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N개의 우물 속에서 찾아낸 길 -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 서메리 작가

글 입력 2022.11.1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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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하게 하나의 우물만 제대로 파라는 말은 2022년에 어울리지 않는다. 될 때까지 하기보다 안 되면 되는 거 하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사이드프로젝트’, ‘N잡러’, ‘크리에이터’ 등 한때는 신조어였지만 이제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들이 세태를 반영한다. 그렇다고 다양한 분야에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N잡러가 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서메리 작가는 5년간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퇴사하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시작해 지금은 N잡러가 되었다.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걸 붙들고 살아가려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N잡러가 되어 있었다고.


그의 책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에는 회사가 없어도, 명함이 없어도, 내가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어도 즐겁게 일하는 N잡러의 이야기가 담겼다. 서메리 작가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N잡러의 조건은 N개의 일에 모두 뛰어난 것이 아니다. 조금 애매해도, 처음 해보는 일에 겁이 나도 일단 한번 조심스레 시작해보는 것. 그렇게 시작한 일이 생각만큼 잘되지 않더라고 낙담하지 않고 또 새로운 우물을 파보는 것이다. 운명 같은 일이 어디 있으랴. 여기저기 찍고 다닌 점을 이으면 길이 된다. 삐뚤빼뚤하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그 길을 만들어가면 된다.

 

 

 

책을 중심으로 일하는 N잡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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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메리라고 합니다. 책을 쓰기도 하고, 번역하기도 하고 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어요. 책에 대한 거의 모든 일을 하는 N잡러 프리랜서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웃음) N잡러라고는 하지만 재능이 넘쳐서가 아니라 한 가지 일만으로는 먹고살기가 부족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건데, 어느새 N잡러가 제 정체성이 되었다는 게 신기해요.

 

 

N잡러답게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실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떤 일을 주로 하고 계신가요?


요즘 메인으로 하는 일은 다음 책 원고 작업과 온라인 클래스 녹화이고요, 중간중간 강연도 하고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기고도 하며 지내고 있어요. 

 

 

이번에 새로 내신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는 첫 책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와 비슷하면서도 좀 더 풍부한 내용이 더해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책을 낼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무엇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를 최근에 다시 읽어보니 N잡러가 연상되는 부분이 보이던데, 당시에는 책을 쓰며 ‘N잡러’라는 키워드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책에는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번역가로서 막 자리를 잡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는 그 이후의 이야기예요. 3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번역가는 제가 가진 다양한 직업 중 하나가 되었고 저는 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N잡러라는 정체성을 가지기까지 제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이 이번 책에 담겼습니다. 

 

 

작가님의 영향을 받아 N잡러가 된 지인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저는 오히려 주변 지인들이 회사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면 쉽지 않으니까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편이에요. 일단 회사에 다니면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회사 일과 병행하다가 뭔가 가능성이 생길 때 그 일에 더 집중해도 좋다는 식으로요. 그래서 제 영향으로 퇴사를 한 사람은 없는데, 회사 다니면서 유튜브를 시작했다거나 글을 써서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했다는 분들은 있어요. 절 보면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시니 감사한 일이에요. 


퇴사를 결심하고 제 책을 읽었다가 좀 더 신중하게 준비해야겠다고 다시 마음먹은 독자분들도 꽤 있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보람 있었어요. 저는 취직하는 방법만 배웠지, 퇴사 후 어떻게 살아남을지 아는 바가 없었기에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제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다른 분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퇴사를 결정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거라 생각해요. 저는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자식이 예술을 하겠다는데 조언을 듣고 싶다는 사람에게 예술가가 이렇게 대답해요. 자녀가 예술을 좋아서 하는 건지, 안 하면 안 돼서 하는 건지를 보라고요. 예술을 안 하면 아프고 괴로워서 몸부림을 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는 어차피 말릴 수 없다 하더라고요. 


퇴사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냥 회사 밖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거라면, 회사에 다니면서 그 일을 시도해봐도 좋아요. 그게 아니라 회사 밖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타협 없이 일단 나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절 떠올리면, 어떻게든 남아 보려고 몸부림칠수록 점점 더 힘들어져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N잡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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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메리 작가의 저서들

 

 

N잡러로 다양한 일을 하며 특히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일이 있나요?


책 번역이요.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번역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번역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아요. 가끔 정말 잘 맞는 책을 만날 때면, 이 책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읽으면서 돈까지 받는다니 즐겁고 행복해져요. 

 

 

책 읽는 게 왜 좋으셨는지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냥 책을 읽으면 재밌어서 좋아했어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케이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저는 책을 좋아했던 거죠. 어릴 때는 서점에 가서 제일 글자가 많고 두꺼운 책을 사 읽곤 했어요. 왠지 같은 값이라면 글자가 더 빽빽한 책을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어서요. (웃음) 


하지만 책이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제가 책으로 뭔가를 한다고 했을 때 말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북튜버를 한다고 했을 때도 보는 사람이 몇 없을 거라며 차라리 먹방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N잡러가 되었다는 생각도 해요. 제가 좋아하는 건 책이니까 이걸로 일을 계속하고 싶은데, 책을 쓰거나 번역하는 것만으로 먹고살기는 조금 어려웠으니까요.

