 읽힌다.

 

 

 

글을 마치며



 
어쩌면 불행을 안고 달리는 우리에게 눈부신 것은 가까이에, 사소하게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해서 우리는 사는 것 같습니다. 
([Knife(나이프)] 앨범 소개 중)
 
 
명확하지 않은 가사는 더 많은 마음을 포용한다. 만드는 정서, 부르는 정서, 듣는 정서가 모두 다르듯, 이고도의 노래에서 내가 들은 것은 내가 만들어낸 마음이고, 또 너가 될 것을 결심하는 마음들이었다.

따뜻한 듯 서늘하지만 그럼에도 온기가 남아있는 이 계절을 담은 노래. 그렇게 노래의 틈을 걸으며 나에게 오고 갔던 것들을 곁에 데려온다. 고독을 애매하게 동경하는 바람에, 여전히 혼자일 테지만 외로움은 어느새 가신다. 이제 묶이지 않는 울음‘들’이 손잡고 함께 뛰어다닌다.
 
 
[박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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