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삶은 계속되어야 하므로 -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도서]

우리의 기쁨과 슬픔은 사는 동안에 계속 될 테니,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하자.
글 입력 2022.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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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어떤 활동에서 우연히 만났던 작가의 첫 모습을 기억한다.

 

필자가 그리던 문인의 느낌이 잔뜩 묻어나는 사람. 물기 어린 반짝이는 두 눈에서 차분하면서도 곧은 심지가 보이는 사람.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기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두른 사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더더욱 가슴 한 켠에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으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욕심과 실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니까. 자기 객관화가 빠른 편이었기에, 업으로서의 글쓰기는 포기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글쓰기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었고, 취미로 즐기며 잘 다듬어보겠다는 다짐을 한 시기에 그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아는 사람 중에서 제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동경의 대상을 만나다니.


그래서 알게 된 이후로 줄곧 글을 읽어 왔다. 다양한 계정에 글을 기고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필자가 하지 못한 것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꾸준함과 아름다운 문장력이 이유였다. 그렇게 필자는 자연스레 '지망생' 김해서의 팬이 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의 문장은 점점 더 깊어졌다. 짧고 간결한 표현 속에서, 깊고 넓은 바다를 느낄 수 있었다. n잡을 뛰는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꾸준히 글을 쓰다니. 책임감도 강한데, 멋있기까지 하면 반칙 아닌가?


그래서 첫 산문집이 나온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기쁘게 반응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 팬이었으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링크를 보내는 대신에 책을 선물할 수 있겠구나. 이 좋은 문장들을 한꺼번에 나눌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기대감을 안은 채로 여름을 보내고, 낙엽이 물드는 가을이 왔다. 마침내 작가의 첫 번째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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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아이디이자, 꾸준히 그가 사용해온 '답장이 없는 삶이라도'는 산문집의 제목이 되었다. 예상하던 바다. 브런치에 같은 이름으로 꾸준히 연재한 글과 산발적인 산문 여러 편, 그리고 추가 작성한 작품들이 드디어 하나의 이름 아래서 기록집으로 탄생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답장이 없는 삶’이라.

 

무언갈 했으면 받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래서 답장이 없는 삶을 생각해 보자면 좀 슬퍼진다. 마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달까. 받기만 하는 게 도리가 아닌 것도 맞으니까. 그렇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고, 답장을 바라는 그 마음도 어쩌면 이기심에서 온 욕심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답장이 없어도 내일은 다시 온다는 것, 그뿐이다. 아침이 밝으면 하루는 늘 그랬듯 바삐 흘러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내야만 하고. 그러나 작가가 말하는 ‘답장이 없는 삶’은 속상함을 느낄 새도 없이 바삐 돌아가는 일정 속에서, 답장을 잊고 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답장이 없더라도, 꾸준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 해야 할 것을 차치해두고서 답장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본래 작가라는 직업은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직업이다. 김해서는 글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만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꾸준히 '쓰는 감각'을 뾰족히 다듬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쓴다. 부단히 세상을 향해, 주변 사람을 향해, 스스로를 향해, 편지를 띄우는 것이다.

 

*

 

본문엔 책 제목에 걸맞은 내용이 가득하다.

 

지금까지 ‘김해서’로 어떻게 걸어왔는지 여러 에피소드를 세 가지 파트로 정리하여 들려준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나누고, 일상에서 지나칠 법한 일들을 아름답고 다정한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며. 어쩌면 우리에겐 이런 글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평범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말이다.


언젠가부터 가난을 도둑질하는 것처럼, 슬픔도 그렇게 소비되고 있음을 느낀다. 어떤 이들은 그 감정들을 소재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다룬다. 그래서 슬픔을 전시하는 것에 요즘 사람들은 지겨움을 느끼는 것 같다. 원래도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인식 때문에 터부시하는 풍조가 있었지만, 요 근래에 더욱 심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필자는 '슬픔'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슬픔을 묻어두기만 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슬픔'을 드러내어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아픈 면을 치유하는 시작이라고 본다.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슬픔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말도 있듯이.

 

그는 심연에 있는 슬픔을 들여다보고 보듬는다. 결국 그 슬픔도 나 자신이므로. 슬픔에 잠겨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결코 그 속으로 잠수하지는 않는다.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용감하게 슬퍼한 다음에, 그걸 끌어 안고서 묵묵히 나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비슷한 슬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페이지마다 자기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슬픔을 덜어두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는 외출을 자주 하는 경기도민이다. 그래서 이동 중에 자주 책을 읽는다. 길고 지루한 이동 시간 내내 핸드폰만 부여잡고 있기도, 음악만 듣기도 심심해서. 그래서 이번에도 자연스레 아르바이트를 가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펼쳤다. 아뿔싸, 뭔가 잘못되었음을 책을 펼친 지 5분도 안 되어서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이 고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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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이 산문집은 한곳에서 진득하니 읽기를 추천한다.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책을 읽다 왈칵 눈물이 나올 뻔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공감 가는 문장을 읽으면 감정의 동요가 찾아오니까. 자꾸만 글에 필자가 비쳐서 슬픔이 마스크 새로 삐져나와 혼났다. 아무튼 이렇게 궁상맞을 때마다, 마스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눈물은 어찌어찌 꾹꾹 눌렀지만, 우습게도 코에서 슬픔이 주르륵 새어 나올 때도 있었으므로. 그렇게 붉어진 눈시울과 함께 슬픔의 일부를 페이지마다 꼭꼭 숨겨둠으로써, 마음속 물기를 짜낼 수 있었다.

