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20세기 이방인들의 얼굴 앞에서 -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글 입력 2022.11.15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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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e on you!”



사리아에서_(박윤정,이상홍).jpeg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마주쳤던 한국인 남녀가 한국에서 등산 중 우연히 다시 만난다.

 

산티아고에서 보낸 각자의 시간을 서로에게 들려주던 이들은 식당에서 만났던 벨기에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큰딸이 한국인이라던 그는 한국인들은 길도 자기 나라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길을 걸으려 하고, 아이도 다른 나라에 보낸다며 말한다. “Shame on you!”

 

shame on you. 부끄러운 줄 알라, 창피한 줄 알라는 의미다. 부끄러움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 부끄러움은 과거의 자신이 벌인 실수나 잘못을 현재의 내가 인식함으로써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는 일 없이 앞만 보고 사는 이에게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Shame on you”를 이해하기 위해 이 연극은 한국과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 서울을 돌아본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모습을 잊으려는 듯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뒤돌아볼 틈 없이 달려왔다. 서울은 한국의 발전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소일 것이다. 케이팝과 케이컬쳐의 성지, 안전하고 깨끗한 최첨단 글로벌 도시, 서울. 하지만 무언가를 돌아본다는 것은 공을 칭찬하는 게 아니라 과를 파헤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개발이나 발전이라는 단어 뒤에 지워지고 밀려난 이들을 이야기한다. 부끄러움을 알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총 다섯 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에피소드는 각각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는 다른 인물의 이야기이면서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개인사와 사회사가 엮이는 골목



해방촌에서4-공연(정나진,백익남).jpg

 

 

지금과 같은 ‘깨끗하고 안전한 최첨단 도시’가 되기까지 서울은 큰 변화를 겪었다. 그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정리정돈이고 진보였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추방이고 삭제였을 것이다. ‘해방촌에서’, ‘노량진-흔적’ 두 에피소드에서는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서울의 한 귀퉁이를 기억의 힘으로 펼친다.

 

어딘가에 살고 있을 법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서울의 역사 투어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편, 연극 제목이기도 한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해외 입양아 이야기를 다룬다. 세 편의 에피소드는 개인사와 사회사가 엮이는 지점을 포착한다.


‘해방촌에서’는 해방촌이 고향인 중년의 남자가 등장해 해방촌에 방을 구하려는 여자를 안내한다. 그의 안내에서 자연스럽게 해방촌의 역사가 드러난다. 해방촌은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한 몇 안 되는 곳이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지 않았기에 구석구석 골목이 그대로 남아 있고, 골목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주택이 자리한다. 다채로운 집에는 그만큼 다양한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남자 역시 오랫동안 세계 곳곳을 떠돌다가 자신의 동성 연인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해방촌이 비교적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동네라면 노량진은 너무 많이 변해서 원래 거기 살았던 사람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동네가 되었다. ‘노량진-흔적’에는 미군기지에 다니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노량진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세 남매가 나온다. 남매의 회상 속에서 1970년대 서울의 풍경과 당시 사회상이 펼쳐진다. 이제 노량진에는 깨끗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예전의 골목들을 찾을 수 없다. 동네 한편에는 고시원과 공무원 시험을 비롯해 각종 국가고시 학원이 즐비하다.


해방촌, 노량진을 지나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연극 연습실을 배경으로, 연극 연습을 한다는 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된 욘의 부고 소식을 아는 상태에서 배우와 연출은 그의 삶을 연극으로 만든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 욘이라는 인물의 행적을 좇으며 피상적으로 그려지는 해외입양의 모습 대신 다양한 당사자의 입장을 살핀다. 해외입양이 국가적 차원의 문제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 처한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대찌개에 무엇을 넣을까


 

의정부부대찌개_3.jpeg

 


마지막 에피소드 ‘의정부 부대찌개’는 ‘의정부부대찌개아줌마집’의 주인이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되는 날, 제사를 지내러 부대찌개집에 모인 가족의 풍경을 담는다. 이 자리에서 이질적인 인물은 ‘띠하’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어머니와 도망쳤지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오갈 곳이 막막해졌다고. 그런 띠하를 받아준 게 부대찌개집 할머니였다.


이 에피소드는 일명 ‘부대찌개 게임’으로 시작한다. ‘시장에 가면 게임’과 비슷하게 한 사람이 부대찌개에 넣을 재료를 말하면 그다음 사람이 앞사람이 말한 재료를 외우고 거기에 자신이 넣은 재료도 추가해서 말하는 방식이다.

 

게임을 지켜보고 있으면 부대찌개에 생각보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는 것, 다양성 자체가 부대찌개의 정체성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부대찌개의 어원조차도 의견이 분분하다. 예전에 존슨이라는 이름의 미군에게서 재료를 받아 만들어서 ‘존슨탕’이다, 존슨 대통령의 성을 따서 존슨탕이다, 등. 부대찌개를 먹으며 유래와 재료를 따지지 않듯이 부대찌개집 할머니는 부대찌개 장사를 하며 기지촌 여성을 돕고 띠하를 받아줬다.

 

서울은 ‘글로벌 도시’로 불리지만 실제 세계화는 서울이 아니라 전국 각지 농촌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중이라는 말이 있다. 일손이 부족한 곳에 이주노동자가 자리 잡은 지 오래고, 국제결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막연히 이상적인 미래가 아니라 이미 현재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 현재를 어떤 태도와 자세를 맞이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부끄럽다. 골목을 밀고 해외에 입양아를 보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그리는 ‘글로벌’의 이미지에 맞지 않는 것들을 자꾸만 밖으로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앞서 봤던 여러 이방인의 얼굴이 띠하에게 겹쳐 보인다. 하지만 띠하는 이런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하이퐁 남씨’라는 성을 만들어 자신이 시조가 된다. 하이퐁은 어머니의 고향 이름에서 가져왔고, 남씨는 남쪽 나라에서 왔다는 의미다. 가장 혈연 중심적인 행사인 제사에서 띠하가 가족처럼 어울리고 자신의 성을 선포하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 뿌리를 내린 입양아 이야기로 시작했던 연극은 한국에 뿌리를 내린 베트남 여성의 딸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지금까지 20세기의 풍경을 여러 이방인과 주변인을 통해 돌아보았다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모습은 띠하가 예고한다. 이 땅에서 발 딛고 살아갈 띠하의 다짐을 들으며 21세기가 어떤 풍경으로 채워질지 그려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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