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당신이 속한 곳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 이국에서

‘이국에서’ 익숙함을 경험하는 것
글 입력 2022.11.2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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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에서』는 소설가 이승우가 5년 만에 선보인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겪는 내면 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글은 수사적인 표현이 적고 마치 생각을 글로 옮겨놓은 듯 하나하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 때문에 글을 읽는 동안 숨이 가빠졌다. 그러나 이내 주인공의 상황, 그리고 감정 상태에 집중하게 되었다.


[“마치 새로운 도시의 시민이 되기 위해 저 세계의 기억들을 모두 잠 속에 묻어버려야 하는 규율이라도 지키는 것처럼 그는 자고 또 잤다. … 그는 자기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 날은 흐리거나 화창했다. 그러나 그는 날이 흐린지 화창한지 알지 못했다. 세상은 그의 밖에 있었다. 그는 세상 밖에 있었다.”]


소설 속 황선호는 광역시장의 최측근에서 단 며칠 만에 연고도 없고 알려지지도 않은 낯선 나라로 쫓기듯 도망치게 된다. 선거를 앞두고 뇌물 스캔들이 터질 것을 염려해 캠프에서 그에게 책임질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떠나온 한국과 도착한 보보민주공화국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황선호는 호텔 방 안에 스스로 갇혀 방황한다. 그러던 중 은신한 보보민주공화국에 쿠데타가 발발하고, 그는 혼란한 상황을 헤쳐가기 위해 ‘친구들의 집’이라는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그 속에서 그는 낯선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떠나온 곳과 유사함을 감지한다.


소설은 자신이 속해 있었으나 어떠한 안정감도 주지 않고 타인으로 대한 황선호의 소속 집단과, 익숙하지 않은 곳이지만 묘하게 자신이 있어왔던 곳과 겹쳐 보이는 새로운 장소를 두고 황선호가 느끼는 감정을 차분히 서술한다.


익숙한 곳에서 거부당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버겁다. 황선호 역시 조직에 등 떠밀려 비자발적으로 조직으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에 의해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했다.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을 밀어내고 부정하는 것은 그가 속했던 조직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도피했던, 그러나 끝내 정착하게 될, 보보민주공화국에서도 같은 양상의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마침내 그는 보보민주공화국에 정착한다. 돌아갈 곳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를 거부하면서 보보에 남는다.


황선호의 선택은 동시에 그가 출발점으로 삼는 위치가 변화했음을 의미한다. 그에게는 이제 그를 포용하는 ‘친구들의 집’이 고향이고, 집이다.

 

누구나 마음 둘 곳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기억 속의 고향일 수도 있고, 지금 위치한 장소일 수도 있다. 어떤 곳이건 간에 그곳은 스스로가 자기다울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살 수 없어 떠났지만 이 친구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떠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

 

이승우 -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일식에 대하여] [미궁에 대한 추측]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된 일기] [신중한 사람] [모르는 사람들] [사랑이 한 일],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생의 이면] [그곳이 어디든] [식물들의 사생활] [지상의 노래] [사랑의 생애] [캉탕] 등을 냈다. 대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다수의 작품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홍가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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