 

또한 일상적인 것들을 비일상적으로 만드는 은유적 표현이나, 재밌는 일화와 함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문장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발톱 : 죽은 시간이 퇴적된 흰 삼각지

욕조 : 집으로 들인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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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 조리개가 닫히지 않는 카메라

두려움 : 내가 자고 일어날 때마다 키가 커지는 식물

 

- 우리의 영혼은 모과 한 알의 무게만큼 더 나간다 / p.26~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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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다정함은 반응의 정도이고 섬세함은 행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유야무야 만든 워딩이긴 하지만) '다정' 뒤엔 '수치'가, '섬세' 뒤엔 '능력'이 붙는 것이 자연스럽다.

 

- 다정 수치 섬세 능력 / p. 109

 

 

사실 어느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책 속에는 좋은 문장들이 많다. 그러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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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꾸준함”이라고 대답하겠다. 답장이 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하나로, 꾸준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온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 꾸준함 덕에, '지망생'이던 이가 '작가'로 우뚝 서서 우리에게 글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써온 편지, 그러니까 문장 속 활자를 가만히 들여다 볼수록 그녀의 성숙함이 익어가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꾸준함은 동력, 쉽게 말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꾸준함은 모든 걸 낳을 수 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의지가 있는 것만큼 훌륭한 자산이 또 있을까.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렇게 자기 자신의 자리를 지켜 나가는 것. 슬픔에 잠기지 않는 것. 그저 용감하게 슬퍼하고, 행복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담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그 끝엔 축적된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는 꾸준함으로부터 단단함과 담대함을 얻은 듯하다. 그래서일까. 그의 글은 관조하는 듯이 담담한 어조를 가지고 있다. 슬픔과 기쁨을 고백한다. 마치 독자의 슬픔도 모조리 꿰뚫어 보는 듯하다. 아주 사적인 기록이지만, 읽다 보면 독자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더욱이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삽시간에 동화되고 말 것이다.

 

언젠가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람들은 자기노출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는데, 너는 솔직한 게 매력인 것 같아.” 어른이 되면서, 보다 단단한 페르소나를 뒤집어쓰게 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꾸밈없는 나를 보여주는 일은 위험부담을 안고 행해야 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대다수는 감정을 숨기고, 결국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쪽을 택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어, 상대로 하여금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어려운 것을 거리낌 없이 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산문집은 더더욱 '고작 책 한 권'으로 이야기 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작가의 회복 여정을 담은 문장집인 동시에, 그가 자기 자신으로 우뚝 설 수 있게 해준 시간의 모음집이다. 그리고 책은 독자에게는 위로의 손길이 된다. 그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비롯된 힘과 함께.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정말 친한 친구보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나의 케케묵은 아픔이나 슬픔을 털어놓는 일이 더 쉬울 때 말이다. 한 번 보고 말 관계에서 이 말 저 말을 다하게 되는 그런 경험. 오히려 그런 관계에서 위로받는 생경한 시간.

 

위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다들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곁에서 따뜻한 말을 종일 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진정으로 위로 받았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으니까.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아주 탁월하다. 문장들은 가만히 곁을 내어준다. 독자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있으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 준다. 낯선 이가 건네는 온기같은 느낌으로.

 

슬픔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슬픔을 믿어주면서, 곁에 있어주는 작가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래서 일상이 자주 무너질 때마다, 연고를 바르듯 책을 찾아 읽게 될 것만 같다.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말이다.


차츰 상처가 아물어가는 와중에도, 책 속의 글을 묵묵히 자릴 지키며 손을 내밀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문장은 읽는 사람이 슬픈 사람이던 기쁜 사람이던 상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를 판단하지 않는다. 조금 느리게, 설령 혼자 걷더라도, 내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그저 교감할 뿐.

 

*

 

바야흐로 피로사회다. sns를 켜면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나 이만큼 잘 살아요”하고 전시하는 게시물, 트렌드를 좇기 위해 팔로잉 중인 수많은 인사이트 계정에서 주는 가르침 등 정보가 쏟아진다. 그런 것들에 노출되면서, 우리는 남과 나를 비교하고 하루하루 내가 썩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 내는 데에 온갖 신경이 가있는 듯할 때가 있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같이 사회로 메세지를 보낸다. 자기소개서를 쓰고, sns에 선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외침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보내는 신호에 답이 없더라도 우리의 레이스는 계속되어야 한다. 답이 없으면 좀 어때. 해오고 있는 것들을 우리 자신에게 증명해보이면 된다. 좀 별로여도 괜찮다. 자기 자신만의 매력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꾸준하게 나아가다 보면은, 언젠가 닿을 것이므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 산문집을 읽은 이후에는 더욱 선명해졌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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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짐했다. 작가처럼 주어진 하루를 알뜰살뜰히 살아내 보자고. 습관처럼 글을 쓰고, 다듬고, 밥을 잘 차려 먹고, 자신이 좋아하는 고양이를 언젠가는 키우겠다는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작은 발걸음을 옮기는 것처럼. 꾸준하게 자기 자신으로 걸어가보자는 것과 함께 슬픔에 취해있지 말 것을 말이다.

 

나는 앞으로도 작가가 쓴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누르는 한 명의 팬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닿지 않아도 썩 괜찮을 것 같다. 그가 답장이 없는 글을 꾸준하게 쓰는 것처럼, 내 자리에서 독자로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니까.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의 문장들로 자주 위로 받고 일어설 힘을 얻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명의 독자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신예 작가 김해서에게 무한한 지지와 애정을 보내며 이 편지를 갈무리 해본다.


* 리뷰 속 문장의 일부는 작가의 인스타그램과 보도자료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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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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