 

 

책을 옛날부터 좋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작가님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좋게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저는 균형을 맞춘다기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로 어떻게든 돈을 벌 방법을 꾸역꾸역 만든 편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가 잘하는 일은 사무직에 유리하거든요. 꼼꼼하고, 메일 잘 쓰고, 전화 잘 받고, 계획 잘 짜고, 마감 기한 잘 맞추고. 보통 프리랜서나 N잡러라면 창의적이고 추진력도 강해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부분에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프리랜서 N잡러로 살다 보니 생각지 못하게 제 장점을 발휘할 일이 많아요. 일을 맡을 때 이 일을 누구보다 잘하겠다는 자신은 없지만 마감만은 잘 맞출 자신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마감이 임박했는데 급하게 대타가 필요한 일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덕분에 초반에 자리를 잡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마감을 다 잘 맞추려면 계획이 중요할 것 같은데,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저는 ‘계획 변태’라 할 정도로 계획을 꼼꼼하게 짜는 걸 좋아해요. (웃음) 사무직 경력이 있다 보니 정해진 시간 내에 일을 다 처리하기 위해 분 단위로 일정을 짜야 하는 생활을 5년간 했어요. 그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한번은 출판사 편집자님이 제가 AI처럼 글을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책을 쓸 때면 엑셀 표를 만들어서 이 책은 몇 페이지짜리고, 목차가 몇 개고 한 목차에 몇 꼭지가 들어가고, 한 꼭지 분량은 얼마인지 적어두고 시작하거든요. 심지어 쉴 때도 그래요. 쉬어야지 생각만 하면 자꾸 다른 걸 하게 되어서요. 쉬는 날은 쉬는 것을 목표로 정해 두고 그 계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책 내용 중 싫어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프리랜서 N잡러가 되었다는 대목도 재미있었어요. 요즘도 싫어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하는 동력인지 궁금합니다.


지금도 비슷해요. (웃음) 일을 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굶어 죽는 거거든요. 굶어 죽는 건 싫으니까 일을 하게 돼요. 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할 때도 싫어하는 마음이 기준이 될 때가 많아요. 이렇게 말하면 싫은 일은 아무것도 안 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진짜 싫은 일이 뭔지 스스로 알고 그걸 하지 않기 위해 덜 싫은 일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덜 싫은 일을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됩니다. 

 

 

 

‘N잡 스위치’를 켜고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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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메리 작가가 직접 그린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 일러스트(133쪽)

 

 

책에서 회사 다닐 때에 비하면 불안이 적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불안은 살면서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듯해요.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시나요?


당연히 불안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불안의 양상이 좀 달라요. 예전에 다니던 회사는 나름 안정적이고 연봉도 괜찮은 곳이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제가 벌 수 있는 돈이 딱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는 돈을 늘리려면 재테크를 하는 것밖에 없는데 저는 그런 쪽으로 문외한이라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펀드 수익률이 안 나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무서웠어요. 


지금은 똑같이 돈 생각에 불안해져도 재테크 고민을 하는 대신 새로운 일을 하나 더 시작해볼까 생각하게 돼요. 글을 하나 더 써볼까, 이모티콘을 만들어볼까 하면서요. 저한테는 재테크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것보다 이런 쪽이 훨씬 더 잘 맞아요. 그래서 불안을 느끼는 건 비슷해도 스트레스는 지금이 덜 받습니다. 

     

 

그럼 지금 하고 계신 일 외에 새롭게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모티콘을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또 지금까지는 주로 무형의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면, 앞으로는 무형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유형의 무언가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굿즈 같은 걸 만들어서 판매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사업이 되는 건데,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면 하고 싶으신 일이 정말 많은 듯한데, 원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이런저런 자잘한 흥미는 되게 많았는데 실질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예 안 하는 타입이었어요. 예를 들면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교육받은 적도 없고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으니 낙서만 할 뿐 이걸 활용해볼 생각은 못 했던 거죠. 책을 좋아하는 것도 예전에는 흥미가 아니라 회피라고 생각했어요. 책은 수학 문제집 풀기 싫을 때 읽는 거였거든요. 


프리랜서가 되고 N잡러로 살다 보니 이제는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어요. 예를 들어 요즘 커피에 관심이 생긴다면 좋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반사적으로 ‘이걸로 뭔가 해볼 수 없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한번 생각의 패러다임이 바뀌면 그전으로는 못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제가 특별해서가 아니고, 다른 분들도 이 ‘N잡 스위치’가 켜지면 다 그럴 거예요. 

 

 

작가님의 말을 들어보면 모 드라마의 ‘회사가 전쟁터면 회사 밖은 지옥이다’와 같은 말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의미에서 맞는 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라는 영화에서 어떤 작가가 엄청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천국에 이 음식이 없다면 나는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그 디저트가 없는 천국과 그 디저트가 있는 지옥 중 지옥이 더 나을 수도 있죠.

 

 

작가님은 10년 후, 20년 후 어떤 미래를 꿈꾸나요?


그때 뭘 하고 있을지 짐작이 안 돼요. (웃음) 어쩌면 요리사가 되어 있거나, 학교에 새로 들어가서 뭔가를 공부할 수도 있고. 요가를 엄청 열심히 해서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뭘 할지 전혀 모른다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이 일의 큰 매력입니다. “10년 후에는 이 분야의 대가가 돼 있을 것 같아요.” 같은 답변은 못 하지만, 지금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일을 자유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의외로 회사를 다니고 있을 수도 있겠죠? (웃음)

   

 

어느덧 마지막 질문인데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N잡러를 꿈꾸는 분들이 많을 텐데, 독자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N잡러’에서 N이 정해진 숫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N에는 0도 포함돼 있고 1도 포함돼 있어요. 일하다 보면 어떤 시기에는 하나의 직업에만 완전히 집중할 수도 있고, 아예 일을 쉴 수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했다가 그만두고 다른 걸 해볼 수도 있고, 반대로 중단했던 걸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어요. 


무언가를 하다가 그만둘 때, 누군가는 ‘그럴 줄 알았다’ 할 거예요.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실패한 일도 아니에요. 잘 안되면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오히려 대비를 하게 되기도 하죠. 안돼도 괜찮은 정도로 새로운 걸 시작해봐도 좋아요. N의 숫자는 계속 변한다는 것,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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