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선을 넘는 자들이 있다 [공연]

뮤지컬 리뷰 '데스노트' (충무아트센터)
글 입력 2022.10.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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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읽기 전, 참고사항

 

※본 리뷰는 충무아트센터 관극 후 작성하였습니다. 예술의전당 무대연출과 약간의 상이한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추천 페어는 라이토 홍광호 x 엘 김성철 입니다.

※모든 이미지 출처는 od컴퍼니 공식 인스타그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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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자들이 있다.

 

사신 ‘류크’는 인간의 영역인 이승으로 선을 넘고, 인간 ‘라이토’는 정의의 선을 넘어 불의를 저지른다. 선을 넘는 것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최근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데스노트>의 관점 포인트는 단연코 ‘선’이다. 1차원 ‘선’을 이용해 2차원 ‘공간’을 만들고 3차원 ‘입체’까지 구현한다. 어둠으로 깔린 흑지 위에서 ‘선’은 형형색색의 빛을 머금고 모양을 바꿔가며 무대를 그린다. 여기에 다분히 애니틱한 캐릭터를 뛰어난 연기로 소화해 내는 배우들의 열연과 두말할 나위 없는 넘버가 더해진다. 결국, 뮤지컬 <데스노트>는 관객의 마음속으로 가뿐히 선을 넘어 들어온다.

 

 

보이지 않는 ‘선’

 

인간과 사신, 생과 죽음, 정의와 불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순리를 거스르는 순간,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순간, 파멸은 시작된다. <데스노트>는 보이지 선은 넘는 자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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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했던 류크는 위험한 생각을 한다. 데스노트를 인간 세상에 떨구는 일, 류크에게 사소한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열을 맞춰 과자 부스러기를 옮기는 개미때처럼 류크가 내려다보는 인간은 “땅바닥에 달라붙어 꿈틀대는”(넘버/불쌍한 인간) 한낱 개미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인간과 개미 사이에도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듯이, 데스노트를 인간에게 내던진 류크의 장난은 인간계에 엄청난 혼란을 일으키다. 파멸의 시초이자, 먼저 선을 넘은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불완전한 인간이 아닌 신이다. <데스노트>에서 ‘신’은 인간이 경배하는 ‘신’이 아니다. 단지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역할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타(利他)보다는 자리(自利)가 더 익숙한 어리석은 신은 단 한차례의 고민도 없이 이승으로 선을 넘는다.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진 듯, 류크가 던진 데스노트는 비 내리는 밤, 교차로 바닥에 떨어져 있다. 바쁘게 지나가던 군중 사이로 라이토는 데스노트를 발견한다. 그가 그토록 갈구하던 자신만의 정의를 찾는 순간이다. 노트에 이름을 쓰자 40초 뒤 범죄자가 죽었다는 뉴스가 뜬다. 순간 교차로를 건너는 군중들은 일시정지. 조명은 꺼지고 라이토는 허상의 빛을 쫓아 선을 넘는다. “오직 나만 할 수 있어, 새로운 세상의 신이 되리라”(넘버/데스노트) 라이토는 세상이 세운 정의가 애초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이 사신의 일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라이토의 정의는 경계를 넘어 불의가 된다.

 

