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장 따뜻한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여행]

글 입력 2022.11.1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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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집중해 여행의 묘미를 잊어갈 때쯤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올해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어느 곳을 갈지 고민하던 도중, 이때까지 가보지 않은 지역을 가겠다고 결심했다.

 

여러 선택지가 있었고 고민 끝에 목적지를 대구로 정했다. 가보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이 추위를 잠시 벗어나고 싶었다.

 

여름의 대구는 가장 덥다고 알고 있는데 그러면 겨울에 따뜻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무작정 기차표를 끊었고 날이 다가올수록 나의 설렘도 커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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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이란 짧은 기간 동안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찾아다녔다. 호스트 분과 생활을 공유하는 숙소였지만 친척 집 같은 정겨운 분위기와 가벼운 조식제공이 마음에 들어 이곳으로 결정했다. 늦은 밤에 도착해 짐을 풀고 쉬면서 하루를 보냈다. 아침이 되어서야 호스트 분과의 짧은 인사를 나눴다.

 

아침은 9시에 준비될 테니 이따 나와서 식사하면 된다고 하셨다. 시간이 지난 후 의자에 앉아 아침식사를 시작하였다. 그릇에는 따듯한 양송이 수프가 담겨져 있었고 호스트 분은 빵을 굽고 계셨다. 매일 혼자만의 식사시간을 갖다가 누군가의 손길이 담긴 음식을 먹으니 어색하면서도 좋았다. 그리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티브이 소리가 배경소음이 되어주니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잊고 살았던 친근한 냄새가 음식의 맛을 더해주었다. 호스트 분은 갓 구운 빵과 함께 잼을 내어 주셨고 나는 조심스럽게 발라 먹었다.

 

“이거 무슨 잼 인가요? 제가 먹었던 잼 중에 제일 맛있어요!”

 

“귤 잼이에요. 맛있죠? 저도 이걸 좋아해서 큰 걸로 구매했어요”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잼을 맛 보다니. 내가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친절히 상품명을 알려주셔서 이름을 기억해 뒀다가 바로 메모장에 적었다.

 
후식으로 키위를 내주시고 난 후, 나는 조용히 맛을 음미하면서 주방과 거실을 구경했다. 여기저기 붙여 놓은 가족사진들은 이 공간을 친근하게 만들어주었다. 편안한 분위기에 적응해갈 때쯤 나는 호스트 분께 에어비앤비를 하신 지 얼마나 됐는지 여쭤보았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인생에서 힘든 시점을 맞이하여 힘들어할 때 딸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되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잠시 노르웨이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아침마다 따뜻한 토스트와 차를 내어주는 것에 큰 행복을 느꼈고, 나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해서 지금까지 이 일을 이어 오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게스트와의 일화도 들려주셨다. 몇 년 전 곧 출산을 앞둔 외국인 부부가 팔공산에 기도를 하러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서로 말이 안 통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번역기의 힘을 빌려 짧은 소통을 이어 나갔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남편이 직접 요리했고 세탁기가 있었지만 손빨래를 하면서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마음에 감동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 같다는 말에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사랑 이야기라니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이 곳에 방문한 많은 사람들의 온기가 모여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캐모마일 차를 마시고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이곳에서 머문 짧은 시간이 아쉬웠다. 오랜만에 만난 정겨운 분위기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는데 떠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호스트 분께 이곳에 또 방문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고 언제든 오면 환영이라는 환한 웃음으로 답을 받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숙소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생각했지만, 때로는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듣는 게 여행의 묘미라고 느꼈다.

 
결국 여행이란 사람 사는 곳에 방문하는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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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감상을 좋아하는 나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전시를 보러 가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마침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는 청년 예술 작품 전시를 열고 있어서 먼저 그곳으로 향하였다. 가는 버스 안에서의 나의 배경음악은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음악이었다. 평소 자주 듣던 곡을 들으며 낯선 도시에서의 내 모습을 천천히 적응시켜갔다.

 

하지만 날을 잘못 잡았다는 걸 도착하자마자 알았다. 공사로 인해 휴무한다는 공고를 발견하였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바로 옆에 성당못이 있어 여기라도 구경하고 가야 덜 아쉬울 거 같았다. 

 

그저 발걸음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주말 오전에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서로 이야기를 하며 단풍과 함께 사진 찍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직 끄지 않은 쇼팽의 곡에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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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고 책방을 찾아 들어갔다. LP 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음악은 나의 마음을 간지럽혔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들었던 노래이기에 반갑기도 했고 색다른 공간에서 마주했기에 익숙함이 나를 맞이해줬다.

 

편히 둘러보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이것저것 들춰보았다. 누가 봐도 낡은 책이지만 낙서 하나 없는 것을 보고 소중히 여겼던 어떤 이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이 책들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궁금했다. 

 

내가 보냈던 수많은 책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다른 누군가의 공간에 머무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어디선가 발견하면 반가울 거 같다.

 

 

잠시 길을 잘못 찾아 어느 한 동네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것 또한 여행의 재미라며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기분이 묘했다. 내가 한국 현대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상상했던 동네의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와보는 공간이었지만 오래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치 이곳에 발길이 닿았던 게 운명이라는 듯 신호가 들렸다.

다시 돌아갈 때, 앉아있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나라는 마음에 챙겨온 간식이 고양이의 허기짐을 달래 주었다. 정말 이상했다.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 11월 어느 날, 나의 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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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내 발걸음은 무거웠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이제 추억으로 남겨두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웠다. 미련이 있어야 다시 오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생각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대구의 날씨는 따뜻했기에 가벼운 옷차림이었던 나는 다시 서울의 추위를 맞이하기 위해 두꺼운 외투를 꺼내기 시작했다.

 

매서운 추위가 찾아올 때쯤, 대구에서 보냈던 추억들을 다시 꺼내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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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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