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빼어난 연주를 만나다: 박수예 바이올린 리사이틀

글 입력 2022.11.0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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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_최종] 박수예 바이올린 리사이틀.jpg



11월의 첫 금요일은 박수예 바이올린 리사이틀이 열린 날이었다. 실연을 들을 기회를 좀처럼 잡을 수가 없었던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연주를 드디어 실제로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도 기꺼이 기쁘게 보낼 수 있었다. 낭만의 작품들로 무장한 그의 리사이틀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설렐 수밖에 없었다. 박수예가 연주하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유튜브로 듣고 그의 연주가 항상 궁금했기 때문에, 박수예의 리사이틀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11월 4일 리사이틀 무대는 천재일우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음악당에 들어섰더니 이 날 콘서트홀에서도 큰 무대가 있어서 로비가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그 모든 관객들이 다 콘서트홀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박수예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찾은 관객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내가 위치했던 1층 객석은 빼곡하게 들어차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다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연주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그, 라벨을 필두로 브람스와 비에니아프스키에 이르기까지 서유럽과 북유럽 그리고 동유럽을 아우르는 박수예의 낭만 레퍼토리는 이 수많은 관객들이 그의 무대를 찾게 만든 요인이었다. 뛰어난 연주자, 비범한 프로그램의 조합을 마다할 관객이 어디 있을까. 박수예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낭만의 작품들로 무대를 꾸미고자 했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국내에 선보이는 자신의 첫 리사이틀에서 그야말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연주를 선보였다.


 



PROGRAM


E. Grieg / Violin Sonata No.3 in c minor, Op. 45

그리그 /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다단조, Op. 45

I. Allegro molto ed appassionato

II. Allegretto espressivo alla Romanza

III. Allegro animato


M. Ravel / Violin Sonata No.2 in G Major, M.77

라벨 / 바이올린 소나타 제2번 사장조, M.77

I. Allegretto

II. Blues: Moderato

III. Perpetuum mobile: Allegro


INTERMISSION


J. Brahms / Violin Sonata No.3 in d minor, Op.108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라단조, Op.108

I. Allegro

II. Adagio

III. Un poco presto e con sentiment

IV. Presto agitato


H. Wieniawski / Fantaisie brillante on Themes from ‘Faust’, Op.20

비에니아프스키 / ‘파우스트’ 주제에 의한 화려한 환상곡, Op.20

 




이번 박수예 바이올린 리사이틀의 첫 곡은 그리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이었다. 첫 스트로크에서부터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온 시선을 사로잡았다. 힘차게 시작하는 박수예의 선율로 순식간에 공기가 환기되었다. 1악장에서부터 드러나는 그리그의 화려하고도 열정적인 선율은 마치 칼바람 같았던 북유럽의 그 겨울을 기억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그 날카로운 바람처럼, 또 뜨거운 열정처럼 박수예는 시종일관 모든 호흡을 뺏어갔다. 그 엄청난 몰입으로 인해 1악장이 끝난 순간 객석에서 숨길 수 없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2악장은 일리야에 의해 아주 부드럽고 낭만적으로 전개되었다. 아름다운 피아노의 서주로 꿈결 같은 풍성한 소리가 가득 홀을 채웠다. 그 아름다운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선율과 박수예의 선율이 만난 뒤에 노르웨이풍 무곡조가 전개되면서 그리그의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드러났다. 그 속에서도 박수예의 표현은 일관되게 빛났다. 활로 현을 켤 때에도, 손가락으로 현을 튕길 때에도 관객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표현력이 이끄는 몰입감은 아주 강렬했다.


마지막 3악장에서까지,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힘 있는 스트로크로 매순간 시선을 사로잡으며 음을 전개했다. 그래서 마지막 음이 끝나는 순간, 첫 곡이 끝났을 뿐인데도 객석에서 큰 환호성과 함께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그의 낭만과 열정이 박수예의 손끝에서 화려하게 불타올랐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리사이틀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리는 서막이었다.


*


이어지는 두 번째 작품은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이었다. 오묘한 라벨의 작품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그리그의 작품에서와는 또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그리그의 소나타 3번에서는 시종일관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주요했다면, 라벨의 소나타 2번에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 은은하게 하지만 시종일관 드러내는 기교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1악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마치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는 다른 길을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신기한 것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각자의 길을 가는 것 같은데도 그것이 불협화음과 협화음 사이의 앙상블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박수예의 음 컨트롤은 아주 발군이었다. 2악장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처음에 활을 내려놓고 현을 튕기며 시작했다. 그가 다시금 활을 잡고 스트로크를 시작하자 리듬감 있는 선율을 피아노가 받아서 전개되었다. 블루스풍의 2악장은 현장에서 더더욱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마지막에 오묘하게 끝나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말이다.