반대로 사신이 인간의 일에 관여해 파멸을 맞이하기도 한다. 렘은 류크와 달리 인간 미사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앞서 자신의 동료 제라스가 미사를 사랑한 나머지 사신계의 금기를 어기고 허망하게 죽어버린 일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부모를 잃은 미사를 운명은 무척이나 딱하게 여긴 듯 하다. 제라스에 이어 렘 마저도 운명에 홀린 듯 미사를 사랑하게 된다. 렘은 그녀의 불행도, 그녀의 죽음도 마냥 지켜볼 수 없었다. 라이토의 계략을 알고도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미사를 지킨다. 인간을 도와서는 안된다는 금기. 즉, 사신이 지켜야 할 선을 넘어버린 렘은 한순간에 모래가 되어 바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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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뮤지컬 <데스노트>이용한 무대 연출에 초점을 맞췄다. 선은 구역을 나누고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더 나아가 선은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캐릭터의 대립 구조와 성격까지도 표현한다. 1차원의 단순한 선이 이토록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이유는 무대의 바닥, 벽면, 천장 총 3개의 면에 설치한 1380개의 LED 패널 때문이다. 소품을 최소화하고 고화질 LED 빛을 쏘아서 만든 무대 연출은 가히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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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연출은 ‘직선’이 주는 효과를 가장 잘 살린다. 인상적인 연출로 두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번째로 라이토의 방, L의 은신처, 경시청 사람들의 사무실 공간의 표현이다. 직선을 그어 공간을 분리해 캐릭터들의 대립을 명확히 보여준다. 가벽과 같은 물리적 소품이 아닌 선명한 LED 선으로 공간을 만들고 사선을 이용해 공간에 입체감을 입힌다. 라이토의 방은 비스듬한 사선으로 표현해 실제로 라이토가 3차원의 입체 공간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시효과를 준다. 하나의 무대 위에 3개로 나눠진 각자의 영역에서 같은 넘버(비밀과 거짓말)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버린 인물들이 뿜어내는 긴장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두번째는 라이토와 L의 테니스 대결 장면이다. 여러 개의 직선으로 완성된 테니스 코트는 음악에 맞춰 둘로 쪼개지기도하고 360도로 돌아가기도 한다. 코트가 움직일 때마다 라이토와 L은 서로 자리를 바꾸거나, 나눠진 코트 안에서 관객을 향해 라켓을 휘두르기도 한다. 이 장면은 빠르게 바뀌는 선의 움직임에 따라 배우들의 생동감 있는 연기가 더해져 실제 테니스를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이외에도 교실 장면 中 어두운 배경 위에 하얀 선이 강조된 네모 반듯한 칠판, 바둑판처럼 한치에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나눠진 교실 바닥 등, 완벽을 추구하는 라이토의 날카로운 성격이 드러난다. 또, 류크가 넘버 ‘키라’를 부를 때도 수십 개의 붉은 직선을 거침없이 그어 놓은 뒷배경은 인간에 대한 자비로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냉정한 류크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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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선 사이, 채우지 못한 ‘공백’

 

<데스노트>는 보이지 않는 선, 보이는 선을 현란하게 넘는다. 그러나, 수백 개의 선들 사이로 미처 채우지 못한 공백이 있다. 스토리의 완성도이다. 원작에 충실한 1막에 비해 급하게 마무리 단계로 들어간 2막의 스토리는 관객을 충분히 이해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원작의 내용을 모른다면 렘과 미사의 애틋한 감정선을 쉽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보다 더 아쉬운 점은 L의 추락이다. 1막에서 L은 라이토와 치열한 두뇌싸움을 보여주며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2막이 시작되자 마자 어찌된 영문인지 L은 힘없이 라이토에게 끌려만 다닌다. 1막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지닌 사기 캐릭터로 소개한 것 치고 너무 쉽게 존재의 가치가 흐려진다. L의 매력인 괴짜스럽고 오타쿠스러운 기질을 살려 2막에서 한두 번 정도 라이토와 대결 구조를 보여줬다면 스토리의 공백이 조금 덜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스토리의 아쉬움은 예정된 수순일지도 모른다. ‘데스노트’는 원작의 명성이 높기 때문에 새로운 컨텐츠로 제작되었을 때 관객은 더 높은 수준의 작품을 기대한다. 자연스레 둘은 비교대상이 된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 비해 스토리적으로 새로운 시도나 완벽한 구현은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뮤지컬 장르만이 보여 줄 있는 훌륭한 연출로 스토리의 빈틈을 극의 허점이 아닌 아쉬움 정도로 희석시켰다. 단조롭다고 여기던 ‘선’이 대극장 무대에서 보여주는 기예는 기꺼이 예술이라고 말해도 좋다. 더욱이 LED 기술의 접목은 <데스노트>가 고전이 아닌 현대물이기에 더 탁월한 선택이었다. 분명히, 뮤지컬 <데스노트>는 기존에 재 탄생된 ‘데스노트’들이 넘지 못한 한계의 선을 넘는 것이다.

 

 

[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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