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로봇과 인간의 교차로에서 - 연극 ‘윙키’

글 입력 2022.11.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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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돌보도록 프로그래밍 된 가정용 AI로봇 윙키가 있던 집에서 5개월 된 아이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윙키는 경찰서에 구금된다. 로봇에게는 지문도 DNA도 없기에 진실을 밝히는 길은 험난하다. 아이의 돌연사는 누구의 책임일까.


큰새프로젝트의 <윙키>는 로봇이 인간을 돌보는 일이 보편화된 시대를 상상하며 흥미로운 화두를 제시하는 연극이다. <햄버거 먹다가 생각날 이야기>로 2021 서울미래연극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김도영 작가와 장한새 연출 콤비의 세 번째 작품이다.

 

 

 

조물주를 위협하는 피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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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와 닮은 것을 만든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발견되는 인간 형태의 신들은 우리의 한정된 상상력을 보여준다. 과거의 사람들이 사람과 닮았지만 사람을 능가하는 힘을 가진 존재인 신을 만들어낸 것처럼, 오늘날의 사람들은 로봇을 만든다. 그렇게 우리와 닮은 것들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놓고 그 존재가 미래에 우리를 대체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은 꽤 아이러니하다. 피조물로부터 공포를 느끼는 조물주, 그리고 조물주를 위협하는 피조물은 익숙하고도 매혹적인 소재다.


<윙키>의 배경은 사람과의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정용 AI로봇이 가전제품만큼 보편화된 어느 미래다.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로봇이 등장하는 익숙한 디스토피아물 같지만, <윙키>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이 낳은 아기를 거부하는 어머니를 로봇 옆에 나란히 세워 독특한 구도를 만든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여자의 모습은 자신이 만들어낸 로봇을 두려워하는 인간과 절묘하게 겹쳐 보인다.


이 연극에서 가정용 AI로봇 윙키의 도움을 받는 여자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여자는 로봇인데도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윙키를 보며 가정 내에서 엄마이자 아내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기가 차라리 로봇의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만큼 엄마가 되는 것에 거부감이 심하다. 자신의 삶 속에 아기가 포함되었을 때 발생하는 예측할 수 없는 모든 변수가 여자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윙키와 아기 사이에서 여자는 육아를 윙키에게 다 맡기고 ‘돈 버는 로봇’이 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신의 일과 생활보다 아기를 우선시하는 ‘헌신적인 어머니’도 될 수 없어서 분열한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익숙한 갈등은 윙키의 존재로 인해 새로워진다. 연극은 아기를 돌보도록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AI로봇과 아기를 거부하는 어머니의 대비를 끝까지 밀고 나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인간과 로봇이 교차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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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취조실에 있는 윙키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인간 부부와 돌도 안 지난 그들의 아기, 그리고 로봇 윙키까지. 이들의 면면이 점점 드러나며 로봇과 인간 사이 흥미로운 지점이 여럿 생겨난다. 우리가 미래를 그리며 가볍게 해보았을 여러 윤리적 고민이 한 가족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다.


우선 눈에 띄는 질문은 로봇이 돌봄을 인간만큼 수행할 수 있는가이다. 돌봄이 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와 로봇이 가진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는 서로 상충한다. 이런 부분을 의식한 듯, 윙키는 ‘돌봄을 수행하는 로봇’이 주는 거부감을 뛰어난 기술과 외형으로 보완한다.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완벽하게 육아를 해낼 뿐만 아니라 사람과 제법 철학적인 대사를 주고받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피로를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으니, 이상적인 양육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감탄과 동시에 깨닫는 것은 우리가 인간 여자에게 기대했던 모습이 로봇만이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이다.

    

여자는 윙키와 명확히 대조되는 존재다. 그는 분명 피가 흐르는 인간이지만 자신이 낳은 아이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하에 있어야 하는 성격이기에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한다. ‘돌봄을 수행하는 로봇’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혐오하는 어머니, 다정한 남편에게 가혹한 아내일 것이다. 그렇기에 윙키 옆에 선 여자는 윙키가 로봇답지 않은 것만큼이나 인간답지 않은 인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사람을 닮은 로봇과 로봇을 닮은 여자가 여러 차례 교차하면서 로봇과 인간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진다. 두 존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기도 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가진 상대방을 바라본다.

 

 

 

자리에서 이탈하는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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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초반에는 아이가 사망한 원인이 무엇인지, 윙키에게 기계적 결함이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처럼 여겨진다. 관객은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 아이를 미워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여자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한 것일까? 아니면 윙키가 해킹당하거나 그에게 기계적 결함이 생긴 걸까?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보다는 그 일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난 이들의 관계, 그 관계에서 파생되는 여러 쟁점이 연극의 중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사이에서 신뢰는 중요한 문제다.


연극 초반, 환경단체에 기부를 했다는 남자의 말에 윙키가 의아해하자 그는 그 환경단체를 ‘믿기 때문에’ 기부한 것이라 말한다. 그 말처럼 세상의 많은 것들이 기술이나 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지탱된다. 자기 자리를 벗어나려 하는 존재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여자는 윙키가 충분히 로봇 같지 않기 때문에 그를 의심한다. 남편이 자신보다 윙키를 더 가족에 가깝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는 것이다. 한편, 여자는 엄마 같지 않은 엄마이기에 세간의 의심을 산다. 여자가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윙키의 증언은 여자를 아이가 죽은 원인으로 몰아간다. 


그렇지만 이 연극에서 이탈한 존재는 제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다. 결말에 이르러 윙키의 내면에서는 알고리즘이 분리된다. 윙키는 이제 알고리즘의 법칙대로 생각하고 말하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여자는 아내의 자리까지 위협받는다. 가정은 가정의 기능을 잃고 붕괴한다. 뛰어난 기술이 매끈하고 편리한 삶을 보장할 거라는 믿음은 환상이다. 로봇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울퉁불퉁한 지점을 오히려 더 부각한다. 아기를 낳았지만 엄마의 자리는 원치 않은 여자, 프로그래밍대로 말하고 생각하기를 거부한 로봇은 결국 어떤 존재가 되는 걸까. <윙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 채 마무리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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