마지막 3악장에서, 박수예는 시종일관 은은하게 연주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른손 보잉으로 섬세하게 얇은 소리를 내되 수없이 많은 음들을 왼손으로 하나하나 짚어내야만 했던 이 무궁동의 순간, 박수예는 객석의 모든 호흡을 앗아간 것만 같았다. 서서히 고조되어가는 음의 전개 속에서 홀에 자리한 모두가 함께 고양되었고, 불꽃같이 타오르는 마지막 음과 두 연주자의 앙상블 속에서 관객들도 분명 함께 카타르시스를 향해 달려갔다. 첫 곡 못지 않게 다시금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자아내는 멋진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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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이번 박수예의 리사이틀에 세 번째 곡으로 시마노프스키의 작품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목프로덕션의 안내에 따르면, 프로그램 흐름 상 이 작품이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내년 상반기에 시마노프스키의 앨범을 발매할 예정이라 그의 시마노프스키가 궁금했는데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듯했다. 그래서 2부는 브람스와 비에니아프스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시마노프스키가 빠지면서, 브람스의 아름답고도 서글픈 1악장 주제가 2부의 시작을 알리는 선율이 되었다. 라단조로 전개되는, 어딘가 애수어린 가을 같은 감성이 느껴지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 1악장은 쌀쌀해진 요즘과 잘 어우러졌다. 브람스의 감성으로 무장한 박수예의 선율에 무장해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리사이틀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브람스의 2악장이 이어졌다. 우아하고 깊은 선율 가운데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고아하게 더블스토핑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연주하는 순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떤 의미에선 1부의 작품들에 비하면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브람스의 작품이었지만, 그 속에 있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박수예의 손끝으로 생생히 살아서 아름다웠다.


3악장에서 박수예가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와 주고 받는 리듬감 있는 선율은 스케르초 악장의 매력을 다분히 보여주었다. 그 끝에 바로 화려한 피날레가 이어졌다. 마지막 4악장은 1악장에서의 열정을 더욱 강렬하게 발전시키는 악장이어서 박수예의 존재감이 다시금 강렬해지는 순간이었다. 브람스 3번이 연주되는 동안 4악장 이전까지는 절제된 슬픔과 성찰이 주를 이루었다면,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4악장에서 이를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하지만 분명하고 강렬하게 브람스의 세계를 각인시키는 연주였다.


*


이미 앞선 세 곡에서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가 스스로가 바이올린 비르투오소임을 충분히 입증했기에, 사실 비에니아프스키의 작품이 없어도 관객들은 그를 감탄과 함께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미를 장식하는 선곡으로 이 작품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박수예는 기대 이상으로 무대를 마무리해 주었다.


그리그에서 표현력을 보이고 라벨에서는 기교를, 브람스에서는 감성을 선보였던 그는 비에니아프스키에서 이 모두를 아우르면서 빼어난 연주를 선보였다. 다시금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뛰어난 테크닉이 돋보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라벨을 연주하는 순간에 박수예의 음 컨트롤 실력이 탁월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보였다. 그런데 비에니아프스키 작품 속에 녹아있는 초고음을 연주하는 그의 손끝은 주저함이 없었다. 당연히, 연주자가 그만큼 컨트롤에 자신이 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기교와 표현력, 감성과 몰입까지 밸런스를 갖춘 비르투오소라는 것을, 박수예는 마지막 순간까지 관객들에게 확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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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압도적이고도 환상적인 연주에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관객의 성원에 부응하고자,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두 곡의 앵콜곡을 연주해주었다. 그 중 첫 번째 곡은 브람스의 F-A-E 소나타의 3악장 스케르초였다. F-A-E 소나타를 할 것이라면 디트리히나 슈만이 작곡한 악장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박수예가 브람스가 작곡한 3악장을 연주해주어서 너무 좋았다. 리듬감이 살아있고 브람스만의 재치가 녹아 있는 악장에서 박수예는 다시금 강렬하게 좌중을 사로잡았다. 언젠가 그의 브람스 전곡 연주도 듣고 싶어지게 만드는 연주였다.


두 번째 앵콜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멜로디, 작품번호42의 3번이었다. 아름답고 감미로운 선율을 들려주는 박수예에게 다시 한 번 빠져드는 순간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왜 이 곡을 이렇게 짧게 만들어서 박수예의 연주를 이렇게 짤막하게 들을 수밖에 없는 걸까 하는 아쉬움이 들게 만들 정도로, 다정다감한 연주였다. 그가 연주한 이 짧은 바이올린 선율 속에 담긴 위로가 얼마나 컸는지 그 순간에 IBK챔버홀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선명히 기억할 것이다.


*


그야말로 빼어난 연주를 감상한 무대였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웃는 모습이 아직도 앳된 연주자다. 하지만 그가 활을 켜는 순간부터 펼쳐지는 존재감은 그 어느 누구에 비할 수 없도록 확실하고 압도적이었다. 그가 선보이는 낭만의 세계에 속절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왜 그가 유럽의 큰 무대들에 계속 초청을 받고 인터내셔널 음반들을 이렇게도 많이 발매하는지, 이번 리사이틀에서 박수예의 연주를 직접 들어본 사람이라면 굳이 다른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만큼 박수예의 연주는 뛰어났다.


우리나라에만 해도 뛰어난 연주자는 많다. 그러나 뛰어난 연주자라고 해서 반드시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뛰어난 기교와 압도적인 존재감도 중요하지만, 연주자에게는 결국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 무언가의 매력이 연주 속에 녹아있어야만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듯하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는 기교와 존재감, 표현력과 감성을 아우르는 그 설명하기 어려운 흡인력을 가진 연주자였다. 왜 끌리냐고 묻는다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속절없이 끌려가게 만드는 선율을 들려주는 연주자였다.


내년에도 그의 리사이틀이 국내에서 열리면 좋겠다. 낭만으로 리사이틀을 시작한 박수예가 어떻게 자신의 리사이틀 레퍼토리를 선보이는지, 그의 음악 세계는 또 어떻게 넓어지고 깊어졌는지를 상상만 해봐도 놓치고 싶지 않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미래를 더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이 무대로부터, 그가 얼마나 더 성장해나갈지 앞으로도 지켜보고 싶어졌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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